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핵심어는 '오해'다. 오해의 본질은 파주의 이미지처럼 안개와 비가 가져다주는 모호하고도 축축한 분위기다. 오해, 질투, 거짓말은 사랑을 풍부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상대의 마음을 알려고 안달하고 조바심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언니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과 거짓 속에 들어있는 사랑의 모습을 말한다. 은모와 중식, 공식적으로 처제와 형부라는 시선, 그리고 여자와 남자라는 시선이 공존한다.
1. 은모의 시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언니와 단둘이 살아가던 중에 은모 언니는 결혼을 한다. 언니는 형부때문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한다. 어린 은모의 눈에는, 형부는 사랑하는 언니를 괴롭히는 침입자다. 오해는 비극적 결말을 만들기 쉽다. 언니를 구출할 작전을 세우지만 실패하고, 오해의 댓가로 언니를 잃는다. 언니가 없는 자리에서 형부는 더 이상 침입자가 아니다. 형부에 대한 묘한 감정이 자라기 시작할 즈음, 형부의 첫사랑이라는 침입자가 다시 등장한다.
2. 중식의 시선
대학시절 운동권이었던 중식은 선배의 아내를 사랑했고, 깊은 상흔을 남긴다. 윤리의식에 배반하는 행동과 죄값을 치루는 식의 행동. 그러나 결심과 행동은 동시에 수반되는 게 아니다. 커피를 줄여야겠다고 결심하고도 변함없이 커피를 마셔댈 수 있다. 행동은, 어떤 때는 의식이나 결심보다도 강력하다. 중식은 도의적 행동을 자발적으로 떠맡지만 그의 의식은, 행동을 따르지 않는다. 비극은 그를 따라다닐 수 밖에 없다.
3. 은모-중식의 시선
은모에 대한 중식의 사랑은 고통스럽다. 은모 역시 중식의 사랑을 알든 모르든 고통스럽다. 은모는 여행자다. 마을 사람들의 말대로 집을 밥 먹듯이 나간다. 은모는 왜 집을 나가는가. 사랑의 대상은 끊임없이 떠나며 여행상태에 있다고 바르트는 말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의 천직은 칩거자고 꼼짝없이 사랑하는 사람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일이다. "항상 현존하는 나는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되기" 때문이다. 중식은 은모의 결백을 완성시키고 이상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중식의 숙명이다.
극이 전개되는 전체 배경은 재개발을 막는 주민들과 개발을 진행하려는 일당 간에 벌이는 혼란스런 투쟁이다. 짙은 안개와 어두운 조명, 축축한 비는 혼란을 가속한다. 개발이라는 대상을 두고 주민과 개발자의 화살표가 다를 때 빚어지는 대립과 갈등 팽팽하다. 결국 누군가가 항복할 때까지. 사랑하는 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의 화살표가 다른 곳을 향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질투는 나의 힘>과 같은 감독 작품이라고 생각못할 정도다. 많은 걸 담으려고 했지만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짙은 안개처럼 영화는 뿌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