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 장 커의 영화를 꾸준히 봐 왔고 지아 장 커가 관심있는 부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급변하는 중국 사회를 비관적으로 담는다. 진지해도 낙관적일 수 있는데 그의 영화는 언제나 비관적 저울에 올라가 있다. 지방 소도시들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겪게 되는 몰개성화와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거대 자본에 희생되는 순박한 개인사를 들여다 봐 왔다.

 

천주정. 한자에 취약하기에 영어 제목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악의 손길>이 떠올랐다. <죄의 손길>.... 영화는 한마디로 기괴하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옴니버스 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정보 없이 영화를 보니까, 등장하는 인물들이 언제 만나서 한 가지 이야기로 수렴되나 유심히 봤는데 인물들은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되지 않는다. 그냥 작은 에피소들의 나열이고 생경한 구성이었다.

 

다만 한 가지, 폭력에 대한 공감도 변화다. 최근에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이 있었고 복잡한 일 속에는 사람이 중심이기 마련이다. 내가 가장 당황스러웠던 점은, 몰상식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하는가였다. 내가 최소한 상식적이라고 착각하고 있기에, 내가 설정한 상식선 밖에서 행동하는 실제 인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매우 난감했다. 설득이나 호소의 말을 무의미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몰상식한 인물과 극한의 맞딱뜨리는 상황에 처한다. 직원의 배당금을 가로채는 촌장과 기업총수, 산재로 인한 직원의 병가조차도 임금에서 가져가는 공장 시스템과 공장장, 평온한 얼굴을 하고 강도질을 하는 남자,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우나 프론트 직원을 돈으로 사려는 파렴치한. 이들을 대하는 인물들의 선택은 극단적이다. 살인과 자살. 나는 폭력에 대한 증오로 불타올랐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바로 이성과 언어며 이성과 언어를 안 사용하는 해결책에 부정적 시선을 보냈었다. 그러나 최근에 이성과 언어는 이성과 언어를 인정할 수 있는 부류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일 뿐이라고 노선을 바꾸게 되었다. 내가 사용하는 수단을 상대가 무시할 때는 결국 영화 속 인물들 처럼 폭력이 차선의 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공감은 공감이고 영화는 아쉬운 점이 많다.

 

불연속을 연속으로 만드는 게 감독의 역할인데 감독은 스타일을 바꾸면서 이야기까지도 고개를 기우뚱하게 하는 기묘한 관점으로 끌고 간다. 거의 모든 장면에서 배경이 아웃 포커싱으로 처리되면서 인물 클로즈업이 주로 사용된다. 인물들이 처한 고립된 극한 상황을 담기에 적절한 방법일지 모르겠지만 결국 인물들이 다각적 사고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아 장 커 감독의 문제의식은 그대로이지만 영화 언어적으로 변화를 모색하는데는 실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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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04-14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넙치님은 지아장커의 그간 영화들에 비해 살짝 실망하신 듯...? 저는 이거 봐야지, 봐야지 하고 있다가 결국 지나갔네요. 지금 볼려고 찾아보면 상영하는 곳이 있을라나..지아장커의 무협이라니 봐둬야 하는데..

넙치 2014-04-16 00:17   좋아요 0 | URL
대체 누가 무협영화라 했나요? 이런 걸 무협영화라하다니, 정신세계 의심스러워요@.@ 그간 보여준 지아장커 감독만의 섬세한 관찰이 살아지고 활극으로 나아간 거 같아, 네, 저는 아쉽더라구요...(아트나인에서 아직도 상영중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