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기때문에 며칠을 고생하고 있다.약 먹고 병원 가보고 해도 별로 차도가 없다.3류 스티커 회사에서 만든 테이프는 떼어 내도 자국이 끈적 끈적 남는다. 이번 감기가 싸구려 테이프 같다는 생각이 든다.아주 크게 아프지도 않으며 끈끈하게 떨어지지 않는.... 가끔은 삶이 이런 싸구려 감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지루하며 끈적거리는 삶...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의 갈등과 해결에 눈을 처박고 있는 것은 삶의 점액이 그 안에서는 한번에 해결되기 때문일 것이다.순간의 몰입은 영원한 지루함을 잠시 잊게 해주니까.... 시지프스는 얼마나 타임아웃을 걸고 싶었을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나의 독서행위가 일상의 번잡함으로 인해 방해 받고 있을 때 들고 있던 책이다.그런 면에서 이 책은 부적절한 시간에 나와 만난 셈이다.사람의 인연도 때가 있듯이 책과의 인연도 때가 있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시간도 좀 여유롭고 마음도 한가할 때 이 책을 만났다면 나는 또 다른 면을 이야기할 지도 모른다.하지만 나와 스밀라의 인연은 마치 나침반의 각침 처럼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을 꾸준히 앉아서 본 적이 그다지 많지 않다.책도 두껍긴 했지만 하루 20분 어떨때는 1시간..그러나 그 중  졸면서 비몽사몽 본 시간이 40분...다음 날은 앞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돼었는지 읽었던 부분을 다시 찾아야만 했다.또 사건의 진행과 함께 등장하는 인물들이 앞에 언급된 듯 하여 다시 찾아보러 가는데 없는 시간을 쪼개야만 했다.그것도 귀찮을 때는 그냥 무언가 중요한 인물이겠거니 하고 넘어 가기 일수였다.특히 책의 2부에 해당하는 바다의 장은 그냥 그냥 사건만 쫓아 다녔다.우선 배라는 공간 구조가 내겐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아마 10%도 공간 특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스밀라가 음모를 밝히려고 배의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는데 내게 스밀라가 암흑의 공간을 헤메고 다니는거나 다름없었다.이렇게 되니 당연히 건성 건성 읽기는 가속도를  붙이기 마련.사건의 음모가 점점 밝혀지는 순간에 그다지 큰 마음 졸임을 느끼지 못했으니 추리소설로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과의 인연이 결코 좋았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처음부터 이 책을 건성건성하는 마음으로 본 것은 아니다.책 초반부는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덴마크 밤거리의 잿빛 분위기,그린란드의 하얀 설원...약간 긴장감을 유지하게 해주는 차가운 정서 등은 책에 대한 호기심을 높여주었다.또한 많은 이들이 빠져들었던 여주인공 스밀라의 매력은 나 역시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스밀라가 가진 여성성과 자연이 준 강인함.근대 소설이 여성에게 부여하는 가장 이상적인 캐릭터들은 이러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 니나가 그랬고 <영혼의 집>의 여주인공들이 그랬다.가깝게는 영화 <에일리언>의 주인공 역시 모성과 강인함이라는 두가지 요소들 동시에 가진 이상적 모습으로 그려졌다.<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주인공 스밀라의 매력은 그녀의 모성과 강인함이 그린란드인이라는 소외자의 정체성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신비로와 보인다.그린란드는 이 책에서 문명에 대비 되는 자연,침략에 대비되는 평화를 상징한다.스밀라의 매력은 전적으로 그린란드인인 그녀의 어머니와 동토의 땅이 그녀에게 베푼 것이다.근대 세계의 성공을 상징하는 스밀라의 아버지가 평생 스밀라의 어머니를 그리워한것,또한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한 딸 스밀라에게 보이지 않는 사랑을 끝없이 베푸는 것들은 문명 세계가 가진 비문명과 자연에 대한 강박증적인 애정이다.이런 원시와 자연에 대한 애정은 근대의 독자들 역시 공유하는 것이기에 스밀라에 대한 애정의 감정은 무한 증폭하게 된다.

소설<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구분상 추리소설이다.한 아이가 지붕에서 죽은 채 발견되고 그 뒤에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된다.그리고 이를 추적해가는 과정에 조직적인 방해를 받는다.뭔가 대단한 음모가 있었던 것이다.추리소설의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그다지 스피디하지는 않다.대신 스밀라의 관념적인 해석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이 그 공간을 채운다.사건 중심의 전개를 바라는 독자에게 분명히 후자가 전자를 방해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사건은 스밀라를 살해하려는 범선 화재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스피드를 높인다. 스밀라가는 몰래 문제의 선박에 동승하게 된다. 이 후 사건의 진행이 좀 치밀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모두 그녀를 감시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염탐은 비교적 순탄하게 풀려간다.중요한 서류들도 비교적 쉽게 쉽게 확보한다.몰래 잡입도 너무 쉽고 탈출도 그다지 조마조마 하지 않다.물론 마약 문제로 슬쩍 맥거핀을 쓰기도 하고 또한 스밀라에 대한 테러로 긴장감을 높이기는 한다.하지만 스밀라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소 뛰어다니는 장면에서 왠지 액션 주인공으로 바뀌는 듯 현실감이 희미해져 간다.

두꺼운 책 분량에 비해 얇은 인연을 맺을 수 밖에 없어서 안타깝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름대로 맺은 인연의 깊이가 있다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접는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홍달 2006-03-14 16:39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사용해보진 않았지만, 식초가 테이프의 흔적을 없애는 데 좋답니다..그런데 감기는?? 암튼 빨리 가뿐해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