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신 덕후질 중 하나로 다시 본 영화. 다시 보니(기억하는 건 몇 가지 이미지 뿐이어서 새로 본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오, 이런 휼륭한 영화를 전에 박찬욱 감독이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나는 왜 균신의 매력을 이제야 알아보는가 하는 자책. 잔인한 장면은 모두 잊혀졌었는데 또 봐도 잔인하다. -_-
아무튼 복수의 속성이 원래 무정부적 성향이다. 제도권에서는 복수라고 말하지 않고 처벌이라고 한다. 처벌 주체가 누구인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우리는 처벌은 정당하고 복수를 꾀한 자는 처벌을 받는데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복수는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 손으로 받은 걸 갚겠다는 의지 속에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부정이 내포되어 있다. 공권력 혹은 제도를 불신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에서 출발해 보자. 류. 그는 청각장애인이다. 소리를 못 들으면 어떤 위험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시각보다 덜 중요하다고 평소에 생각해 왔는데 어리석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 어떤 위험 상황에 달했을 때 눈이 스캔할 수 있는 반경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속수무책이다. 찌개를 끓이고 있을 때 누나가 통증 때문에 울부짖어도 모르고, 아이가 익사 하기 직전에 다급하게 소리를 내도 모른다. 비극의 기원은, 그러니까 신체적 기능장애에서 시작된다. 신체적 기능장애는 사회적 기능장애로 이어진다. 보통 참을 수 없는 소음 속에서 일해야하는 공장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해고 당한다. 해고 통보는 류의 청각기능장애가 더 이상 쓸모없다는 통보다. 류의 신체적 장애가 경제사회 속의 톱니바퀴로 작동하는 데 더 이상 봉사할 수 없는 순간에 모든 일이 줄줄이 일어난다. 누나한테 맞는 신장을 사기 위해 저축한 돈과 신장을 강탈 당한다. 인생에서 필연은 우연의 연속으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마침 누나한테 알맞은 신장 기증을 찾았다고 병원에서 연락을 받는다. 하지만 불법장기매매업자들한테 수술비를 털린 후라 유괴를 할 수 밖에 없는 필연으로 성큼성큼 나아간다. 류의 청각 소실은 사회에서 노동계급에서 잉여 인구로의 이동을 추진하는 매개다. 류는 혈육인 누나와도 별 대화를 하지 않고 류와 유일하게 소통하는 이는 여자친구 영미다.
영미는 정체가 불분명한 단체 소속으로 미군축출과 재벌해체를 외친다. 영미는 류의 유일한 조력자다. 재벌해체를 외치던 영미가 유괴하기로 지목한 건 동진의 딸. 동진의 지위는 딸의 죽음으로 드러난다. 그는 착취계급인 동시에 피착취계급이다. 아마도 하도급업체를 운영 중이었다가 도산한 걸로 짐작된다. 영미가 동진의 딸을 유괴하기로 한 건 동진을 착취계급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동진은 먹이 피라미드에서 중간 위치에 있다는 게 드러난다. 그러니 동진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복수 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먹이 피라미드에서 피착취계급인 류와 영미를 죽인다. 그러나 그 역시 류와 영미와 같은 피착취계급이다. 동진 역시 무정부혁명단체의 남자들한테 살해 당한다. 동진의 죽음은 그럼 무정부혁명단체의 승리인가? 그럴리가. 피착취계급의 복수 순환을 지켜보는 게 착취계급의 임무다. "우리는 가치와 정의를 측정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고, 측정할 수 없는 세계에 의해 길러질 수 있다."란 네그리의 말이 떠오른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면.
덧. 십 년도 더 된 영화인데도 영화적 수사법은 낡지 않고 화려하다. 새삼 좋아서 씬의 강약을 감탄하며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