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편지 28> 매실이 말하게 하라


유월 들어

한바탕 야단법석을 치렀습니다.



마침내 여무는 매실을

행여 제값받을 때를 놓칠세라

서둘러 따고 나르느라

열흘 정도는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정신을 차려보니

유월 한달은 거의 지나가 있습니다.



마을에 몇 남지 않은

늙은 아주머니들까지

온통 불러내도 일손은 기본도 채우기 어렵습니다.



분대도 안되는 매실농장 식구들이

팔공산 자락으로,

평복 산골농장으로,

죽전 낙동강변 농장으로

빨치산 유격대 처럼

산 넘고, 강 건너, 너른 매실 들판을

축지법과 공중부양법을 뒤섞어 날라 다녀야만 했습니다.



열흘동안

삽십톤이 넘는 매실이

유기농 매장, 생협 등을 통해

도시로 옮겨간 듯 합니다.



매실이 농장 문을 나선 직후,

쏟아지기 시작한 도시로부터의 전화 공세는

가히 무차별적입니다.



매실 따고 나르기에 버금가는

치열한 전투양상입니다.



매실이 깨끗하지 않다,

매실이 파랗지 않다,

매실이 작다.



장사꾼에 대한 불신이 평생 몸에 밴

도시의 소비자들의 호전적인 공격이 태반입니다.



이럴 때

사람이 하는 변명은 한계가 있습니다.

일을 더 그르치게 마련입니다.



매사에 사람이 끼어들게 되면

대체로 믿음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매실이 사람 대신

대답해주어야 비로소 정답이 됩니다.



그저

매실보고 대답하라고 할뿐입니다.



우리는

농약을 먹지 않고 자라서 겉보기에 깨끗하지 않습니다,

땡볕에 도시의 아스팔트위로 실려가다보니 노랗게 익었습니다,

토종은 원래 몸집이 작습니다.



열매를 다 털어낸

텅빈 매실 들판에

메아리없는 아우성만

웅성거립니다.

======================  홀씨의 마을편지 2004. 6. 21

홀씨가 작년에 보성차밭 부근의 어느 매실농장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런 저런 잡지며 신문에 투고도 하고
책 만드는 일에 매진도 하고 있다 합니다.

아웃사이더 같기도, 방랑자 같기도 하지만
늘 세상의 중심에 서있는 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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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3-15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실이 말하게 하라....
흙과 자연의 목소리를 듣고 갑니다.

김여흔 2005-03-15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 ^^
흙과 자연의 목소리, 잉크님은 그것이 들리는 게로군요.
역시 잉크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