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 옹의 영화다. 당연히 미국영화일테지만 뼛속까지 미국인이어야만 하는 속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다. 이스트우드 옹이 만든 영화들이 그랬으니까. 이 영화를 보다보면 역시 미국적 관점이다. 그런데 미국적 관점은 뭔가. 반전영화들도 미국적 관점에서 찍힌 영화들을 보면 많이 불편하다. 그 이유가, 아마도 폭력에는 폭력으로 응징한다는 국가 이데올로기 탓인듯 싶다.
미국의 통치 이념은 기독교다. 기독교는 지독한 가부장제를 격력하고 부추긴다. 신은 '아버지'고 아버지의 말은 교리며 따르지 않은 자식들은 벌을 받는다. 신을 아버지로 부르는 종교는, 좁게는 가족 공동체, 넓게는 국가 공동체를 다스리는데 핵심 이념이다. 이 영화는 이 두 가지 공동체에 속하는 크리스란 인물의 개인사를 주로 다뤘다. 배경은 이라크 전이다. 스나이퍼로 전설적 기록을 남긴 인물의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고 한다.
스나이퍼로서 크리스가 행한 일은 미국적 관점에서는 옳은 일이다. 그는 가족을, 국가를 위해 적을 사살했다. 크리스의 입장을, 한편으로 이해하지만 또 한편으로 크리스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각에는 아쉬움이 있다크리스가 적이라고 들은 이들이 누구인가. 민간인들이다. 아이부터 수녀,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인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저격한다. 그들이 폭탄을 운반하고 있기에. 그들은 왜 목숨걸고 폭탄을 운반할 수 밖에 없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풀리지 않을 거 같은 질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폭력에는 폭력이란 미국의 통치 개념 탓이다. 적으로 설정한 이들에 대해 크리스 아니 감독은 조금 더 고민했어야했다. 적이란 실체에 대한 고민이 빠져버려서 반전영화인데도 크리스의 영웅담처럼 보일 수 밖에 없다. . 크리스가 지키려 했던 것들은 허상일지도 모르는 걸 암시하지만 크리스의 내면적 갈등은 사회에서는 배척되고 크리스는 고립된다. 참전한 한 개인의 삶이 파괴되는 과정은 설득력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반전영화라고 하기에는 안타까운 점들이 있다.
이스트우드 옹에 대한 내 신뢰는 무한하다. 감독이 결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닐거다. 여러 가지 고민 후에 선택한 가지치기라고 믿는다. 개인의 신념이 영화에 전부 드러날 수는 없으니까. 캐스린 비글로우의 <제로 다크 서티>는 아마도 미국에서 만든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반전영화일 것이다. 비슷한 소재로 영화적 볼거리로서 긴장감도 비슷하다. 캐스린 비글로우가 적에 대한 고민으로 멘탈이 붕괴되어 휘청거리는 지점까지 나아갔다면 <아메리칸 스나이퍼>는미디어로 전쟁을 접하는 미국인의 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