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eekend (Paperback)
Schlink, Bernhard / Vintage Books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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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유연한 사고에 늘 감명받는다. <주말>은 소설로서 좀 지루하긴 했지만 소설 형식을 빌려서 역사적 부채에 대한 성찰을 전개하는데, 역시나 슐링크 님은 어른이시다. 작가들이 말하는 걸 우연찮게 듣게 되면 좀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슐링크 님은 꼭 만나보고 싶은 작가 중 한 분이다. 실망 안 할 거 같다.

 

이 소설은 말 그대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어난 일이다. 테러리스트로 잡혀서 23년 간 감옥에 있다 석방된 외르크를 환영하기 위해 누나가 과거의 친구들 회합을 마련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슐링크가 의문 부호를 던지는 건 테러리스트의 삶은 어떤건가, 이다. 테러리스트로 산다는 건 대의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정당화할 때도 있어야 한다는 것. 예로 외르크가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죽여야 했는 일반인 프랑스 여성, 그리고 자신 때문에 자살한 아내, 그리고 엄마없이 자라야했던 아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한 사람의 대의로 희생되도 괜찮은건가? 처음 살인은 힘들지만 점점 살인에 중독되어 살인하는 게 쉬워진다. 처음 살인으로 살인을 금하는 사회적 규범을 부인하게 되는 혁명주의자가 되지만 살인의 반복으로 혁명이 일어나진 않는다.

 

23년을 감옥에 있다 나온 외르크는 여전히 과거 속에 살아있다. 억압의 폭력에는 폭력으로 맞서야한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친구들을 당황하게 한다.

 

"The leftist project means first and foremost that man can resist the power of the state, that he can break it rather than being broken by it. We have demonstrated that with our hunger strikes and our suicides and our-(murders)"(135)

 

외르크는 좌파적 투쟁은 기존 질서를 깨뜨린다면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시대 변화를 목격한 친구들은, 꿈은, 혁명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외르크의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Fighting for peace is like fucking for virginity."(145) 아들의 세대한테 아버지 세대가 추구한 정의는 무의미하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접점은 실제로 찾기 어렵다. 소설 마지막에 이념을 버리는 작은 사건이 일어난다. 지하실에 물을 퍼내는 장면인데 지하실에 물을 퍼내야하는 작은 상황이 모두가 함께 움직이게 만든다. 각자 가지고 있던 내적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빈 양동이를 앞사람한테 전달하고 양동이가 차면 뒤로 전달하는 단순한 행동에서 모두는 잠시 연대를 형성한다. 물을 다 퍼낸 후 각자 다시 마음 속 소용돌이가 다시 일렁인다. 정의는 거창한 게 아니라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위험에 처했을 때 기꺼이 어떤 연대를 형성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것. 말이 쉽다. 사실 무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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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3-05-0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일본적군파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아요. 폭력을 깨기 위해서는 폭력이 필요하다는 식의 사고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고, 앞으로도 쉬 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넙치 2013-05-11 12:32   좋아요 0 | URL
그래서, 혁명이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이루기 어려운 로망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