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영화는 기시감으로 가득한 영화다. <무간도>, <디파티드>, <대부>, <본 시리즈>뿐 아니라 조폭을 다룬 한국영화들 여러 편이 저절로 연상된다. 그러나 창작은 원래 모방이다. 선험적인 것들에 알게 모르게 빚을 진다. 좋은 작품은 익숙하지만 창작자의 반짝이는 창의성이 전해져서 보는 이한테 전혀 다른 작품으로 다가온다. 이 영화는 익숙한 이야기를 하지만 한국적 설정에 배우들의 개성까지 더해져 <대부>, <무간도> 반열에 올리고 싶다. 어제 밤에 보고 들어와서 여운이 강해 한번 더 봐야겠다. 마지막 장면이 <대부2>를 상기시키는데 속편이 나온다면 좋겠다, 싶었다. 이야기는 부실하고 시각적 화려함에만 집중한 일차원적 <베를린>과 비교하면 이 영화는 얼마나 명작인지.
2. 이 영화가 관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좀 보자. 조폭 조직 세계를 다루고 있는데 실제로 싸우는 장면은 몇 번 없다. 액션씬이 생각보다 없는 편으로 시각에 의존하는 원초적 진행을 차단한다. 그런데도 잔인하다고 느끼게 된다. 혈투 장면을 생략하고 칼 맞은 후 피가 뒤범벅 된 얼굴이나 피가 흥건한 바닥을 주로 보여준다. 지루한 싸움씬 대신 생략으로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을 상상하게끔 이끈다. 이중구, 장이사가 죽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죽기 전과 죽은 후를 보여준다. 사이에 물론 집단 구타가 있는 건 모조리 생략했다. 조직원들은 쇠몽둥이를 들고 있고 장이사는 얼굴이 피범벅이으로 앞으로 고꾸라진다. 사운드 트랙도 자제하는 편인데 싸움이나 일이 일어나기 전 전조로 까는 음악이 관객한테 긴장감에 대처할 준비 시간을 주면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약간 흘리는데 이 영화에서 사건은, 교통사고처럼 갑자기 쿵 하고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줄거리를 따라가느라 처음부터 끝까지 늦출 수 없다. 카메라 앵글은 좀 고전적이다. 어찌보면 좀 단조로울수도 있지만 화려한 앵글 좋아하는 요즘 한국영화들 속에 있으니까 고전적인게 오히려 돋보인다. 인물 클로즈업을 사극처럼 빈번하게 사용하지만 정면이나 옆면에서 잡는 게 아니라 비스듬한 로우나 하이 앵글을 주로 사용해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면이 있어서 눈길을 잡아끈다.
3. 좋은 배우들이 있다. 황정민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아, 하고 탄성이 나온다. 껄렁거리며 품격이라곤 없는 생 양아치 느낌. 영화 내내 황정민은 원래 저런 사람일 거라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소름돋게 연기 잘 하신다. 이중구로 나온 박성웅도 아주 강렬한 인상이시다. 눈빛에 살짝 광기도 있고 야비한 미소도 종종 지어주신다. 또 하나 반한 건 이정재의 곱상한 피부. 무슨 남자가 여자보다도 피부가 고운지.;;; 내적 갈등이 많고 카리스마를 지닌 캐릭터인데 살짝 후달리는 느낌은 있지만 피부가 고우니까 유약하면서도 무언가 지닌 순정만화형 인물로 무마.ㅋ 최민식 씨는 느끼해서 싫어하는 편인데 이 영화 보니 기름기 쫙 빠져서 나온다. 그러니까 그간의 영화에서 기름기는 의도된 연기였던 것. 언제나 '갑'인 연기자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