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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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가 잔소리를 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 습관이 있다.화장실에 가서 무언가 끄적 끄적 읽는 것이 그것 중에 하나다.화장실에 어려운 책을 들고 가진 않는다.근심 걱정을 풀자는 곳에서 가서 <한미 FTA>관련 책을 읽는 다거나  <노동운동>관련 된 책을 읽는 건 실례다.한동안 어떤 출판사에서는 나 같이 대장 건강에 좋지 않은 결과를 미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따로 책을 만들기도 했다.일명 <화장실에서 읽는 유머>시리즈. 단 한 권도 사 본 적이 없다.그 출판사 입장에서는 노동계급이 민주노동당을 외면하는 배신감을 느꼇음직하다.대신 아주 오래도록 화장실에서 나와 은밀함을 즐기던 책은 음악관련 책이다.그렇다고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화성학이나 대위법 같은 것을 가지고 들어갈 리는 만무하다. 대개의 음악관련 책들은 음반잡지이거나 아니면 음악 에세이류이다.

이 책은 화장실에서 보기 위해서 골랐다.음악의 명소 풍월당 한 켠을 배경으로 멋진 포즈를 취한 저자에게는 사실 좀 미안하다.하지만 책을 고르는 것 만큼이나 어디서 보느냐도 독자 마음이다. 클래식 책이니 클래식한 서재나 도서관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신문을 화장실에서 보는 것도 기자들에겐 치욕일게다.어쨋거나 한동안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볼 수 있을 만큼 이 책을 봤다.얼마나 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대장운동 상태가 양호한 관계로 조금 걸렸을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2>는 나름대로 성공한 1편과 그다지 긴 간격을 두지 않고 나왔다.1편은 안봐서 모르겠다만 2편의 구성과는 조금 달랐다고 한다.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2>에는 부록도 있다. 이 책 안에서 소개한 곡들을 컴필레이션했다. 달랑 책 한 권만 있는 것 보다는 책 속에 나온 곡들을 잠깐이나마 들어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기획이다. 나름대로 클래식 음악을 좀 들어왔던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흥미로운 음반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저자는 책에서 클래식 한 곡과 얽혀있는 자신의 이야기,그리고 곡에 대한 소개,또는 연주자에 대한 이야기 등을 담는다. 바그너의 베젠동크 가곡집 부터 슈만의 교향곡 까지 총 27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그리고 마지막에는 각 곡들과 관련된 음반 3장 씩을 소개한다.그 음반들을 선정한 기준은 다분히 저자의 주관적인 선택이다.한가지 장점은 음반 관련책들에 나오는 고리타분한 옛날 음반들-개인적으로 좋아하긴 하지만- 보다는 최근 음반들이 주로 안내되었다는 점이다.음악에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찾은 사람들에겐 귀를 긁는 음질에 구하기도 힘든 옛 명반보다는 접근성이 용이한 음반이 훨씬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음악 관련 잡지와 책들을 틈틈이 보던 내게 이 책의 내용들은 그다지 새로울게 없었다.그나마 좀 새로왔다는 것은 대구 시향 첼리스트로 있다는 박경숙 씨에 대한 이야기였다.그녀가 레오니드 코간의 딸인 피아니스트 니나 코간과 함께 연주한 음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한국방송 같은 곳에서는 낮 12시에 따로 시간을 내서 국내 연주가들의 음반만 집중적으로 틀어준다.가끔 듣다보면 좀 답답한 연주일 때도 많다.또 어디 어디서 몇 년 공부하고 왔다는 음악가들의 인터뷰를 듣다보면 밑바닥 보이는 것 같아서 채널돌리기 일수다.그래도 국내 연주가들의 성장이 클래식 문화 성장과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애정을 가져주긴 해야한다.(불행한 것은 내가 과거에 만난 적있는 클래식 연주가들-대개 교수들-은 그들의 인문적 소양이나 인식의 지평이나 등등에서 실망 또 실망이었다.나의 불행일 뿐이다만..)

사실 "클래식은 귀족층의 음악이다"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다. 클래식 듣는 사람들은 부정하지만 다른 장르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 비해 계급적으로 위에 있는 것은 맞다.내가 언젠가 이런 말을 클래식 채팅방에서 했더니..어떤 공과 대학원 다닌 다는 친구가 그랬다..."님의 말씀은 편협한 주장입니다.제가 아는 중학교 수위 분이 계신데 그 분도 없는 돈 모아서 클래식 듣습니다.그러니 클래식이 상류층 음악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 공대생의 이론적 개념의 부재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을 뿐이다... 부인하더라도 클래식은 계급적으로 상류층에 가까운 음악이다. 음악 자체는 중립적이라 치자.그렇다 하더라도 음악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계층에 중상류층 사람들이 대거 포진해있다.(좀 전에 말했던 공대생처럼 '전부 그런건 아닙니다'라고 말하지 말기를...내가 전부 그렇다고 이야기하는게 아니니까...나 역시 내가 중상류층이라 생각치 않는다.빚이 얼만데...그렇다고 부르디외의 무슨 자본 무슨 자본 이야기도 마시길..오래전에 읽어서 가물가물하니까) 책의 저자인 닥터 박종호,CEO박종호 씨가 대표적인 케이스일 것 같다. 이 분은 나름대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적 품위를 유지하면서 일년에 한 3분의 1쯤 외국공연 보러 다니시는 분이다.한 번 만나서 인사를 나눈 적도 있다. 있는 사람들이 가진 타인을 대하는 여유로움같은 것이 느껴졌다. 문화 자본축적에 목이 말라 있는 압구정 주부님들을 대상으로 오페라 강의도 하신다. 부자들이 흥청망청 명품 사대는 것보다는 차라리 클래식 공연에 돈쓰는게 나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물론 그것도 내 삐딱한 눈에 예쁘게만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부자들의 -인척하면서 클래식 듣기나  고상함으로 많은 것들을 은폐하고 있는 클래식 듣기는 진짜 염증이 난다.

 

첨에는 안쓰려고 했는데 결국에.....YES24에 박종호님의 인터뷰가 실렸다. 달뜬 목소리로 풍월당 홈페이지에 글이 올랐다.심심해서 봤다. 또 외국 같다 온 자랑하려나 하고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였는데...이런 대목에서는 콱 하고 목 밑에서 뭐가 올라왔다. 그대로 인용해보자.

 

(류화선 기자인지 편집자인지)  정치나 사회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만.”
(박종호)“저는 부산에서 자랐습니다. 부산은 항구도시라 새로운 문물이 빨리 들어오죠. 다른 지방 사람들은 모두 서울을 동경했지만, 저는 바다 밖 세계를 동경하면서 자랐어요. 저 바다를 건너면 나가사키가 있고, 마르세유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곳에 꼭 가리라 하면서요. 그래서 기질이 코스모폴리탄적입니다. 저는 문화적인 면에서 국가가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외의 의미는 잘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부터 ‘한국인은 이러이러해서 우수한 민족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웃기고 있네’ 그랬으니까요. 아니키스트 기질이 농후하죠.(웃음)”

(류)“선생님이 젊을 때는 한창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이 활발할 때였는데요.”
(박)“그때도 저는 그런 운동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저는 떼로 모여서 하는 것 정말 싫어합니다. 폭력성이 감지되어서요. 젊은 때의 에너지는 모두 예술에 쏟아 부어졌죠.”

 

이게 대한민국 클래식 듣는 귀족층의 전형적 형태들이다.국내 문제에 관심없으면 코스모폴리탄이 된다.현실 정치에 대해 무지하면 아나키스트가 된다. 약자들이 모여서 하는 폭력성은 싫으면서 국가 권력이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성에 대해서는 나몰라 한다. 매사 이런식이다보니 한켠에서는 "난 클래식을 좋아하는데 클래식 듣는 사람들은 싫어"라는 말이 나옴직도 하다. 물론 그저 평범하게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일 수 도 있다.내가 귀족적 클래식애호가들에게 비비꼬여서 그렇게 본 것 이라면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예의 아름다운 말로 위장했지만 저건 그냥 "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별 관심없었어요. 그걸 내가 알아야하나. 아름다운 음악이 있고 좋은 와인이 있는면 그 뿐이지" 라는 말이다." 그냥 그렇게 이야기하는게 솔직하다. 난 권장할 순 없겠지만 누가 그렇다고 한다면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문제는 대단히 세속적인 사적 자유주의의 개념을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름다운 말로 포장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다만 모든 클래식 애호가들이 저런 식은 아니라는 것에 위안을 갖는다.

 

진짜 클래식 음악이 필요한 곳은 휘황찬란한 압구정 한 복판이 아니다.클래식이 들어간 가장 훌륭한 영화장면 중에 하나 <쇼생크 탈출>을 기억하시는가? 주인공이 LP판을 돌린다.모차르트의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이중창이 폭력과 인권말살이 자행되는 교도서안에 퍼진다. 영화 속 모건 프리먼의 나레이션이 흘러나온다."나는 뚱뚱한 여자들이 부르는 노래가 그렇게 아름다운지 그때 처음 알았다"...

언젠가 알라딘의 어떤 분이 은퇴 뒤에 시골에서 문화센터하고 싶다고 했다.나 역시 그런 꿈을 가져본 적이 있다.시골이어도 좋고 또는 조금 허름한 복지관이어도 좋다.나의 음반들과 내가 사랑하는 음악이 그곳에서 나와 함께 해방되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밥먹듯 외국다닐 수 있는 사람보다는 정말 삶이 힘든 이들에게 진짜 좋은 음악이 필요하다.내가 가장 아름답게 들었던 음악이 1년 장기 여관방에 살았던 시절의 클래식 음악이었기 때문에 그걸 안다.

화장실에서 즐겁게 봤다.CD는 누구 줘도 되겠는데..주기에는 또 대단치 않으니..계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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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1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6-06-11 22:10   좋아요 0 | URL
b님> 저희 집 앞에 어린이 도서관이 하나 생깁니다.곧....
지금 생각에 거기 시청각실 같은게 있을지 모르겠지만...기회 닿으면 아빠와 함께 듣는 음악감상회 같은 프로그램 하나 만들자고 할 생각이에요.제가 좀 시간이 있어야 되는데..ㅜㅜ
d님>님께 드리려면 다른 것도 함께 만들어야 겠는데...맘 만 먹으면 금방 만들 수 도 있겠지만 ... 어쨋거나 곧 CD하나 만들어서 몇 분께 배포하겠습니다.님께도.

보르헤스 2006-06-12 07:46   좋아요 0 | URL
하! 역시나 드팀전님 기대를 져버리시지 않는군요. 1편에 비해 2편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모릅니다만... 1편도 그리 좋지는 않았거든요. 인터넷 클래식 동호회 사이트에 10분만 투자해도 얻을 수 있는 빤한 정보의 나열이랄까. 드팀전님께 땡스 투 해드리고 싶지만 이 리뷰읽고 책을 살 것 같지는 않네요 ^^

드팀전 2006-06-12 09:14   좋아요 0 | URL
보르헤스님>딜레마에요...이 책은 리뷰도 별로 없고 해서..예쁘게 써주면 이 주의 리뷰 같은 것도 기대해 볼 수도 있는데....예쁜 리뷰가 아니어서 알라딘에서 싫어할 듯.ㅎㅎ 하지만 이주의 마이리뷰 보다 보르헤스님의 격려가 훨씬 마음 흡족합니다.

2006-06-13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mkoangso 2008-02-16 00:57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 이 책을 사기전에 님의 글이 매우 비판적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읽고보니 님의 글에 동감이 갑니다. 책에서 기름진 역겨움이 딱 화장실용입니다.물을 내리면 어지간한 냄새는 다 사라지니까요.

드팀전 2008-02-17 18:56   좋아요 0 | URL
아..예전에 쓴 글인데..좀 당파적으로 쓰긴 했군요.하지만 근본적인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특히 이 글을 쓸 당시 제가 인용하기도 했던 저자의 인터뷰를 보고 하도 어처구니가없어서 더 비판적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제가 화장실에서 봤다는 것은 '화장실수준'이란 뜻은 아니구요.정말 화장실에서 봤다는 겁니다.^^ 가끔 화장실에서 철학책을 보기도 하는데 일이 잘 안풀리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