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진보주의자들 보다 보수주의자들이 애용하는 단어이다. 노사협상 장에서 고래 고래 소리지르며 '그만 둡시다.' 하는 노동자측에 '어...협상장에서 왜 그래. 품위를 지켜야지.' 하는 식으로 자주 사용된다. 그렇다보니 이 단어는 이데올로그적 채색된 듯 한 느낌도 든다.('자의적인 기능어로 작용한다.'가 옳겠다.)  '품위'라는 말에는 귀족적이며 브루주아적인 향기가 난다. '귀족의 품위, 양반의 품위' 같은 말은 익숙해도 '서민의 품위' 같은 말은 맑은 날 우산을 들고 나간 것 처럼 어색하다. 있을 법한 말인데도 그렇다. 하지만 '품위'가 어떤 자긍심같은 것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역사에서나 문학과 영화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기품 넘치는 행동을 여럿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생황에서 품위있는 행동거지는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것' 이어서 결코 쉽사리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품위'는 헤겔의 '주인-노예'의 비유에서 주인이 가진 덕성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품위 있는 행동' 을 잠시 유보하는 것이 '품위 있는 대의'를 위해 적절할 때 도 있다. 이것은 긴박한 상황에서 제한적이며,전술적이어야 한다. '똘레랑스'의 품위가 때로는 '대화와 타협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약자에 대한 윤리적 강제라는 이름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결코 잊지는 말아야 한다. 

'품위'는 말을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기품'이나 '인품' 등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기품'이라는 말은 왠지 황손의 자손이나 소공자같은 귀족의 냄새가 많이 난다. 반면 인품이라는 말은 개인의 윤리적 문제를 더 부각시키는 것 같아서 좀 부족하다. 결국 더 나은 단어를 찾지 못할 바에야 '품위'라는 말을 계속 쓸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앞서 말했듯이 '품위'라는 말은 보수주의자들의 전매특허다.여기에 사회생물학적 우열같은 것은 없다. 유일한 이유는 역사적인데 그것은 그들이 먼저 태어난 자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단어의 적용의 재산권은 일부에게 국한된 말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ㅂ씨와 ㅈ씨를 모두 탐탁해하지 않는다.  ㅂ씨는 저열하고 ㅈ씨는 경박하다. 물론 내가 더 애정을 갖는 이는 ㅈ씨다. 그의 책을 여러 권 읽었고 '빠'인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도 애정을 갖고 있다. 내가 관상학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는 '얼굴 하관'이 부실하고(흔히 복없이 생겼다는 거다.) 그것때문인지 실제 발언에도 그런 '경박함'을 보여줄 때가 여러번 있었다. 그의 그런 행위가- 로쟈님의 책 에필로그에 나온 수잔 손택의 말처럼 '나는 생각한다.고로 폭발한다.'때문임을 모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지와 비판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편이다. 내겐 이런 '하관 부실의 인상'로 기억되는 몇 몇 정치인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MB다. 지난 대선에서 지인 한 명은 '이미지 정치'의 부활을 간절히 염원했다. 왜냐하면 노인들은 '흔히 대통령감 '  흔히 '인상'으로 먹어준다는 것이다.그런면에서 이미지 정치가 부활하면 'MB'에게 표가 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관상이 서생을 닮아서 그런 것이겠다.) 물론 그 지인은 '이미지 정치'의 개념을 '인물의 인상'이라는 수준으로 잘못 이해하며 최소이해한다. 그건 좀 빈약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을때 서로 웃으며 내심 그런 기대조차 해보았다.  현재 우리의 비극은 MB가 부실하며 무능한데다 권력을 잔뜩 가지고 있다는 거다. 역설적인 희망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사과의 부실함이 오히려 저항의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무능한 권위주의정권'은 이렇든 저렇든 대중의 심판대에 오를 것인데, 그 전에 그 공포감에 스스로 질식할지도 모른다. 지금 보여지는 MB의 행태는 '편집증'의 발전단계를 그대로 닮아있다. (단결된 인민은 지지 않는다!)  

 또 한 명의 '품위'가 별로 없어 보이는 이가 있는데,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O씨다. 좋은 의미로 이 양반의 '품위' 없음이 좋았던 적이 단 한번 있었다. 그가 캐쥬얼한 차림으로 국회에 들어갔을 때다. 예술적인 상상력이 보기 좋았다. 국회의원들이 라운드티를 입고 앉아 있을 수 있다면 뭔가 지금보다는 조금 나은 정치가 되었을 것이다.(내가 품위로 봐주는 것은 라운드티까지이지 반바지는 결코 안된다. 50-60세 먹은 정객들의 듬성듬성난 다리털을 TV로 봐야하는 것은 것은 결코 미학적으로 아름답지 못하다. 결국 정치혐오감을 키울 것이다. 나는 그런면에서 또 보수적이다.) O씨의 '하관부실'을 여실히 드러낸 일은  '사표론'이었다. 민노당에게 2중대라든가...민노당을 지지하면 한나라당이 결국 된다는 식의 발상을 대선,총선 기간을 물론 야당협조를 구해야하는 자리에서까지 공공연히 흘렸다. 문제는 ㅇ씨가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인데...그것은 자신의 지지정당이 '여당'인 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늘 '소수'로 착각을 하고 대선3% 꼴랑넘은 정당을 '자신들을 공격하는 야속한 진보 야당'이라고 받아들인 거다. 마치 고등학생이 대학생에게 두드려맞고 나서 초등학생에게 와서 '네가 안도와주어서 그런거잖아. 네가 더 나빠'라는 식이다. 사실 나는 0씨에 대해 그의 하관부실이 못미덥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냥 저냥 지켜봐왔었다. 그런데 '사표론'을 공공연히 들먹일때는 정말 '폭발'하고 말았다. 그의 하관부실이 여실히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 못미더운 '인상학'이 적중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품위'가 있다면 그런 식으로 '작은 정당'에 폭력을 행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기 지지정당에 대한  '포지티브 전술'로 가는 것이 훨씬 '품위'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거기에 더 나쁜 것은 자기들이 진정한 피해자인양 행세한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으로 O씨의 지지율이 오른다는 사실이 자주 보도된다. 모 잡지에서는 가상 선거까지 해보는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진 수수한 매력과 견줄만큼의 인간적 매력이 없다.) 알라딘의 어떤 분이 상중 '문재인'수석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나와 내 아내가 상중에 TV를 보며 자주했던 말이다. 거기에는 모종의 '품위'가 있다. 인기가 오른 O씨는 정치세력화를 시작할테고 그는 과연 '적'의 저열함을 비난하면서 어떤 다른 종류의 '품위'를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소한 자기보다 세가 약한 정당을 '2중대'로 모는식의 '탈품격화'된 파격은 의상착용 정도에서 멈추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O씨를 '품위'없다고 비판했으니, 너는 '우익 보수주의자'군 하는 당신도 마찬가지다.나는 ㅈ씨도 비판했으니 그럴 비난을 받아도 싸긴한데....그런데 ㅈ씨나 O씨는 진보의 성역인가? 어쨋거나 나는 ㅂ씨가 거의 재수없다는 말로 당신들을 안심시키겠다. 그리고...예를 들자면...니체가 신은 죽었다..또는 지젝이 성관계는 없다...라는 식으로 말했던 것처럼...역설적이게도...나는 대중적 글쓰기를 하는 진보적 필자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내가 그들의 역량과 열정을 얼마나 아끼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또 헛소리하는 이들이 있을것이다...그럼 우파논객들은...어떻게 하냐구...그들은 그냥 소각되길 바란다. 됐지? 당신의 힘으로,당신의 학습으로 대중적 진보논객들을 넘어라. 그들이 진짜 원하는게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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