1.
양고기를 안 먹는다는 한 친구가 있다. 겨울에 파리에서 가서 어린 양고기인줄 모른 채 양고기 요리를 먹었다. 지금까지 하는 말이 파리에서 먹은 음식 중 그 음식이 가장 맛있었다고. 얼마 전에 어린 양고기라고 알려주었더니 자긴 원래 양고기 안 먹는 사람인데 그럼 양고기를 먹은 거냐고, 놀람과 원통(?)함을 토로한다.이 말을 하는 이유는, 나는 애니매이션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재미없는 애니매이션을 안 좋하는 거 였다고 정정해야할 듯. 영화를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재미없는 영화를 안 좋아하는 것처럼. 취향에 대한 호불호란 얼마나 주관적이고 부질없는지. 한 후배가 말은 모순되고 인간의 감정을너무 거칠게 표현해서 언어 자체에 회의적이라고 했다. 뭘 좋아해, 안 좋아해, 하고 쉽게 내뱉지 말아야지, 해보지만 쉽진 않을 듯.
2.
애니매이션하면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쉽게 접근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상영관에는 아이들이 그득했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기억과 기억의 재생에 관한 걸 다루고있으며 꽤 정교하게 뇌 상식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한 번 보려고 했다. 아이들은 뭘 볼까?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줄거리와 상관없이 매력적이다. 각각의 캐릭터들의 동작범위, 심지어는 눈을 깜박이는 각도마저도 큼직해서 그 차체로 시각적으로 자극이 된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조이가 봉봉~하고 경쾌하게 부르는 리듬이 맴돈다. 나도 봉봉~ㅋ 사소해서 어른이 되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행위, 가령, 눈을 깜박인다는가 말하는 상대를 바라본다든가, 하는 행동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뭐 현실에서 그런식으로 행동하면 더위에 정신줄 놨다고 볼테지만 중요한 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지는 것들이 애니매이션을 통해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한테 새로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3.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건 사람의 감정을 기억에 의존하는 지점이다. 기억에 따라 감정이, 혹은 감정에 따라 기억이 배치된다. 다른 주로 이사와서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한 소녀가 가진 과거 기억을 통해 감정 역할이 명쾌하게 분류된다. 실제에서 감정과 기억의 상관관계가 명쾌할 수 없지만 아무튼 소녀의 감정 스펙트럼을 통해 슬픔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표면적으로는 기쁨이 본부에서 이탈을 해서 벌어지는 비극같지만 실은 슬픔이 기저에 없으면 공감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교훈적 이야기다. 중요한 지점인데 모두가 즐거워야한다고, 즐거움을 강요받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즐기지 않는 자 유죄"란 표현까지 나왔다. 즐거움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고 살아간다. 특히나 쏠림이 심한 한국사회에서. 소녀를 통한 교훈은, 기쁨은 자기 중심적일 수 있지만 슬픔이 없다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으로 나아갈 수 없다. 자신만의 감정이 소중한 사람은 표면적 기쁨에만 몰입할 수 있다. 타인의 감정을 살필 수 있는 감정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온전한 감정이 작동한다.
4.
휴가철이다. 즐길 의무도 좋지만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 하고" 방콕에서 슬퍼할 자유를 찾는 것도 휴가를 건강하게 보내는 방법이 아닐까.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순간 감정들이 균형을 이룰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