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옛집에 갔지요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
머위 이파리 만한 생을 펼쳐들고
제대하는 군인처럼 갔지요
어머니는 파 속 같은 그늘에서
아직 빨래를 개시며
야야 돈 아껴 쓰거라 하셨는데
나는 말벌처럼 윙윙거리며
술이 점점 맛있다고 했지요
반갑다고 온 몸을 흔드는
나무들의 손을 잡고
젊어서는 바빠 못 오고
이제는 너무 멀어서 못 온다니까
아무리 멀어도 자기는 봄만 되면 온다고
원추리 꽃이 소년처럼 웃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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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마지막 문장이 좋다. '아무리 멀어도 자기는 봄만 되면 온다고 원추리 꽃이 소년처럼 웃었지요'  10년이상을 살던 집을 떠나던 날이 생각난다.그 집은 시골에서 올라오신 아버지가 결혼 후 처음으로 자기명패를 단 집이었다.당신 집이 처음 생긴 아버지는 며칠 밤을 잠 못이루었단다.붉은 지붕에 까만 대문집이었다.요맘때가 되면 붉은 장미 덩쿨이 담장을 넘었다.처음에는 한 두 송만 월담을 했다.그러나 햇살이 따가와지면 마구 흔들다 터져버리는 사이다 거품처럼 붉은 꽃이 낭창 낭창 담을 넘었다.붉은 파도를 막을 길은 없었다.우리 집 뒤편에 있던 쪽방살이 공장 누이들이 가끔은 집  대문안 까지 들어와서 꽃을 탐하였다.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으며 누이들도 뭐라 할 만큼 담 안을 넘보지는 않았다.흰 목련이 진 후 잠시 외롭던 파란 하늘이 빨간 장미를 만나 다시 즐거웠다.화단에는 장미외에도 지금은 이름도 기억 나지 않는 화초들이 많았다.목련나무가 두 그루,홍매화 한 그루,마구 엉켜있던 장미나무,붓꽃,다알리아,채송화....... 겨우내 항아리를 앉고 있던 김장독 구멍 두 개,팔 힘이 무척 셋던 땅강아지들...

10여년을 햇볕 예쁜 그 집에서 살았다.그리고 아파트란게 들어서면서 우리도  이사를 가게 된다.미리 보고 온 새 아파트는 신문명의 도래였다.물도 펑펑 잘나오고 내가 그리 싫어하던 쥐도 없었다.또 난청지역이라 못봤던 MBC방송도 잘나왔다.어서 짐을 사써 떠났으면... 하루 하루를 기다렸다.

이사 하던 날.짐 차 뒷 칸에 앉아서 작아져가던 옛 집을 보았다.갑자기 눈물이 고였다.내가 배신자 같았다.주변에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어서 그 집은 더욱 누추해보였다.붉은 지붕도 색이 바래고 이미 집 담장 한축은 쓰러졌다.침묵하는 절름발이 거인처럼 옛 집이 어린 나를 배웅하고 있었다.그의 눈빛이 쓸쓸했고 그의 거대한 덩치가 외로왔다.눈가가 슬슬 빨개지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고개를 돌려 마지막으로 그 집과 인사를 나누었다.논 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있던 집들.그 사이 벙어리 거인처럼 웅크리고 나를 보내던 그 집의 모습은 나이가 들어도 잊혀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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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6-01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국 시인과는 사소한 안면이 있는데, 덕분에 기억을 되살리게 됐습니다. 시도 좋네요.^^

드팀전 2006-06-01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가끔 로쟈님의 서재에 가보곤 합니다만...흐...내 수준을 넘어서 그냥 기웃하고 옵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