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토요일 오후 씨네큐브에서 봤는데, 만석이었다. 나는 씨네큐브용 영화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멀티플렉스의 획일화에 지친 관객이 새로운 걸 찾는데 너무 추상적이면 안되고 다양성이란 범주에 속해야할 것이란 전제가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의 태도에 놀랐다. 이미 감동 혹은 영화를 온전히 즐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온 이들이라 별로 안 웃기는 장면에서도 대체로 웃고 발톱이 빠지는 장면에서도 감정이입으로 비명 비슷한 소리를 낸다. 팝콘을 씹는 소리가 없는 곳이지만 과도한 리액션이 조금은 거슬리는 곳이기도 하다.(대체 나는 왜 이리 삐딱한지). 씨네큐브를 찾는 관객 심리 연구도 좋은 사회문화 연구가 될 거 같다.
2.
영화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는 여자가 모하비 사막을 94일간 걷는 이야기다. 주로 걷는 이야기가 나오며 걷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여자의 과거 편린이 배치된다. 여자는 왜 걷기라는 고행(?)을 시작했나. 엄마의 죽음 후 마약과 섹스 중독, 그리고 이혼. 이보다 더 불행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걷기 예찬을 이 영화를 통해 봤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이웃 블로거가 쓴 생생한 산티아고 순례길 대장정도 읽었고, 장 폴 뒤부아의 <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까이 할 수 있다면>도 읽었다. 삶에 심드렁한 남자가 자작나무 숲에서 길을 헤매며 걷는 이야기다.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가 감명적이었다. 그에 비하면 셰릴이란 여자가 사막을 홀로 걷는 이미지는 투쟁보다는 모하비 사막의 풍광에 대한 이미지와 음악이 더 인상적이었다. 단 한 장면에서만 가슴이 뭉클해진다. 어린 꼬마가 맑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와 그 노랫말은 풍광을 압도한다.
3.
감독의 의도는 삶에 지친 여자가 갱생하는 과정에 대한 공감을 유도하고 그 방법은 조금 피학적이다. 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예측할 수 없는 날씨와 마주하면서 몸에 멍들 정도로 걸어야하나. 육체를 혹사시키는 방법으로만 과거와 단절할 수 있나. 육체적 괴로움이 커질수록 정신적으로 힘든 기억들이 이미지로 삽입된다. 정신분석에서 제 1단계, 문제를 마주하기의 물리적 방법이다. 발화의 순간도 잊고 싶은 기억을 마주하는 첫단계인데 여자는 타인에게 말하고 자신을 잘 모르는 전문가란 타이틀을 단 타인이 조언을 하거나 본질을 건드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직접 문제와 대면할 수 있는 수단인 걷기를 택한다. 내가 흥미롭게 본 지점은 왜 걷기를 택했나이다. 걷기도 발화의 효과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나는 상상력이 없는 편인데 물리적 고통에 대한 상상력만은 출중하다.-.-; 걸으면서 겪는 고통을 읽고 보면서 고통을 자발적으로 선택 안 할 거 같다. 사람마다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어두운 극장 의자에 앉아 스크린을 마주할 때, 살아있으며 계속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문득문득 생각한다.
5.
오늘 영화를 본 후 타인의 삶 엿보기의 흥미로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타인의 삶을 엿보기는 극장에서든 극장을 나와서든 계속된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