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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1 - 중국의 세기
조너선 D. 스펜스 외 지음, 콜린 제이콥슨 외 사진편집, 김희교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는 크기가 LP 디스크 만하다.그리고 무겁다. 헬스 클럽에 있는 2KG 아령 생각하면된다.실제 집에 있는 체중계에 달아 봤다.(정확히 1.8KG정도다).그런데 표면적이 넓어서 그런지 같은 무게 아령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진다.표지는 악어 등가죽 처럼 딱딱하다.중고등학교때 이런 책으로 선생님에게 머리통 맞으면 아마 두개골 함몰이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늠름한 용모를 자랑하는 이 책,회사에 책 들고 다니는 나 같은 이들에겐 저주다.만약 이 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회사 엘리베이터를 탔다면 아마 주변 사람들이 한 소리 씩 다 했을 것이다.
"오..요즘 할랑한가 보지.책도 보네(지들은 할랑할 때 컴퓨터 눈빠지게 보면서) ", "겨드랑이에 굳은 살 박히겠다.뭔 책이 그렇게 크냐?", "그래..중국이 요즘 괜찮지.중국 가서 사업하게? " 고로 이 책은 단 한번도 내 출근길의 동반자가 된 적이 없다.이렇게 큰 책들은 적들에게 나의 정보를 드러내는 결과를 낳는다.
만약 지하철에서 이 책을 보겠다거나 ,흔들리는 출근길 버스 안에서 폼잡으려고 이 책을 보려는 분이 계시다면 심각하게 고민해보기실 바란다.옆에 서 있는 사람 허벅지를 책의 모서리가 찔러서 연신 사과의 멘트를 날려야 할지도 모른다.또한 여자 분이라면 이두근 쪽으로 알통 하나 쯤 생길 지도 모른다.진짜다.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1편>은 중국이다.근대 초기의 무기력을 딛고 '용트림하는 사자'로 변한 이웃 나라.청 왕조의 멸망 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중국 근현대사를 다룬다.예전에 우리나라 신문사에서 가끔 발간하곤 했던 <대한민국 보도사진집>처럼 이 책에도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생생한 사진들이 중국 역사의 한 면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때론 사진 한 장이 어떠한 긴 설명보다 압축적으로 당시 상황을 설명해준다.홍위병들의 하얼빈 시장 이판우를 삭발하는 3컷의 사진은 당시의 비극을 무엇보다 잘 설명해준다.가위를 잡은 어린 소녀 홍위병의 신념에 찬 모습,목에 '흑방의 단원'이라는 팻말을 걸고 고개 숙인 이판우,그리고 그 뒤에 인자하게 걸린 모택동의 사진,홍위병에게 절을 강요하는 청년의 당찬 표정.... 그 외에도 양계초 가족의 근대화한 생활 양식의 변화.중국 최초의 헐리웃 스타 안나 메이 웅의 일상적인 모습,숙청된 평전과 함께 모택동의 원본사진과 평전이 지워진 수정본 사진...유명 정치인들의 모습외에도 대약진 운동과정에서 민중들의 모습,좌우 갈등의 희생자들 모습등 역사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게 해주는 사진들이 꽤나 많이 수록되어 있다.
조너선 스펜스와 안핑 친의 역사 서술 방식은 비교적 간략하며 핵심적인 것 만을 집어 내고 있다.그렇기 때문에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쉽게 쉽게 중국 근대사의 흐름을 읽어 낼 수 있다.번역도 평이한 편이다.한가지 좀 곤란한 점은 인명에 대한 표기이다.우리는 한자 문화권에 있기때문에 대개 중국인들의 이름은 우리식으로 읽는데 익숙해 있다.말하자면 마오쩌둥이나 떵샤오핑 보다는 모택동,등소평이 익숙하다는 것이다.하지만 이 책의 인명은 전자를 따르고 있어 기억을 되짚어서 매치 시켜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대학 다닐 때 중국사와 관련된 강의를 즐겁게 들었다.기말 시험 대신 중국 근대사와 관련된 리포트를 내는 것이 있어서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한자이름에 익숙해 있었다.장학량,주덕,임호,이입삼,호요방...물론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때 쯤 뒤에 달린 <찾아보기>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한자표기가 되어있었다. 괜히 머리 굴리느라 고생했구나 스스로 탓했다.요즘은 강택민보다 짱저민 하는 식으로 쓰는게 대새이긴 하다.그러나 관습의 힘은 생각보다 좀 강하기 때문에 한자어라도 넣어 주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아쉽긴 하다.
중국의 역사를 둘러 보면 우리 나라와 유사한 점을 많이 느끼게 된다.물론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나라와 미국의 영향 하에 자본주의를 건설한 나라가 같은 양상을 띄지는 않을 것이다.단 외적 조건들 중에서 비슷한 것들이 있다는 점이다.먼저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했던 경험이다.이 과정에서 좌우 이념적 분파가 형성된다.그리고 내전을 겪는다.또한 장기 집권 과정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며 민주주의의 목을 죈 것 까지 유사하다.둘 다 전근대 유교문화에 바탕을 둔 농촌 사회를 근간으로 하였기 때문에 사회문화적으로 유사한 측면도 발견하게 된다.현재 1중국 2체제를 택하며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우리와 유사하다.우리의 분단 역사가 반쪽짜리를 극복하고 북한의 역사 마저 우리의 역사로 수용하게 된다면 중국 근대사와의 유사점은 더욱 많이 찾아지게 될 듯하다.물론 그날이 오려면 멀었지만 말이다.
중국 근대사에서 사실 가장 재미 있는 부분은 1,2차국공합작 과정,대장정과 모택동 집권시 권력 쟁투과정이다.역사적으로 가장 혼란스럽기도 했던 시기이지만 읽다보면 마치 한편의 정치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진진해 지기 까지 한다.모택동 시기에 있었던 하방운동,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4인방,등소평의 7전8기 등등...... 21세기 미국을 견제하는 유일한 제국 중국,경제는 자본화 하지만 정치는 사회주의를 유지한다는 이중전략을 쓰는 중국.이들의 현재의 모습은 수많은 정치적 굴곡의 결과이다.현대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명 그들이 지나온 터널과 그 터널 속에서 민중 개개인에게 내재화된 가치들을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지금 우리에게 중국은 거대한 잠재력과 후진화된 생활 태도로 이미지화 되어 있다.현대의 중국은 우리에게 몇 개의 단어로 수렴된다.사회 전반에 걸친 만연한 부패,극심한 빈부 격차,저임금의 노동력,Made in china =질 낮은 저질 상품,유해한 농수산물..그러나 성장가능성이 가진 두려움...
한 두권 중국 근대사를 읽었던 대학 시절,버스 안에서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동양사학을 전공하던 친구였다.아는 체 하느라 '문화대혁명'에 대해 뭐라 뭐라 이야기 했다.그 친구는 자신도 그것에 관심이 많은데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너무 너무 어려운 문제라고 이야기를 해서 단편적 지식으로 떠벌였던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한 권의 짧은 책으로 중국 근대사를 이해할 수는 없다.단지 그들이 걸어 온 길을 TV 다큐멘터리 보는 심정으로 스르륵 훑어보기에 이 책은 여러모로 훌륭하다.그리고 또한 비싸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