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자신의 인생이 너무 감사하고 만족스러워서 감사하고 다른 삶은 꿈꾸지 않은 사람을 가끔 만나기는 한다. 그들의 자족적 말 속에서 어떤 비애를 읽는 못된 버릇이 있다. 자기가 만족한다는데도 자신의 삶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한테서 자기 최면을 본다. 누구나 자신이 꾸리는, 혹은 꾸릴 수밖에 없는 삶에 만족하고 싶어한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거나 자기 최면을 걸 수 있는 사람은 불행히도 소수라고, 나는 믿는다. 나 역시 내 삶에 대체로 만족하지만 대체로가 아닐 때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회한(?)이 있다.  

주변에서 보는 나는 현실적 이상주의자다. 꿈을 간직하고 있지만 현실에 지나치게 밀착돼서 이도저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정확히 맞는 말이다. 나의 커다란 짐은 내 균형감각이고 나는 비난할 대상이 있어야하기에 내 별자리, 천칭좌를 탓한다. 지인이 올해 꿈이 뭐냐고 물었고, 현상유지,라고 나는 대답했다. 지인은 깜짝 놀라며 내가 아직도 자신과 같은 이상주의라고 믿었다고, 했다. 나는 꿈 따위는 버린지 오래 전이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의 거리를 비로소 깨달았다고 말했다.  

정말이다. 내가 잘 하는 일과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에 내 재능은 일치하지 않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재능은 전무하다고 인정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물론 재능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끊임없이 내 자신을 위로했지만 그래도 재능은 중요했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인생의 커다란 흐름을 믿는 편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은 안 된다. 그러나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내 노력 이상으로 눈에 띄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일도 있다는 걸 안다. 행복은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전적으로 달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난 게으르다. 게으름은 재능도 없는 내게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다. 쓰다보니 책 리뷰가 아니라 자학 포스트가 돼버렸다.;; 

술술 넘어가는 책장을 넘기며 이 소설을 읽는 건 시간 낭비야, 아니야 이 소설은 재밌잖아, 라는 생각이 대치했다. 주인공은 안정된 변호사였지만 실패한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다. 우연찮게(실은 할 수 없이) 사진작가 행세를 하게 되고 모든 걸 버린 순간에 사진작가로서 급부상하게 된다. 사진작가로 이름을 얻는데 많은 우연이라는 운이 작용한다. 그러나 작가는 명성에 대해 어떤 결벽증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기존에 가졌던 모든 것을 버리고 난 후 얻은 명성을 얻지만 명성을 얻는 그 순간, 주인공을 다시 원점에 돌려 놓는다.  

라캉주의자라면, 작가는 자신이 누리는 명성이라는 외투를 벗고 싶지만 벗지 못해서 소설 속 주인공을 만들었다고 할 것이다. 반복되는 일을 참아내는데는 필요조건은 자기 최면일수 있다. 자신의 능력은 반복되는 일이 아니라 다른 어떤 창조적 일에 있으며 기회만 온다면 자신의 창의력이나 숨겨진 잠재력이 빛을 발할 날이 있다는, 공허한 믿음이 하루, 일년을 지탱하는 뿌리일지도 모른다. 

벤이었지만 게리로 환생하고 절정의 순간에 다시 앤디로 태어나 세번째 삶을 사는 주인공이 결코 행복을 만끽 할 수 없는 이유는, 꿈을 실현했다는데 있다. 희망이나 갈망, 혹은 이룰 수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 의미있니, 패배한 자여, 마음껏 자신의 가능성을 부풀려라. 이루지 못한 꿈은 엑스터시로 올라가는 비탈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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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01-11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학 포스트가 될 뻔~ 했다시지만 저는 재미있는걸요. 저도 역시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커다란 흐름이 있다는 걸 인정해요. 이룰 수 없는 믿음은 그 자체의 의미를 위해 건배하고 싶군요.

넙치 2011-01-12 00:00   좋아요 0 | URL
올 한해를 살아갈 최면을 걸어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