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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실비 제르맹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4월
평점 :
주말이 가까와지면 즐겁다. 회사 안나와도 된다는 것 때문이다.그 다음은 신문의 책소개 섹션을 접할 수 있는 날이어서 좋다.거의 모든 신문이 주말이 되면 '책'에 지면을 할애한다..주 5일제가 시행되면서 어떤 신문은 금요일에 책 섹션을 만들고 어떤 신문은 여전히 토요일을 지킨다.회사에 들어오는 주요 신문의 '책 섹션'란은 전부 내가 가져온다. 신문의 책관련 면은 대동 소이하다.어떨 때는 1면에 소개되는 책이 전부 같은 경우도 있다.특히 조중동은 정치,경제면의 색깔이 비슷하듯 소개되는 책들도 비슷하다.한겨레는 언제부터인가 조금 다른 형식의 책 섹션을 만들어서 맘에 든다.단순히 책 소개가 아니라 책을 핑계로 인문사회학적인 주제들을 이야기한다.즐거운 신문읽기다.좀 지루할 때도 있지만.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는 어느 신문의 책 섹션을 읽다가 기억해 두었던 책이다.실비 제르맹이라는 소설가는 낯설었고 번역가는 친숙했다.내가 아는 어떤 분은 번역가에 대한 신뢰만으로도 책을 구입한다고 한다.이 책의 번역가 김화영 교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게다.신문 책 소개에서 만난 글은 이 책 첫 장에 나오는 문장이다.정말 숨을 멎게 만드는 문장이다.이 책에 딸린 수많은 알라딘 페이퍼들도 이 글을 인용했다.
그 여자가 책 속으로 들어왔다. 그 여자는 떠돌이가 빈집으로, 버려진 정원으로 들어서듯 책의 페이지 속으로 들어왔다. 그 여자가 들어왔다, 문득. 그러나 그녀가 책의 주위를 배회한 지는 벌써 여러 해가 된다. 그녀는 책을 살짝 건드리곤 했다. 하지만 책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직 쓰여지지 않은 페이지들을 들춰보았고, 심지어 어떤 날은 낱말들을 기다리고 있는 백지상태의 페이지들을 소리나지 않게 스르륵 넘겨보기까지 했다. 그녀의 발자국마다 잉크 맛이 솟아났다.
이 첫 문장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내 손에 들어와야만 했다.신비로우며 감각적이었다.실비 제르맹의 뛰어난 문장력은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전체를 관통한다.그녀의 문장은 우선 색채적인 감각이 탁월하다.프라하 도시와 내면의 감정을 색채를 통해 묘사하는 방식이 아주 매력적이다.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보는 듯 하며 또 드뷔기의 음악을 듣는 듯 하다.하지만 그녀의 색채와 문장의 매력에 혹해서 이 책에 뛰어들면 곧 읽기가 아주 피곤해질 수도 있다. 그녀가 가진 뛰어난 문장력과 몰입을 요하는 묘사력은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의 작가 아멜리아 노통의 책처럼 쉽게 읽히지도 줄거리가 쉽게 정리되지도 않는다.주인공은 누구인지 알 수 도 없다.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가 전도연이라는 페이퍼-프라하의 연인을 인용한-는 나를 즐겁게 했다.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있는 여자가 그 정도의 미모와 애교있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면 이 책을 읽으며 한결 마음 편했을 것이다.작가는 프라하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가 누구인지를 양파껍질 까내듯 서서히 알려준다.책 후반부에 가서야 그녀의 존재에 대해 어렴풋이 알 게된다. 책 속으로 들어간 그녀,발자국 마다 잉크 맛을 내는 그녀.커다란 키에 한쪽 다리를 저는 그녀.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 수 조차 없는 그녀...... 그녀에 대해 쓰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작가는 책 후반부에 나같이 하나 쯤 잡은 감으로 쩔쩔매는 독자를 위해 그녀에 대한 프로필을 날려준다.
다리를 쩔뚝거리고 가슴은 울고 있는 거인여자는 프라하의 돌들에서 태어났다.시간과 도시 전체가 결혼하여 태어났다..... 그 여자는 돌과 나무,쇠붙이와 물,그리고 도시 주민들의 무수한 몸들에서 태어났다.....그 여자는 도시의 기억-어두운 쪽의 기억이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기억,역사가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 고통을 잊어버린 남자 여자들의 기억이다.그녀는 일체의 영광이 배제된 기억,글로 쓰지도 않고 그림으로 그리지도 않고 노래하지도 않으며 신화와 전설의 빛나는 금빛으로 장식하지도 않은 기억이다.....그 여자는 도시와 한 몸이고 도시의 비물질적인 심장이기 때문이다.
그 여자가 그려지는가?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는 프라하라는 도시와 함께 살아온 시간이며 역사이다.또한 그 인간의 역사가 갖고 있는 슬픔,고통,사랑,좌절이다.그녀가 울고 다니는 것은 그 수많은 죽음과 소외,빈곤,폭력에 대한 연민이다.그녀는 원래 무덤가를 지키는 조각상이기때문이다.김화영 교수는 번역의 말에서 번역할 수 없었던 원제에 대해 설명했다.< La Pleurante des rues de Prague>...직역하면 프라하거리의 우는 여자 라는 뜻이 맞다고 한다.그런데 La Pleurante ...가 무었이냐? 그냥 우는 여자가 아니라 흔히 무덤앞에 조각하여 세우는 '상복차림의 눈물을 흘리는 여인상' 이라는 것이다.(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필립헤르베헤가 연주한 포레의 레퀴엠CD 자켓이 바로 La Pleurante 와 유사한 것일게다.)
그녀의 울음은 수많은 죽음을 위해서이다.이제는 잊혀지고 버려진 죽음이다. 그 공간안에서 이루어졌던 수많은 죽음의 역사 앞에 그녀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는 것이다.
친절한 작가와 번역가 덕분에 그녀가 우는 이유 그리고 그녀의 존재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그녀는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존재이다.같은 공간 속에서 오래도록 인간의 이야기를 지켜봐오며 가슴 아파한 존재이다.요즘도 가끔 시골을 지나다가 오래된 장승이나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는 큰 나무를 보면 잠시 상념에 젖는다. 장승이 또는 나무가 보아온 것들, 살아 온 시간들을 그려본다.할아버지의 할아버지..그 할아버지가 어린 아이일 때 부터 그것들은 마을에 있었을 것이다.그가 옆집 갑순이를 떠나보내며 가슴앓이를 토해내는 것도 보았을 것이고 또 장가를 들어 그의 아들이 태어나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또 상여를 타고 그 나무 앞으로 지나가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그 아들의 아들이 전쟁터에서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오는 것도 보았을 것이고 그가 시름시름 앓다가 또 산에 뭍히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마을 앞의 장승이나 나무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100년 정도의 인생이라는 시간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초월적인 시간이 그 장승과 나무에 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프라하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는 초월하는 시간이며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거대한 무릎안으로 껴앉은 여성성의 시간이다.쩔뚝이는 그녀가 노을을 배경으로 주저앉아 도시를 무릎 안으로 껴앉는 장면은 참으로 거대한 상상이다.
책 말미에 가면 그녀는 사라진다.하지만 그녀는 사라진게 아닐 수도 있다.가시계와 비가시계 사이에서 절며 걸어가는 그녀였기에 세상 어느 곳에나 깃들어 있을 수 있다.작은 꽃잎 속에도 날아가는 나비의 무늬 속에도 철근 콘크리트 기둥 속에고 그녀는 살아서 두 세계를 잇고 있다.실비 제르맹은 그녀를 범신론적인 존재로 만들면서 인간의 역사와 시간을 신의 영역과 연결하고 있다.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는 100페이지를 조금 넘는 짧은 소설이다.실비 제르맹의 천재성은 이 짧은 소설 안에 역사와 시간,신과 인간,고통과 연민이라는 다소 거창한 주제를 담아내고 있다는데 있다.얇은 책이지만 깊은 사유가 바탕이 된 소설이다.만만치 않으니 많이 팔리지는 않겠다.
이 책 누구에서 선물할때는 사람봐서 해야한다.자칫 하면 "이게 뭔 소설이 이따위야.뭔 말을 하자는 건지..."이런 힘빠지는 소리 듣을 수도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