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해남 들 가운데를 지나다가

들판 끝에 노을이 들어

어찌할 수 없이

서서 노을 본다

노을 속의 새 본다

새는 내게로 오던 새도 아닌데

내게로 왔고

노을은

나를 떠메러 온 노을도 아닌데

나를 떠메고 그리고도 한참을 더 저문다

우리가 지금 이승을 이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저 노을 탓이다

이제는 이승을 이승이라고 부르지 말자고

중얼거리며

조금씩 조금씩 저문다

해남 들에 노을이 들어 문득

여러 날 몫의 저녁을 한꺼번에 맞는다

모두 모여서 가지런히

잦아드는 저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가슴 속까지 잡아당겨 보는 일이다

어쩌다가 이곳까지 내밀어진 생의 파란 발목들을

덮어 보는 일이다

그렇게 한번 덮어 보는 것뿐이다

내게 온 노을도 아닌데

해남 들에 뜬 노을

저 수천만 평의 무게로 내게로 와서

내 뒤의 긴 그림자까지를 떠메고

잠긴다

(잠긴다는 것은 자고로 저런 것이다)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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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미황사에서 노을을 기다렸던 적이 있다.너무 시간이 부족하여 미황사에서 바라보이는 섬들만 보다 내려왔다.해남 들녘을 달리는데 논과 산 사이로 붉은 구름과 푸른 구름이 엇갈렸다. 짧은 순간에도 하늘의 색은 수시로 변했다.해남 들녘을 걸어야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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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04-28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을지는 길을 달리다 보면 굽이굽이 그 짧은 순간도 다르게 보입니다..참말로 늘 느껴요..
언제봐도 멋진 곳..시원한 곳..공기 좋은 곳..바람 휑 하니 시원한곳...인심좋은 사람들 많이 사는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