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이 속같은 세상>이라는 수필집이 있다. 개인적으로 아끼는 글모음집이다. '최후의 분대장' 고 김학철 선생이 남기신 글이다. 그 수필집에 보면 <독립운동사의 과대망상증> 이라는 글이 있다. 글은 이태백의 과장법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망여산폭포중>에 나오는 " 비류직하삼천척" 이라는 표현 말이다. 김학철 선생은 문학이나 예술에서 사실에 바탕을 둔 과장은 허용될 수 있으나 다른 영역에서는 곤란하다고 말씀하신다. (과장의 반대,완소법이나 그 외 의도적 축소도 마찬가지이다. 거리의 시위대중의 숫자에 대한 집계축소는 대한민국 경찰의 복무수칙 중에 하나임은 명백하다.)
김학철 선행은 1998년 10월 23일 <조선일보> '봉오동전투' 기사를 문제삼는다. -지금부터 아마 헷갈릴 거다.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것은 싫은데, 독립운동의 성과를 축소하기도 싫을테니..그런데 둘 다 김학철 선생과 내가 말하는 방향을 잘못잡고 있는거다.- 조선일보에는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300여명을 부상시킨...그리고 10월 일본군의 1개 여단을 사살..." 이런 말이 나온다.김학철 선생은 이게 부풀려진것이라고 말한다. 냉소적 어투로 "봉오동 전투는 300배쯤, 청산리 전과는 한 500배쯤 부풀려져서 세종문화회관을 경축모드로 채워놓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참가했던 조선의용대 함화공작의 경우 '일본군 병사 200여명의 투항'이라는 보고에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2명을 포로로 잡았을 뿐이라고 한다. 전쟁에 대한 보도란게 그렇지 않던가. 전의를 불태우고 후방의 인민들에게 의욕을 고취하려면 그런 조작들이 횡횡하는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기도 한다. 김학철 선생은 '독립운동'의 의지에 먹칠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가 최후의 분대장이었음을 기억하시라- '독립운동'이라는 드높은 가치에 복무하기 위해 '민족'의 이름을 조작되는 저널리즘적인 역사기술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남과 북이 모두 이런 우를 범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김학철 선생은 서울보성고등학교에 초대된 '위대한 보성인' 수상식 소감에서 이렇게 말해버린다.
"일본군과 싸우긴 싸웟지만 열에 아홉은 졌소이다. 400만 이상의 군대가 마구 엎치락 뒤치락하는 판에 조선 의용대 총 몇 백자루가 고작. 그걸 가지고 어떻게 큰판 싸움을 벌일 수가 있었겠습니까. 세발의 피지요. 그런 걸 혁혁한 전과라시는데는 낯이 간지럽습니다. 우리의 항일무장투쟁은 그 전과정을 통해 대첩 운운하는 따위의 거창한 용어로 표현할 만한 전역을 ,우리 단독으로는 애당초에 치러보지를 못했습니다.....자꾸 지면서도 일본군이 무조건 항복을 하는 날까지 계속 달려든 것만은 평가받을 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선은 과도한 레토닉에 대한 김학철의 겸손함을 살펴야한다. 툭하면 내뱉는 '민족의 영웅','불후의 문장가','난세의 등불' 등등의 주례사식 레토닉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볼 내용이 있다. 내가 생각컨데 김학철의 소감 중 두가지에 주목해야한다. 나는 두가지 말이 모두 맞는 것 같다. 하나는 전쟁의 결과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마지막 평가이다. 마지막 평가를 과장하기 위해 앞의 결과를 수정해야하는지, 또는 최소한 미화시켜야 되는지는 의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김학철과 그의 분대원들은 여전히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여간...
나탈리 에니히의 <반고흐 효과>- 알라딘 예술MD가 고흐를 소개하며 이 책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뛰어남의 증거이다- 는 분명히 예술사회학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현재의 추모열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사회학적이며, 정신분석학적으로 인용될 수 있는 몇가지 아이디어를 준다. 이 책은 예술사회학이자 고흐를 중심에 둔 대중심리학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연역적으로 구성되는 고흐의 경우와 앞으로 다양한 변수가 산재해 있는 현재의 경우를 같은 맥락에서 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정신분석학'이라는 말을 넣은거다.고흐의 경우는 분석적 결과를 도출할 수 있지만 현재의 경우는 가능태로 무수하게 열려있다. (사실 무지하게 조심스럽고 소심하게 쓰고 있다게 느껴질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알라딘의 글쓰기가 그렇게 되었다. 이해는 바라지도 않으니 오해나 하지마라.)
이명박이 쫓겨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것도 솔직히 자신하진 못하겠다. 어느 누구도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 위의 선택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대신 이명박이 다음 정권까지 그 영속성을 유지하긴 힘들어보인다. 즉 최소한 보수우익들이 칼날을 잡아도 이명박을 도마뱀 꼬리로 삼아야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 같긴 하다. 실제 노제에 참가한 사람들이나 추모객들이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는 그저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단순한 휴머니즘에 기인한 추모객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의 본바탕이 드러내는 자연스러운 실책-이걸 실책이라 해야 될지 모르겠다. 본성에 기인한 자연스러운 행동이 맞는듯 한데-은 그런 이들이 가진 '망자에 대한 예의'조차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장례에 대한 예의'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은 유물론적 진보주의자들이 아니라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이다.
덕분에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올라갔다. 제각각 동상이몽을 꿈꾸며 '노무현의 정신'을 이어받는데 사활을 걸었다. '죽은 제갈공명으로 산 중달을 이겨보겠다.' 는 염원인데 사실 이건 '염원'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현재 그 '공명의 후광'의 적자로 나선 정당은 '민주당'이다. 조만간 유시민을 비롯해서 다른 움직임을 만들어 낼 지 모르겠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노무현과 대립한 경험이 있어서 기댈 수도 없다. 오래전부터 사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드러누운 용도 새끼 봉황'도 없었다. 다음 번 대선에서는 어떤 때보다 '비판적 지지' 열풍이 강할 것 같다. '노무현'에 대한 대속의 정신과 '비판적 지지'는 정비례할 것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또 한나라입니까.이번엔 힘을 합쳐 막읍시다.' 이런 정서를 누가 막겠는가? 민노,진보신당 당내에서도 극심한 논쟁에 시달릴 것이다. "그럼 이명박과 추종세력들이 대통령되는 걸 두고보자는 겁니까?" 두 당의 기본 정서 상 비지론을 당론으로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그런 '당정체성' 자체를 흔들기 때문이다. 당원들중에 다수는 당론과 달리 비지를 선택할 것이다. 자기가 꼬박 꼬박 돈 내는 정당의 후보를 뽑지않고 다른 당의 후보를 뽑는것이다. 물론 일견 좀 어처구니 없어보이기는 하지만 당이라는 자체가 동일한 구성체가 아니기때문에 사회적으로 보면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차라리 그 마당이 되면 한국에서는 한번도 실시해본 적이 없는 대연정에 들어가서 한자리 차지하는게 낫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나는 과거 노무현을 찍지 않았다고 '교조주의자' 내지는 '비현실주의자', 심지어 '한나라당 2중대' 라는 말을 들었다. 어느 분이 이 땅의 진보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었는데..이 땅을 떠난 어떤 초월적인 구성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저런 말 들으면 역설적이게도 정말 이 땅의 진보에는 기대하고픈 마음이 떨어지긴 한다. 차라리 대한민국의 헌법으로 모든 정당을 다 없애고 미국식으로 공화당/민주당 양당체제로만 남겨 놓는게 좋을 것 같다. 진정 그게 국론분열과 분열된 진보를 해결하는 길처럼 보인다.진보적인 사람들도 선택이 쉽고 말이다. (이건 반어적이다.) 현재 정치적 편가름의 고정점이 '노무현'이 되고 있는 것은 나로서는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