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이안 맥완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는 사람들>이란 그림이 생각난다. 에디워드 호퍼가 1942년에 그린 그의대표작이다.

 그림 안에는 4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한다.세명의 손님과 흰 색 가운을 입은 점원. 손님들은 같은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다른 세계에 있다.같이 동석한 남녀 역시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다.... 아무도 서로에게 대화를 건네지 않는다.단지 깊은 밤 침묵의 시간이 어색한 점원만이  다른 고객들에게 수 천 번도 더 했을 뻔한 질문을 던질 뿐이다.그들은 단절되었다....밤은 병원복도의 빛을 닮아 냉랭하다.푸르스름한 실내등의 빛깔은 그들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닮았다...밤은 깊어간다.유리 병 속에 담겨 있는 듯한 그들의 침묵은 통유리밖의 세상과도 그리고 그림 밖의 세상과도 단절 되어 있다.....이중의 단절과 침묵.....

오랫동안 <암스테르담>을 기다렸다.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부터 품절 상태였다.지난 주였던가..우연히 보관함을 거슬러 오르다가 품절상태가 떨어진 <암스테르담>을 발견했다.잊고 있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만난듯 반가왔다......도착한 책 중에서 가장 먼저 손이 갔다.

<암스테르담>은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교향곡 작곡가인 클라이브와 신문사 편집국장인 버논이 그들이다.이둘은 몰리라는 여성과  사귄 인연이 있다.영화 <글루미썬데이>의 주인공들 처럼 클라이브와 버논은 몰리라는 꼭지점을 중심으로 삼각형을 이룬다.소설은 몰리의 장례식에서 부터 시작된다.몰리라는 매력적인 여성의 최후는 그녀의 역동적인 삶에 비해 초라했다.그녀는 모든 기억을 하나 둘 잃어가며 점점 식물인간처럼 변해갔다.그녀가 죽은 후 그녀와의 사랑을 기억하는 이들이 하나 둘 장례식에 모인다.클라이브와 버논,현 남편인 조지,젊은 시절 엄청난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몰리와 관계를 맺었던 시인,비열할 정도로 현실적인 현직 외무장관 가마니..등등.. 클라이브와 버논은 몰리를 사랑했으면 또한 그녀를 통해 지금은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친구로 남아 있다.장례식에서 이들은 몰리를 추억하며 그들 앞에 있었던 또는 그들 뒤에 있었던 몰리의 연인들을 바라보며 묘한 질투와 내적 혼란을 겪는다.

이야기는 클라이브와 버논이 둘 다 싫어하던 현직 외무장관의 사적 사진이 발견되면서 급격하게 빠른 템포의 진행 수순을 밟는다.사진은 몰리가 찍은 것이며 사진을 제공한 사람은 현 남편인 조지이다.가마니의 사진은 공인으로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성적 취향을 보여주는 사진이다.이 사진의 게재를 두고 클라이브와 버논은 갈등하기 시작한다.....

소설의 줄거리는 이 정도에서 멈추자. 스포일러가 될 필요는 없다.

저자인 이완 맥완에게 98년 부커문학상을 안겨 준 <암스테르담>은 딱 맞아 떨어지는 톱니 바퀴 같다.너무 꽉 끼어서 삐걱 거리는 소리를 내지도 않는다.또 톱니 사이에 구멍이 보일 정도로 헐거워서 겉돌지도 않는다.사건의 전개는 스피디하다. 사건의 진행을 서술하는 각 장의 주인공은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주로 주인공인 클라이브와 버논이 그 역할을 맡는다.가마니의 사진 공개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클라이브와 버논의 심리변화가 교차편집된다.이들의 내면 독백을 통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들을 독자는 시시각각으로 따라갈 수 있다.클라이브와 버논은 외무장관 가마니의 비밀스런 사진 공개를 두고 갈등하게 된다.처음에는 단순한 시각차이로 비쳐졌다.하지만 사안이 커져가면서 이들의 갈등의 폭도 커져간다.그러다 보니 이제는 서로 마음 속에 있었던 상대에 대한 단점과 흠집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결국 가장 친한 친구였던 이들이 가장 큰 적의를 품는 사이가 되어 버린다.물론 서로에게 잠시나마 화해의 제스처를 취해볼 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클라이브는 흐린 날씨 속에 산길을 걸으며 버논에 대한 생각을 하고 분개해 한다.그러나 어느 언덕을 넘어서는 순간 태양이 환하게 빛나고 물기를 머금은 숲 길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다.그리고 갑자기 그 따뜻한 햇빛이 주는 평온함에 버논과 화해를 해 볼까 하는 마음을 굳힌다.별거 아닌 일 같지만 이완 맥완의 장점은 이런데 있다.사람의 감정이란 것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지속력이 항구적일 수도 있고 또 어느 한 순간에 눈 녹듯 사라지는 수도 있다.오늘 아침까지 냉냉하던 연인 사이가 함께 마신 레모네이드 한 잔의 상큼함에 그만 녹아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그저 서로 멋적은 웃음 한번에 넘어가기도 한다.클라이브 역시 버논에 대한 분노의 생각을 바꾸는데 맑은 햇빛 한 줄기면 충분했다.하지만 그들은 화해하게 되는가?  인간의 감정은 그렇다.그 또한 아무런 지속력이 없다.클라이브와 버논의 심리변화는 일상에서 우리가 한 번쯤 겪고 -또 지금도 겪고 있을- 내밀한 것이며 통속적인 것이다.우리 내면은 시장 바닥이다.의심,질투,시기,성공욕,자괴감,열등감,우월감,실패에 대한 두려움등등..수없이 많은 종류의 감정들이 그 안에서 주인을 기다린다.우리는  매일 매일 이러한 감정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되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흥정을 벌인다.이완 맥완은 현대인들이 일상 속에서 갖는 다양한 심리적 갈등을 <암스테르담>이라는 소설 속에서 블랙 코미디화 해버린다.소설 전체의 구조도 그렇고 매 장이 끝날 때마다 무언가 헛웃음 비슷한 것이 나오게 된다.특히 소설의 마지막, 몰리의 남편 조지의 독백은 리하르트 치글러의 <젊은 미망인>이라는 그림을 보는 듯 하다.묘한 성적 예감과  싸늘한 현실의 냉기때문에 비애감 마저 들게 한다.

클라이브와 버논의 갈등 축 외에 시선이 가는 곳은 버논이 속한 신문사 <더 저지>직원들의 모습이다.이들은 조직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군상들의 미니어처이다.타인의 권위에 편승하려는 자,구습은 구습대로 유지하려는 자,결과에 따라 자신의 주장 조차 가변적으로 해석하는 자,남들 보다 반 발 앞서는 잔머리로 타인의 실패를 이용하는 자 등등...소설 속에서 조금 극화되었다 뿐이지 사회적 인간 관계 속에 수없이 발견되는 사례들이다. 이완 맥완은 <더 저지>직원들의 모습을 통해 조직 관계 속의 인간들과 그 관계성이 얼마나 편벽한 것이며 왜소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소설 <암스테르담>의 사건은 단순하고 구성은 치밀하며 심리 변화의 묘사는 탁월하다.인물 내면의 작은 변화에 쉽게 공감할 수 있게끔 한다.인간의 심오함과 가벼움이라는 가치에 리트머스를 들이댄다. 끝까지 쓴 입맛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하지만 감초 조각을 동시에 몇 개 입에 물었을 때 처럼 씁쓸하지만  뱉지 못하게 한다.훌륭한 블랙 코미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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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7-16 21:39   좋아요 0 | URL
저도 봐야 하는데 밀리고 밀리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