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이 좀..당황스럽다. 어린 유치원생이 한 남자 선생님을 좋아하다 거절당한 마음을 거짓말로 표현한다. 어린 아이에 대한 성추행의 증거는 전적으로 아이의 진술. 아이들이 상상력이 풍부하긴 하지만 거짓말은 안 한다는 어른들의 강한 믿음을 기초로 영화가 전개된다. 어느 문화권에서든 스스로를 아직 보호할 수 없는 나이에 당한 폭력이나 학대는 형법과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한 남자는 결백하다. 남자의 결백을 관객만이 안다. 극중 인물들은 모두 모른다. 왜 하필 아동 성학대였을까. 아이의 말을 증거로 채택하는데 신중을 기해라, 하는 메시지같기도 하지만 동의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나도 아이들은 거짓말 안 한다는 걸 믿는 어른이다.
위험한 이 기본 설정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좋다. 이 부분을 빼고 본다면, 한 집단에서 한 구성원을 고립시키는 게 얼마나 쉬우며 얼마나 잔인한지 밀도 깊고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묘사된다. 결속이 단단한 마을에서 죄를 짓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걸 고전소설이 많이 묘사하는데 그걸 이미지화했다고 할 수 있겠다. 남자는 아주 성실하고 좋은 선생님인데 하루 아침에 친구와 가족의 의심을 받는다. 사람의 믿음은 마음 속에서 주입하는 면이 있다. 친구들은 남자의 성품을 한편으로 믿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이의 진술도 믿는다. 남자에 대한 믿음은 잠시 혼동을 거치고 불신으로 향해간다. 남자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서 모든 건 이제 남자를 자신들이 믿고 있는 틀 안에서 보기 시작한다. 식재료를사러 갔을 때 수퍼 상인들이 보여 준 적개심은 마을 사람들의 공통된 믿음에서 나온다. 수퍼도 출입금지니 뭘 먹고 사나.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났어도 사람들 마음에 자라고 있는 불신의 나무는 시들지 않는다. 일 년이란 시간이 흘러 암묵적으로 남자는 면죄부를 받았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누군가가 사슴이 아니라 남자한테 총을 쏜다. 불신의 나무는 언제든 살아날 준비가 돼 있다는 걸 암시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남자와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상흔은 쉽게 사라질 것 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 존 패트릭 샌리 감독,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수작 <다우트>가 내내 떠올랐다. 비슷한 소재를 다루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사실을 그 누구도 모른다. 관객도 모르고 극중 인물들도 모르고. 다만 추정을 할 수 있는데 강한 의혹이나 의심도 믿음의 일종이어서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사람만이 의심도 키울 수 있는 거 같다. 지나친 의심은 영혼을 파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나치게 확고한 믿음도 영혼을 잠식할 수 있다. 신념과 믿음의 차이는 뭘까. 소신있기도 힘드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역시 감탄스럽다. 아주 확고한 신념으로 어린 수녀를 마녀사냥했던 원장 수녀는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I dout를 외친다. 믿음이나 신념은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가치있는 게 아닐까...뭐 이런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