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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평점 :
대충 내용을 짐작할 수 있지만 짐작이 맞나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삼성의 만행은 생각보다도 훨씬 원초적이고 규모면에서는 감도 오지않을 정도다. 책에서 언급된 돈의 단위가 대체로 조, 억이니 대체 그런 돈이 왜 필요해서 갖은 수단을 동원해 숨기는걸까. 정말 궁금하다.
사람들의 관심은 폭발적이다. 판매지수는 물론이고 리뷰, 40자평이 그 어떤 양서보다도 많다. 나도 리뷰수와 판매지수 상승에 합류했고. 사람들 역시 호기심이 발동했을 거고 언론이 말하지 않은 '그 어떤 걸'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일독을 했을 거다. 대부분의 반응은 놀랍다, 삼성은, 아니 이건희 일가는 나쁘다..라는 결론인 거 같다.
이건희 일가는 분명히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며 국익이나 공공의 선에는 관심이 없어보인다. 그가 재벌총수가 아니라면 그저 악덕한 비열한 기업인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각종 탈세와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도 재벌총수의 지위는 굳건하다. 그를 지탱하는 기반이 과연 돈일까. 테러당할 소리지만 나는 사람, 나아가 우리 모두, 그의 지위를 굳건히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남의 잘못을 비난하는데 익숙하고 내 잘못을 인정하는데 인색한 민족이다. 이건희 일가를 비난하는 건 쉽다. 삼성에서 월급을 받고 있지 않지만 삼성에서 월급받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타인이 부정을 저지르는 건 분개하지만 내 부정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적 삶에서도 나만은, 일등, 내 아이만은, 우리 가족만은, 공공연하게 정당화하는 수단이다. 사람들이 경쟁속에서 불안하게 살아가는 게 잘못이라고 여기지만 내 일가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면 기뻐한다. 식구는 믿지만 남은 못 믿는다. 지도층의 부패를 오랫동안 봐 왔기 때문에 불신의 벽이 견고한 게 전적으로 우리 탓만은 아니지만.
사기는 대상이 있어야하고 공범도 있어야 한다. 더구나 이건희 혼자서만 저지를 수 있는 비리의 규모가 아니다. 그가 안하무인이 된 건 그에게 충성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저자는 고작 양복 한 벌에 양심을 판 검사도 있다고 했다. 삐뚤어진 사고와 행동에 절대 복종을 그들은 왜 바쳤을까. 이건희 일가와 같은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 탓이 아닐까. 그 규모만이 다를 뿐이지.
평생을 재벌총수로 자신의 말이 곧 법으로 여긴 사람들 틈에서 살아 온 사람이 하루 아침에 변하는 건 기적일거다. 기적이라도 일어난다면 좋겠지만 기적이란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상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은, 밑에 있는 사람들이 바뀌는 것이다. 위로부터의 개혁보다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관련 된 모두가 눈 딱 감고 양복 한 벌 거절하고 , 골프 한 번 덜 치고, 시계 한 번 안 받으면 구조본은 긴장할 거다. 구조본이 로비 능력을 잃어가면 이건희 일가의 입지도 흔들릴 거다. 그.런.데. 각 개인은, 이런 걸 희생으로 여긴다. 내가 왜 희생타가 되야하나..하는. 또 희생타로 인생이 끝날까봐 두려워한다. 두려움이야말로 우리의 적이다.
우리 모두 두려워서 행동하길 거부하고 흐름을 좇아 사는 걸 택했는데 저자는 두려움을 이기고 행동을 했다. 속으로는 저자 역시 불안 속에서 영혼이 잠식당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두려움을 극복해보려고 한 걸음 내딛었다. 이 책의 가치는 한 개인이 자신이 가진 모든 걸 걸었다는 데서 나온다. 누구라도 꺼리는 일을 했다는 거.
덧.
1-모두 실명이 거론돼서 읽으면서도 깜짝깜짝 놀랐다. 김용철 님, 부디, 무고하시길 빈다.
2-한미FTA 체결에 삼성이 배후에 있었다니!!! 내가 순진했다. 난 정부입장에서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었다. -.-
3-살 맛나게 하는 책은 아니다. 하루하루 정직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한국에서 태어난 게 신의 저주같다. 국가 전체가 거대 사기조직체에 얽혀있는 땅에서 희망은 대체 어디서 찾아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