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우리시대의 논리 2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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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에 노조가 생긴 건 내가 입사하던 바로 그해였다.경영진 퇴진 운동이 자연스럽게 노조 결성으로 이어졌다. 정확한 내막을 알지는 못하지만 회사 내 권력투쟁이 노조 성립에 도움이 되었다는게 중론이다.당시 경영진에 반대하던 중간 간부들이 전부 노조 출범식 때 뒤에 서서 묵묵히 힘을 싣었다.하지만 낭만적인 광경은 아니었다.결국 그들은 그들의 정치적 목적에 도움이 되기에 노조 설립을 지원한 거였기 때문이다.

이후 노조는 노사교섭형 연성노조로 흘러갔다.일단 가장 큰 이유는 조합원들의 노동자 의식 부재때문이다.언젠가 노조위원장이 총회에서 '파업동력'의 확충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내 식으로 이해하면 우리 조합원들은 먹고 살만다하보니 파업 의지가 없다는 뜻이다.이건 노조에 있어서 치명적이다.도대체 파업동력이 부족한 노조가 회사와 어떤 무기를 가지고 싸운단 말인가? 전쟁터에 나간다고 하면서 총알은 두고 총만 들고 나가는 셈이다.재작년인가 노조 대의원할 때 노조에 가서 좀 강성 발언을 했다.그랬더니 일부 조합원들은 "에이 그래도 그렇게 까지는.." 대략 이런 식의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이 사무직 노동자들의 의식 속에는 '파업'은 현대 자동차나 대우조선 같은 블루 칼러 들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이 스스로 노동자임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는가? 그들의 정체성은 쪽팔리게도 '회사원''근로자' ....뭐 이런 것이다.화물연대 노조가 파업을 하면 이들은 지독히도 욕을 한다.국가 경제를 걱정하며...반면에 우리 회사의 임금문제가 나오면 얼굴 벌게진다.노조의 연대성,노동자 의식...이거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그렇다면 왜 노조에 가입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노조를 통해 입금을 올려받을 수 있고 사내 복지등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하지만 거기에만 머물고 마는 것이 문제다. 지독하게 사적이고 이기주의적인 노조가 되어버린다.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이 참 답답했다.너무도 당당하게 기업별 이기적 노조를 외치는 선후배들을 보며....그래서 지난 달에 노조사무실이 슬쩍 들러서 위원장 한테 그런 말을 했다. "위원장님...거 우리 노조는 노동자 정치교육 좀 해야되는 거 아니가요.... 교육 프로그램 좀 한번 잡으심이 어떨까요?"  위원장은 빙긋 웃으며 "그러게요..그것도 다 해야되는 일인데....휴"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의 저자 하종강 소장은 우리 회사에 한번 초대하고 싶은 강사이다.물론 이미 그는 노동문제 관련 강사로서 이 바닥에서는 명성이 높다.그의 책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은 그가 여러 강연에서 쓴 글,여기 저기 잡지에 올린 글,방송용 글등을 묶어서 낸 책이다.그러므로 이 책에서 무슨 대단한 이론이나  노동관련된 정치원리등을 찾으려면 헛수고이다.이 책은 이론과 논리를 떠나 가슴에 이야기를 하고 있다.하종강은 화려한(?) 현실 참여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속시원하게 이야기한다.최근에 그의 홈페이지에 남긴 나의 글을 보고 그가 내 서재에 잠시 들렀나보다.그의 댓글의 요지는 이랬다. "책을 많이 보시는 분인 듯 합니다.제가 오래전 부터 보고 싶었던 책들도 많네요.책을 많이 보시는 분들께 제 책은 별로였을 겁니다."  다시 댓글을 달진 않았지만 내겐 절대 그렇지 않았다.물론 이것보다 더 어려운 노동문제 관련 책을 본 적도 있지만 각기 해야 하는 몫이 다른 것이다.내게 이 책은 아주 훌륭했다.저자는 책 서문에서 이 책이 노동 운동하면 '노'랗게 질리는 사람들을 겨냥했다고 밝힌다.다른 말로 하면 노동운동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해소하고픈 것이 하소장이 이 책을 쓴 목적이다.그리고 그 목적에만 한정한다면 이 책은 좋은 책이다.

먼저 노동운동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하소장의 말은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준다.노동운동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여러부류다.몇 가지만 떠올려보면 이런 식이다..'노조는 그저 자신들의 이익만 쫓지 전체를 보지 않는다.이러다간 다 망한다.' '노동운동 하는 놈들은 다 빨갱이다' '대기업 직원들은 돈도 많이 받으면서 더 받으려고 저런 짓한다.' '국가간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데 주 5일제냐' '공무원들 복지부동이나 하는 주제에 무슨 노조는 노조' '공직에 있는 사람이 노조같은 거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냐'...등등 그 외에도 노동자 개인의 인품을 문제삼는 것,노조 내의 정치적 갈등을 문제 삼는 것,노조의 내부비리를 보고 '봐라 결국 너희들도 똑같지' 하는 것......찾으려면 수도 없다.이렇게 노동운동에 색안경 끼고 보는 분들의 대부분은 '중도주의자'라고 자임한다.또는 '합리주의자'라고 스스로 믿는다.그런데 그들은 우리 기업이 노조를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탄압하는지,파견 용역직 직원이 얼마받고 일하는지 건물 몇 채 갖고 오만가지 사치를 일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문제 삼지 않는다.또한 우리의 교육이 얼마나 오랜시간 '반노동적'기치를 학생들에게 심어왔는지도 알지 못한다.그들은 자신의 생각이라 믿으며 '조선일보의 생각을...'당당하게 밝힌다.

저자는 대기업 노조의 사익화에 대한 일반의 비판에 대해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실제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도 없으면서 모든 노조활동에 딴지를 걸고픈 사람들은 대기업 노조가 비정규직을 외면한다고 비난한다.대통령까지 나서서 그러는 마당이니 오죽하겠는가.하소장은 이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으로 노동문제의 어젠더를 돌리는 전술이라고 말한다.대기업 노조가 물론 비정규직 보다는 나은 환경에 있다.하지만 그들 역시 대자본 앞에서는 일개 힘없는 노동자일 뿐이다.대자본과 권력을 향해야 할 화살을 그 쪽으로 돌리는 비겁한 전술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공무원 노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설령 그들이 가장 안정적인 직장인이고 또한 복지부동으로 사람들의 원성을 사더라도 그들 역시 노동자이고 당연히 노조를 결성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너무나 지당한 말이라 따로 더 할 말이 없다.)

우리나라의 노조 결성률은 10%를 조금 넘는다.국내 최고 그룹이라는 곳은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인 노조 존립 자체를 부정하면서 그걸 자랑스럽게 '무노조경영'이라고 으스댄다.또한 보수언론은 틈만나면 기업편에 서서 노조가 나라를 망친다고 짖는다.이에 현혹된 사람들은 자신이 노동자임에도 또는 자신의 부모가 노동자임에도 의식은 사용자편에서 자기를 규정한다.어줍지 않은 중용주의와 무관심이 원인이다.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친 사회에서 중간은 진정한 중간을 의미하지 않는다.오히려 신영복 교수님 말처럼 '당파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하종강 소장이 말하는 것도 그것이다.하소장은 노동운동하는데 이론과 논리를 다 떠나서 '고전적 의미의 휴머니즘' 하나만으로 노동운동을 지지할 토대가 된다고 말한다. 결국 '머리로의 이해'가 아닌 '가슴으로의 공감' 이 현실의 노동운동에는 더욱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미묘한 갈등(?) 양상을 묘사한 장이 있다.이 책의 제목에도 그 우선을 점하고자 하는 바가 슬쩍 보이기도 한다.<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물론 여러가지 장애물과 자본의 억압에도 노동운동에 대한 낙관적 마음을 읽을 수도 있다.다른 면에서 보면 계급성에 바탕을 둔 노동운동만이 사회 변혁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담겨있다.나는 이 지점에서 왔다 갔다 한다.굳이 부등호의 방향을 정하라고 한다면 후자쪽이다.하지만 시민운동이 가진 대중성과 이루어 놓은 정치력은 분명히 사회진보를 앞당길 수 있는 요인들이 많다.이것이 반대로 노동운동을 결집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크게 논할 만한 능력은 못된다.다만 바람이 있다면 노동운동이 시민운동이 대중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 처럼 더 깊이 뿌리 내릴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한다.우선 우리나라에 노조 조직율이 조금 더 높아졌으면 좋겠다.또한 노동문제에 대한 일반인의 시각이 조금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그 모든 책임이 현장노동자나 민주노총에 있지만은 않다. 일상 영역에서 부딪히는 사람들을 함께 고민해 나가야만 조금이라도 그 길이 앞당겨질 것이다.노동운동이 최전선은 파업 현장이며 각 사업장이겠으나 그 근간은 일상에서의 끊임없는 각성이다.하종강 소장은 아마도 그런 일을 앞서서 하는 사람일게다...

사족) 이 책 후기쯤에 해당하는 하종강 소장의 개인사는 그의 활동이 한 사람의 진정성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믿게 한다. 부채감이라는 말....정의로운 역사를 위해 쓰러져간 사람들 앞에 우리는 분명 부채감이란걸 가져야 한다.설령 그와 일면식이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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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6-06-20 23:03   좋아요 0 | URL
같은 책을 읽고 쓴 글인데, 참! 글을 참 잘 쓰신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드팀전님, 전에 제가 인사드린 적이 있던가요? 가끔 들러 제 책읽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짚어볼 때 등대가 될 수 있을 듯 싶어 글 남겨 둡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드팀전 2006-06-21 08:34   좋아요 0 | URL
느티나무님>아이구...과찬이십니다.한 큐에 쓰고 잘 돌아보지도 않는 졸고입니다만 칭찬은 감사히 듣겠습니다.책읽기에도 무슨 특별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별로 큰 도움이 못될 것 같습니다.그저 한가지 패턴이 있다면 머리 덜 아프게 하기 위해 인문사회책들 두서권 보면 반드시 소설이 읽고 싶어진다는 것정도이랍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