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데라토 칸타빌레 (구) 문지 스펙트럼 19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정희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악보 위 쪽에 뭐라고 씌어 있는지 읽어볼래? " 피아노 선생이 물었다.

창 밖에서 비명 소리가 두 차례 들렸다.석양이 엷어지고 있었다.나의 소나티네 소리는 짧고 강한 비명 소리에 흩어졌다.

안 데바레드-나의 어머니-를 그 곳으로 이끈 것은 손톱이 부서질 듯 칠판을 긁는 강렬한 절규였다.그 비명은 천년의 깊은 잠에 빠져 있던 그녀를 깨웠다.엉켜버린 핏덩어리 상태로 가슴 속에서 가라앉아 있던 욕망이 깊고 으슥한 숨을 쉬었다. 엉컹퀴처럼 붉은 태양과 느릿 느릿 건너온 바닷바람도 그녀를 흔들고 있었다.

나는 바닷가로 향한 카페에서 그와 함께 하고 있는 나의 어머니 안 데바레드를 본다. 심각함과 호기심에 달뜬 그녀는 나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다.카페 여주인이 돌로 구획된 도로 위에 엉거주춤 서있는 나를 바라본다.그녀의 시선은 지갑을 주운 사람을 목격하고도 귀찮은 일에 엃히기 싫어 모른 척하는 행인을 닮았다.나는 도로로 난 창을 흘깃 거리며 저녁 놀을 벗삼는다.하지만 내 마음은 카페 안을 행하고 있다. 안 데바레드는 포도주로 점점 얼굴이 저녁 놀을 닮아간다.앞으로도 자주 그럴 것이다.

그녀는 나의 피아노레슨이 끝나면 카페로 향했다.그리고 그를 만났다.그녀는 내가 새로운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하지만  모래언덕 끝에 있는 거대한 집안에 있을 때처럼 황량한 도시 속에서도 나의 어울림은 겉돌았다. 머릿속은 그녀를 기다리는  남자와 나의 어머니 안 데바레드로 가득했다.그녀의 삶ㄹ은 중대한 변화를 앞에 두고 있다.사실 그녀의 삶은 포름알데히드 속의 토끼 배아 같았다.부족함은 없지만 또한 열정도 없다.숨을 쉬고 있지만 무의식적 움직임에 다름아니다.마치 잘라 놓은 생선 머리가 잘려진 몸뚱이를 바라보며 아가미를 펄떡거리듯..

 충격적인 살인사건! 살인사건보다 더 날카로운 외침.목련꽃의 알싸함을 모두 앗아가버렸다.그녀의 발걸음이 머무는 곳이 바뀐 것이다. 

그녀가 그를 만나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그녀 속에 내재된 어떤 욕망을 자극하고 있었을까? 바다를 건너온 태양이 불은 열매가 되어 나의 얼굴을 덮고 있는 동안 내 머릿속은 그 생각뿐이었다.

때는 여름을 향하고 있었다.맑은 하늘이 도시의 배경이 되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삶이 한번 돌아가서 다시 오지 않는 무엇이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사랑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그녀의 삶은 지나친 부러움과 자기 만족 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처럼 지루했을 것이다.화창한 햇살과 향기로운 바람도 그녀의 마음 속에서는 안개처럼 모호했을 뿐이다.그녀는 그를 만난 것이다.그는 처음부터 시간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그는 오래도록 그녀를 보아 왔으며 그녀를 기다려왔다.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녀가 그를 찾아낸 것 뿐이다.그 남자 쇼뱅은 철강노동자치고는 섬세한 사람이며 예의를 갖춘 사람이었다.나와 시선이 부딪치는 것을 어색해하긴 했지만...

그녀는 그 충격적인 살인 사건의 내막을 알고 싶어한다.그는 그 사건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하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알고 싶은 것은 자신의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적 변화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하루 하루 가까와 오는 결말에 대해서.그 둘에게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강렬한 자극은 떠나버린 버스의 뒷모습을 하고 있다.그녀는 어느 중요한 모임이 있는 날 약속을 무시했다.모래언덕을 넘어오는 길에 그녀의 눈가는 젖어있었다.쇼뱅과 그녀는 서로를 확인했던 것 같다.살인 사건의 남자가 여자의 목을 조르듯이 그녀의 목선에 머물던 그의 시선만으로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누구나 자신의 안에 있는 욕망을 만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모데라코 칸타빌레'의 삶은 긴장감을 내포하고 있다.그 부드러운 노래가락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같은 것이다.결국 강렬한 자극 역시 노래가락 처럼 흩어져 버린 것이다. 그녀와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결말을 예고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쇼뱅은 그녀에게 1분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순간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영원의 또다른 이름이다.그녀의 두려움은 그녀의 욕망을 다시 붙들어 맨다.그들은 서로를 죽임으로써 짧았지만 강렬했던 기억을 영원으로 돌린다.마치 살인 사건의 주인공들이 실제 죽음으로 사랑을 이루었듯이.

그녀는 더 이상 카페로 발길을 옮기지 않을 것이다.나 역시 피아노 선생에게 가기 위해 그녀와 함께 하지못할 것이다.맑은 날씨가 아무리 이어진다해도..아무리 붉은 태양이 바닷바람을 산호빛에서 아마빛으로 바꾸어 놓더라도... 카페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 여주인이 문득 문득 바다 건너를 그리워 할 지라도...

삶의 배경은 또 다시 모데라토 칸타빌레...그 평온한 불안 속으로 빠져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06-06-04 20:29   좋아요 0 | URL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은, 늘 이상한 무력감을 안겨주곤 했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였죠...

드팀전 2006-06-05 09:10   좋아요 0 | URL
다른 소설은 안봐서 모르겠어요.ㅜㅜ 무력감도 삶의 일부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