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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이옥전집 1 :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ㅣ 완역 이옥 전집 1
이옥 지음,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9년 3월
평점 :
먼저 책 내용과는 무관한 말을 좀 적을테다. 나는 한국어 원어민이지만 한국어가 낯설다. 그렇다고 다른 언어에 친숙하지도 않다. 내가 쓰는 한국어 범위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일상어와 내 생각을 휘갈기는 빈곤한 어휘력. 나는 한국어 원어민인데도 왜 빈곤한 한국어 어휘를 갖게 되었는가. 한국문학을 읽지 않아서다. 한국문학의 범주 또한 넓은데 근현대 소설만 주로 읽었지 한자 시절의 글은 멀미가 난다. 이는 내 탓이 아니다! 한자로 쓴 글은 외국어여서 누군가 번역을 해 주지않으면 읽을 수 없다. 번역서를 몇 권 들춰보기는 했지만 고어체는 우아해보이기는 하지만 서툰 외국어를 대할 때처럼 인내심과 상상력을 강도 높게 요구한다. 고로 곧 책장을 덮어버곤한다. 어휘력이나 표현력은 어디선가 반드시 읽거나 들은 적이 있어야 다음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런데 읽거나 들은 적없는 우리말을 내가 어떻게 사용할 수 있겠나.-.-
우리글에 대한 원천적 봉쇄는 좋은 번역서를 내는데 게으른 우리의 관행에 있다고, 비난하고 싶다. 제인 오스틴의 원전을, 영국인한테 읽으라고 하면 그들도 곧 책장을 덮을 것이다. 그들은 근대나 중세 시대의 글을 현대식으로 쉽게 쓰는 일을 부지런하다(적어도 제 삼자의 눈에는 그래보인다). 과거 우리글은 기품이 있고 서정적이다. 기품있고 서정적 표현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 즐겁다. 원전의 이런 느낌을 살리고 쉬운 우리말로 번역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테지만 다른 외국어가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을 느낄 수 있는 책을 많이 만날 기회가 많았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책 이야기를 하면, 역사시간에나 들었던 문체반정에 대한 해제다. 내 식대로 말하면, 지배계급이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글의 주제와 문체를 지정했고, 기준에 벗어난 글을 쓴 이들을 유배시켰다는 말이다. 우리의 독재적 근본주의는 참 뿌리도 깊다.;; 이옥은 정조 시절, 주류에 속할 수 없는 집안 출신었고 소외감을 느꼈지만 후대가 존경할 만한 독자적 문체를 발달시킬 수 있었다. 주제도 소소한 일상을 다룬다. 풍경, 독서의 즐거움, 시장, 심지어 벌레에 이르기까지 자잘하다. 이런 자잘한 대상을 보고 쓴 글을 읽다보면 작가가 지닌 감수성의 투명도를 짐작할 수 있다.
감수성에 흠뻑 잠긴 글을 읽는다고 감수성을 익힐 수 있지는 않지만 가끔 당을 필요로하는 몸에 초콜릿을 공급해줄 때처럼 흐뭇한 포만감이 찾아온다. 우리글을 읽으면 꼭 만나게 되는 건 나의 무지다. 많은 인용된 인물이나 표현이 한문학에서 기원하는데 이런 깊숙한 맛까지 느끼려면 부지런한 독서가 필요하니 나는 평생 못 느낄 것이다.
글을 읽고 쓰는 일을 술과 비유하는 데...달콤한 동동주 한 잔 마신 후 어떤 말보다도 캬-하는 감탄사가 설득력있는 것처럼 아래 글이 그렇다.
"먹은 누룩이 아니고 책에는 술 그릇이 담겨 있지 않은데 글이 어찌 나를 취하게 할 수 있겠는가?(......)그런데 글을 읽고 또 다시 읽어, 읽기를 삼 일 동안 오래했더니 꽃이 눈에서 생겨나고 향기가 입에서 풍겨나와 위장 속에 있는 비릿한 피를 맑게 하고 마음속의 쌓인 때를 씻어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이 즐겁고 몸이 편안하게 되어 자신도 모르게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들어가게 된다. (......) 크게 취해서 취함이 극에 달한 자는 반드시 토하게 되는 것이니 마치 옛날에 이불에 토했다는 것과 혹수레의 깔개에 도했다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런데 나는 술에 취하면 토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니 나의 주벽酒癖이 그런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읽고서 이것을 지은 것은 또한 내가 취하여 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