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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장일순 지음, 이아무개 (이현주) 대담.정리 / 삼인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살의 봄이었다.<노자 도덕경>을 처음 만났다.어제 밤에 퍼부어 댔던 최루탄의 잔향을 맡으며 빈 강의실을 찾았다.햇살이 반쯤 드는 빈 강의실에서는 언제나 '학교냄새'가 났다.노자를 읽었던 건 고전에 대한 애정이자 약간의 의무감같은 것이었다.한자는 대략 운만 따라 가고고 한글로 풀이된 내용만 읽었다.알 듯 말 듯 했다.
당시 선배들과 주로 하던 사회과학 세미나에서 노자는 비판의 대상이었다.세미나는 유물론에 대한 이해를 주목적으로 했던 것들이었다.그 곳에서 노자나 석가의 가르침은 주관적 관념론으로 분류되었다. 그들의 가르침은 허무주의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어 왜곡된 현실을 변혁하기 보단 순응하는 반동적 철학으로 읽히곤 했다.고전이 주는 아우라에 대해 비판해보지 않았던 대학 신입생이었던 내게 신선한 시각이었다.하지만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는 것에 즐거움을 느꼇을 뿐 고전 자체에 대해 내가 두고 있던 무게감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나는 지금도 종교가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생각한다.종교에 대한 사회학적 비판을 보면 나는 대개 그 내용에 동의한다.하지만 종교가 가진 심리적,문화적 기능 역시 인정한다. 혐오감이 가고 미신 같아 보이던 무속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애정을 가질 수 있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결과적으로 나는 ' 종교로서의 종교를 부정'하고 사회,문화 현상으로서 종교를 바라보는 입장에 서 있다.
장일순 선생과 이현주 목사 역시 <노자 이야기> 에서 인류의 큰 가르침으로써 노자,석가,예수를 이야기한다.책은 기본적으로 <노자 도덕경>을 한 줄 한 줄 읽으며 대담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그러나 노자의 해석에만 목적을 두지 않는다.노자를 이해하기 위해 아니 절대적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불교도 기독교도 전부 인용된다.특히 이현주 목사는 전공을 살려 도덕경의 내용과 성경의 내용 중 동일한 말씀을 잘 찾아 내어 들려준다.책 전체에 수시로 등장하는 예들이지만 그 중 대표적으로 이런 비유가 있다.
도덕경 4장에 보면 유명한 '화기광하여 동기진하라'는 말씀이 있다.풀이하면 '그 빛을 감추어 먼지와 하나가 된다' 는 것이다.먼지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물과 더불어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만물이 같은 뿌리를 두고 있으니 천지만물과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예수가 가난한 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하면 그것이 곧 나를 대접하는 것이다 라고 한 말 역시 이와 같은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여기서 예수가 말한 나는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가 아니다.먼지이며 하늘이고 땅이며 우주이다.석가모니가 태어나면서 '천상천아 유아독존'이라고 했을 때 그 '아'에 해당하는 존재이다.물론 이 '아'라는 것 역시 우리가 말하는 self 와 다른 것이다.'아상'을 없앤 '나'이다. '자기를 넘어선 자기,천지와 하나 되어 있는 자기'인 것이다.
도덕경 16장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모든 것을 품음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왕이요 왕이 곧 하늘이요 하늘이 곧 도요 도가 곧 영원함이니 몸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 도의 불생불멸을 이야기하고 있다.이현주 목사는 여기서 '부활'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즉 부활이라는 것이 죽었던 사람이 다시 멀쩡하게 살아서 밥먹고 여행다니고 대소변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는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한다.부활이라는 것은 썩을 육신의 옷을 벗고 영원히 썩지 않는 옷을 갈아입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들은 종교적 입장에서 보면 범신론적 관점을 가지고 다른 종교의 가르침도 노자의 이야기로 수렴한다.여기에서 하나님이나 부처님은 다 하나다.모두 공이요 무다.어디에나 있으며 어디에도 존재 하지 않는 존재이다.인간의 가치로 재단할 수 없는 자연의 영역이며 도 자체이다.이러한 범신론적 유연함은 종교적 편벽함이 주를 이루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 신선함과 깊이로 큰 울림을 갖는다.
노자의 철학을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그럴 능력도 못되거니와 더욱 중요한 것은 이해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몇가지 키워드로 노자의 철학을 정리하는 것 정도로 머물러야 겠다.
無爲 ...無常...反...樸... 根 ...德 ....道
시각을 조금 현재로 끌어 올려 노자를 보게 된다.노자의 말씀은 여전히 지금 사회에도 유의미한 구석이 많다.특히 '강함'에 대한 이야기는 지구촌 유일의 패권국가에 대한 비판으로 적절하다.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라는 말이 도덕경 76장에 나온다.단단하고 강한 것을 무력에 기대 힘의 외교를 추구하는 강대국에 빗댈 수 있다.노자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죽음의 무리다.노자는 정치에서도 무위를 강조했으며 큰 나라의 역할을 요구했다.61장에 보면 '큰 나라는 하류라 천하가 모이는 자리요 천하의 암컷이다....그러므로 큰 나라는 작은 나라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작은 나라를 얻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큰 나라를 얻는다.' 하지만 현존하는 패권국가에게 이런 이상적인 상황을 기대하기란 무리다.칼로 일어선 자가 칼로 망한다는 말을 듣고 부여잡은 무기나 좀 내려놨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그나마 도덕경에서도 '도가 아니면 오래가지 못한다'라는 말로 패권국가의 몰락에 대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기고 있어서 더운 여름에 위안이된다.
노자를 읽다가 보면 편협한 기독교적 해석에 대한 비판이 종종 나온다.그와 함께 노자나 도에 대한 과소비 역시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든다.노자의 철학은 근본적인 인간과 세상의 변화를 겨누고 있다.절대적 진리를 말하는 논점에서 지극히 당연하다.하지만 노자의 철학 역시 현실의 모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도덕경 후반부에 이상주의적이긴 하지만 노자의 정치철학이 상당부분 담겨있다.하지만 노자나 도,선을 즐기는 사람들 중에는 노자의 현실 적합성은 뒤로 두는 경우가 많다.그들은 성인들의 말씀을 지극히 소아적으로 해석하여 마음의 평화만을 쫓는데 쓰고 만다.사회적 비겁함이나 무관심을 내적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넘어가려는 듯 보인다.이 책의 저자인 장일순 선생은 그 대척점에 있다.실제로 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생활에서의 실천이 있었다.또 내면의 수양만큼이나 현실의 불의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대응했다.장일순 선생은 그러한 현실적 정의가 무용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중요한 것은 옳바른 일을 하고 거기에 머문다거나 어떤 사심을 가지고 그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그런데 선이나 도를 마음깊이 믿는 다는 사람들 중에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는 경우가 많다.노자가 말하는 '무위'라는 것을 철저하게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면서 선시를 즐기고 화두를 나눈다.도에 대해 말하고 여운을 즐긴다....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그런 행위들은 '도'를 소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서구가 zen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선문화를 상품화해낸 것 처럼 ...이현주 목사도 지적하고 있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자기기만'이다.한산의 시나 고승들의 게를 소비하면서 마치 '도'에 이르는 도정에 있다고 믿는 것일 뿐이다.그냥 그런 여백을 좋아하고 즐긴다고 하는게 솔직한 일일지도 모른다.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어떤 행동으로 자신의 앎을 실천하는지 빈방에서 홀로 벽을 마주보고 이야기 나누어 볼 일이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힘든 날이 이어진고 있다.중동에서는 무지비한 폭격으로 무고한 아이들이 쓰러지고 있다.지난 폭우로 인한 수재민들은 제대로 정비도 못한 상태에서 폭염을 맞아 복구가 더욱 힘들다.추운 겨울도 가난한 이들에게는 힘들지만 더운 여름도 마찬가지이다.. 노자는 말한다.
'하늘의 도는 마치 활에 시위를 얹는 것과 같구나.높은 데는 누르고 낮은 데는 들어올리고 남은 것은 덜고 모자라는 것은 채운다.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 모자라는 것을 채우나 사람의 도는 그와 같지 않아서 모자라는 것을 덜어 남는 것을 떠받든다.누가 능히 남는 것으로써 천하를 받들 것인가? '
모든게 같은 뿌리라면 가난하고 힘없는 자도 한 뿌리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