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9. 29. 월요일 - 또 새로운 시작.

 


 

또 새로운 한 주가 시작 되었다. 실사팀이 오후 2시면 마을에 도착한다고 했다. 오전에는 다들 청소를 하고 미처 손보지 못한 곳을 정리했다.

점심이후 도착한 실사팀은 교육장에 무언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학교를 떠났다. 오후 내내 고요한 정적이 사무실에 감돌았다. 컴퓨터 돌아가는 소리와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시간이 정지한 듯 한 공간을 울리고 있었다. 홀씨는 한동안 자리를 비웠다. 집 뒤에 자리 잡은 산에 길을 낸다고 낫을 들고 갔다고 했다

 

- 홍화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3. 9. 26. 금요일 - 2주 만에 집에 가는 날.

 


 

2주 만에 집에 가는 날이다.

어제 하지 못한 일을 오전 중에 마무리 하고 점심을 먹고는 다들 집에 가기로 했다. 집에 갈 생각으로 다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청소를 하는 손놀림이 다들 경쾌하다.

대강 정리가 끝나고 점심 먹을 때가 되었다.

세대의 차를 나누어 타고 풀씨네는 서울로, 춘천으로 향했다. 가을볕이 유난히 투명하다. 그리운 가족을 만날 생각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아이들과 아내와 그동안 밀린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이 먼저 춘천에 닿는다.

 

- 홍화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을편지 28> 매실이 말하게 하라


유월 들어

한바탕 야단법석을 치렀습니다.



마침내 여무는 매실을

행여 제값받을 때를 놓칠세라

서둘러 따고 나르느라

열흘 정도는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정신을 차려보니

유월 한달은 거의 지나가 있습니다.



마을에 몇 남지 않은

늙은 아주머니들까지

온통 불러내도 일손은 기본도 채우기 어렵습니다.



분대도 안되는 매실농장 식구들이

팔공산 자락으로,

평복 산골농장으로,

죽전 낙동강변 농장으로

빨치산 유격대 처럼

산 넘고, 강 건너, 너른 매실 들판을

축지법과 공중부양법을 뒤섞어 날라 다녀야만 했습니다.



열흘동안

삽십톤이 넘는 매실이

유기농 매장, 생협 등을 통해

도시로 옮겨간 듯 합니다.



매실이 농장 문을 나선 직후,

쏟아지기 시작한 도시로부터의 전화 공세는

가히 무차별적입니다.



매실 따고 나르기에 버금가는

치열한 전투양상입니다.



매실이 깨끗하지 않다,

매실이 파랗지 않다,

매실이 작다.



장사꾼에 대한 불신이 평생 몸에 밴

도시의 소비자들의 호전적인 공격이 태반입니다.



이럴 때

사람이 하는 변명은 한계가 있습니다.

일을 더 그르치게 마련입니다.



매사에 사람이 끼어들게 되면

대체로 믿음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매실이 사람 대신

대답해주어야 비로소 정답이 됩니다.



그저

매실보고 대답하라고 할뿐입니다.



우리는

농약을 먹지 않고 자라서 겉보기에 깨끗하지 않습니다,

땡볕에 도시의 아스팔트위로 실려가다보니 노랗게 익었습니다,

토종은 원래 몸집이 작습니다.



열매를 다 털어낸

텅빈 매실 들판에

메아리없는 아우성만

웅성거립니다.

======================  홀씨의 마을편지 2004. 6. 21

홀씨가 작년에 보성차밭 부근의 어느 매실농장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런 저런 잡지며 신문에 투고도 하고
책 만드는 일에 매진도 하고 있다 합니다.

아웃사이더 같기도, 방랑자 같기도 하지만
늘 세상의 중심에 서있는 그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05-03-15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실이 말하게 하라....
흙과 자연의 목소리를 듣고 갑니다.

김여흔 2005-03-15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 ^^
흙과 자연의 목소리, 잉크님은 그것이 들리는 게로군요.
역시 잉크님이십니다.
 

 

지난 주 월요일 아버님이 하늘로 돌아가시고
경황 없는 손놀림, 마음으로 허둥허둥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남한산성 옹성 근처 나즈막한 양지쪽에 아버님을 모시고 뒤돌아서는데
잔가지를 적시는 가을비가 어깨를 두드려 속으로 삼키는 눈물을 감출 수 있었습니다.
평안히 주무십시요. 평안히 주무십시요.
수없이 되뇌어보지만 공허한 울림만 가슴을 헤집고 다녀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많은 지인들이 위로하고, 가시는 길을 부축해 주셔서
경황 없이 치르는 일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을 잡을 수 있을때가 되면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

 

날이 많이 찹니다.
건강에 유의 하시고 날마다 좋은날 되시길 빕니다.

 

======================================== 홍화씨의 편지 2004. 11. 15

 

벌써 넉달이 지났습니다.

홍화씨의 부친께서 세상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포천을 다녀온지도.
이곳에서 포천을 가려면 버스와 전철을 다섯 번 정도 갈아 타야 하더군요.
몇 시간이 걸리든 몇 번을 갈아 타든 상관은 없지만
진흙탕 같은 서울을 거처야 한다는게 큰 곤혹이었습니다.

쾌쾌하고 매스꺼운 그곳을 지나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초췌하기만 한 홍화씨가 멍하니 서 계셨습니다.

아비 같던 그가
우리에겐 꼭 그러하던 사람이
당신의 아비를 떠나 보내는 심정은 어떠할까.

그날 이후
자꾸만 나의 아버지 얼굴을 힐끔 거리게 됩니다.
그리 커 보이던 사람이 한해 한해 작아져만 갑니다.
그 많던 머리숱도 모두 어디로 간 것인지
왜 이리 새까맣고 마르셨는지

점점 농사일이 힘에 겨우시다 하십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05-03-1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늦었지만 저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여흔님 아버님도 건강하셨으면 좋겠구요. 힘내십시오. 모르긴해도 아버님께서는 든든한 아들보고 사는 게 낙이실텐데요.^^

김여흔 2005-03-15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감사할 따름이네요.
든든한 아들이라니, 제겐 과분하고 부끄런 말이죠. ^^
 

당신, 따로 또 같이


 

벼랑 위의 사랑
-클림트의 그림 "키스"를 보다


꽃밭이다 찬란한 햇살과 따스한
바람이 빚어낸 바닥에서 꽃이 된
남자의 황금빛 가슴 속에 묻혀 시간을 잊은
여자의 몸에서도 황금 잎사귀가 돋고
찰나의 시간에도 덩굴은 자라는데
여자의 발끝이 벼랑 끝에 걸려 있다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와 여자의 눈은 감겨 있고
벼랑 위의 키스는 끝나지 않는다

사랑은 벼랑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듯
벼랑은 사랑을 위해 존재한다는 듯
사랑은 필사적이고 벼랑은 완강하다
살아가는 일이 벼랑이라면 모든
사랑은 벼랑 끝에서만 핀다 지금
안전한 자여 안전한 사랑은 완전하지 않다
저 심연을 보아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벼랑 끝에서 벼랑을 잊은 채 우리는
이 순간 영원이다 말하는
저 백척간두의,

- 김해자(1961∼ ) 시


===========================================

낯설고, 별나고,
그리하여 행복한 나날들.
나는 잠시 잊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가올, 스스로 움켜쥐고 말아야 할 달콤한 치열함을.

숨죽이며 기웃대는 바람님도 시샘할
당신의 입김으로 불어넣어
새살 돋는 나의 봄옷.

이제 내 마음의 촉수는
당신, 그 약속에 키스하다.

                                                                2005. 03. 11 김여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5-03-11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라 더욱 반갑습니다. 여흔님이 오시기를 잊지않고 기다렸다지요^^

nugool 2005-03-11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잊지 않았어요. 언제나 오실까 하고 기다리고 있었죠.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

stella.K 2005-03-1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영 안 오시나 했습니다.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가운데요. 자주 오세요.^^

잉크냄새 2005-03-1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사드립니다. 벌써 봄이군요. 행복한 봄날되시길 바랍니다.

2005-03-11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여흔 2005-03-1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반갑네요.
파란여우님, 너굴님, 스텔라님, 잉크님 ...그리고 **님.
다들 반가운 얼굴들이죠.
불쑥 불쑥 얼굴 내밀었다가는 염치도 없이 인사도 못 드려서 죄송하구요.
이제 자주 인사 드리러 마실 갈게요.
늦었지만 모든 님들 올 한해 복만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