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역사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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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유토피아를 구체화 할 수는 없으나 예감할 수는 있다.   -

 - 아도르노-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개념을 꼽자면 미에 대한 상대주의적 가치관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도 알만 한 그런 개념이다.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왔다는 것이 미의 상대성에 대한 가장 사전적 정의일 것이다.에코는 미술을 중심으로 수세기에 걸쳐 변화되어온 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통시적으로 살펴본다.에코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여기서 말하는 미는 서유럽 중심적이다.

에코의 서문에 이어 바로 등장하는 것은 <비교표>이다.비교표라는 삭막한 용어밖에 없나 싶지만  가장 간명하게 이 장을 설명하는 말이다.비교표는  '주제별 미술 슬라이드'를 보는 듯 한 느낌을 준다.<옷을 벗은 비너스>의 예를 보자.첫 슬라이드는 빈 미술사 박물관에 있는 <뵐렌도르프의 비너스>이다.이후 <밀로의 비너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벨라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고야의 <옷을 벗은 비너스>, 마네의 <올랭피아> 그리고 마지막 켈린더 속의 모니카 벨루치의 누드까지 ..비교표는 역사 속에서 비너스의 이미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그 외에도  <옷을 입은 비너스><옷을 벗은 아도니스><예수><성모><왕> 등을 보여주는데 서양 미술사의 주요 소재들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책은  고대 그리스의 미에서부터 가장 최근인 20세기 후반 미디어의 미까지 다룬다.흔히 미술사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진행 순서를 따르고 있다.그리스 미학에 있어서 미학사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원근법의 창안이다.그리스 미술이 주관적인 시각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이때 부터 시작된 원근법은 전문 미술가들에게는 장애가 되지 않는 요소지만 일반 미술 교육에서는 금과옥조처럼 여겨지고 있다.수세기에 걸쳐 원근법에 대한 변증법적 발전이 있어왔다.하지만 우리의 미술 교육(최소한 내가 배웠던 시절의)에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철칙이다.미학 관련된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미술에 대해 우리 교육에 어떤 철학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든다.그저 몇 몇 테크닉 좋은 아이들이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 같다.(다행히 나는 교육계에서 인정하는 미술을 잘했지만..)그리스 미술에 또 하나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아폴론적 미와 디오니소스적 미를 동시에 인정했다는 점이다.안정과 평화 속에 혼란의 카오스가 난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것은 이후 추함과 악마적 미의 표현부터 미에 대한 현대적 표현까지 가능하게끔 통로를 열어 놓은 것이다.그리스 미학은 조화와 비례를 중요시했다.건축은 물론이고 인물상들까지 조화와 비례의 수학적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우리가 그리스 조각상을 보면서 그 완벽함에 감동을 받는 것은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미학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흔히들 말하는 황금비는 지금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리스 미학으로부터 시작한 글은 시간을 따라 중세로 넘어 온다.중세 천년은 흔히들 '암흑의 시대'로 일컫는다.최근에 나온 중세 미시사 책들은 그런 편견이 진짜 '편견'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아직 일반의 굳은 마인드를 뚫기에는 동력이  부족하다.이 책 <미의 역사>에서 가장  신경써서 다루고 있는 부분이 중세의 미이다.에코가 중세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기존 '암흑기론'에 반기를 드는 쪽이다.특히 중세의 시나 회화는 빛이 가득하다.당대 사상의 중심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미의 세 가지 요소를 강조했다.즉 비례,완전성,그리고 명료성이다.이 명료성 미학의 기원 중 하나가 신은 빛과 동일시 된다는 것이다.즉 중세의 기독교 중심 세계관에서 빛은 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이러한 빛에 대한 개념은 일상으로도 확대된다.인용된 랭부르 형제의 <5월,베리 공작의 귀중한 성무일과>라는 작품을 보면 누가 과연 중세를 어둠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붉은 휘장과 녹색의 여성 가운,스웨덴 국기를 떠올리게 하는 남성의 가운..화사한 5월의 기운이 화면 전체에 가득하다.또한 그리스 시대부터 인정된 '추함의 미학'이 괴물과 기이한 존재들의 형상화로 발전한다.

카를 로젠크란츠는 <추의 미학>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추는 상대적 개념으로서 다른 개념과의 관계 내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추는 미가 존재할 때에만 존재하는데 이는 미가 추의 긍정적인 측면을 구성하고 있기때문이다.만약 미가 없다면 추는 절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상상 속의 동물들이나 괴물들은 어떻게 보면 중세시대부터 쌓여온 신화의 누적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중세 사람들은 이 괴물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크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고 한다.이들은 괴물들을 비롯해서 불가사의한 것에 매료되었던 것이다.이는 후대에 이국적인 것에 대한 예술가들의 매력과도 이어진다.

중세 미학의 또다른 재미는 십자군 전쟁으로 기인한 음유시인과 귀부인과의 사랑이야기이다.열망하지만 다가설 수 없음의 미학이 본격적으로 시를 수 놓고 있다.엘리아데 같은 사람은 폭력성과 잔인성이 연애라는 형식을 통해 세련되어가는 과정 즉 합리화의 과정으로 보기도 한다.음유시인들의 다가갈 수 없는 여인에 대한 존재감은 시와 미술에서 '천사같은 여인'을 만들어 낸다.우리가 단테나 그 후 낭만주의 작가들의 글에서 만날 수 있는 성녀와도 같은 지위의 아름다움 여인상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는 시기인 것이다.

미술사는 인문주의 정신에 입각해 그리스를 구현하고자한 르네상스와 절대왕정을 바탕으로 화려함을 선보인 바로크의 시대로 넘어간다.18세기에 이르면 부르주아지들이 힘을 얻게 된다.이들은 이성과 규율을 중시하는데 미학사에선  신고전주의 시대가 이에 병행한다.신고전주의는 매우 엄격한 자연주의 정신하에 잘못된 고전성에 반발했으며 이는 바로크의 과잉과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또한 이 시대에는 미의 즐거움이 미의 영역과 숭고의 영역으로 발전하다.여기서 말하는 숭고는 신에 대한 정신적 숭고가 아니라 자연주의적 숭고이다.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매력이 자연적 체험에 바탕을 둔 숭고미로 전이되었다고 보는것이 옳다.클래식 CD재킷에 자주 등장하는 카스피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난파><방랑자>같은 것이 전이된 숭고미의 대표적 예이다.

19세기로 넘어오며 드디어 낭만주의의 물결이 서양미술사를 장악한다.미술사에서 많이 배우는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상>의 들라크루아 <메두사의 땟목>의 제리코 등이 등장한다.낭만주의의 키워드는 감정,자연,자발성이다.또한 밤의 우울과 불안한 방황도 중요한 덕목이 된다.독일에서는 이 물결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칭했다.19세기 중반으로 넘어오며 영국을 중심으로 단순성을 강조한 댄디즘과 프랑스의 퇴폐주의가 성행한다.또한 예술이 예술을 위한 것이라는 순수주의 관념이 예술계를 지배한다.퇴폐주의와 비슷한 시기에 보들레르를 필두로 하는 상징주의가 예술계의 한 축이 된다.그리고 19세기 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또 미술 책에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상파가 등장한다.모네,르누아르부터 시작해서 고흐,고생,세잔 등 현대 미술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후기 인상파들까지...

움베르토 에코는 책 후반부에 기계의 미학에 대해 다시 그리스시대부터 되짚어온다. 수단으로서의 기계가 미학적 평가대상으로 바뀐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롤랑 바르트의 <현대의 신화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현대의 자동차가 고딕 대성당과 정확하게 동급이라고 생각한다.그것은 무명의 예술가들이 열정적으로 창안해 낸 한 시대의 위대한 창조물이다.

바르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현대의 기계들 그들이 가진 스타일과 디자인들은 이미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평가받아야 하는 미학적 대상이 되었다.그러한 측면에서 기계의 미학을 현대미의 하나로 위치시킨 에코의 시각은 훌륭하다.물론 상대적으로 분량이 협소한 부분이 없진 않지만 이 책이 기계문명의 미학에 대해서만 다룬 것은 아니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20세기 전반부의 현대 미술은 재료에 대한 도전이며 기존 예술에 대한 도전 자체가 작품이된 시기이다.뒤상의 <샘>이나 앤디워홀 등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에코는 이 책의 마지막을 미디어의 미로 마무리하고 있다.이 시대를 에코는 도발의 미와 소비의 미 사이의 극적 투쟁의 장으로 보고 있다.예술에 대해 극한 도전을 펼쳐온 아방가르드조차 소비시대의 미에 포획된 듯이 보인다.에코는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는 미에 어떠한 통일된 모델도 어떠한 단일한 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그는 관용의 대향연 앞에서 전반적인 혼합주의 앞에서 제어할 수 없는 완전한 미의 다신교 앞에서 항복할 수밖에 없다라고 책을 맺고 있다.

리뷰를 쓰다가 보니 결국 서양미술사의 약사를 정리하게된 듯하다.이 책<미의 역사>는 미라는 것이 수천년을 거치며 어떻게 변화해왔고 현재 우리가 아름답다 또는 추하다고 느끼는 것이 어떻게 유전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고 있다.내용이 그다지 쉽지만은 않다. 사회적 변화상과 미술작품의 상세한 소개까지 곁들인 서양미술사책들의 친절함도 없다.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해설 같은 것도 전혀 없다.그러므로 서양미술에 대해 전혀 모르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런 점들을 보상해주는 미덕도 많다.우선 선명한 그림인쇄이다.책값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그렇지 최고 수준의 도판 인쇄를 보여준다.하지만 이것도 부차적인 장점이다.이 책의 최대 매력은 수많은 인용문들이다.인용문이 원저술보다 훨씬 많다는 느낌을 준다.에코는 각 시대의 미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반드시 그에 해당하는 당대 저술을 싣고 있다.철학서에서 음유시인의 시집,작가미상의 전설집,소설과 사회학 서적들... 인용문들 중에는  당시 시대의 미적기준과 가치에 대해 에코의 글보다 훨씬 와닿는 글들이 있다.물론 너무 파편적이어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글들도 있는데 그럴 때는 과감하게 넘어가면 별 문제 없다.에코가 인용하고 있는 글들 중에는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글들도 있다.전부는 아니지만 그 단맛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마지막으로 사족 한 가지 더 붙인다.표지에 움베르코 에코의 저자 이름이 너무 크게 쓰여 있어서 간과하기 쉽지만 이 책은 사실 에코 외에 또 다른 공동저자가 있다.지롤라모 데 미켈레라는 사람이다.누군지는 모른다.하지만 그는 에코와 거의 50%씩 나누어 집필했다.에코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겠지만 그의 이름이 빠져 있는 것에  왠지 씁쓸하다. 책을 판매하는데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유리했기 때문일까... 역사 속 숨은 이름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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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7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6-01-08 06:50   좋아요 0 | URL
ㅋㅋ.. ㅜㅜ 감사...제가 원래 좀 약하거든요.약한데다가 쓰고 나면 돌아보질 않습니다.ㅋㅋ 이건 또 어디서 나온 버릇인지.ㅋㅋ 늘 눈치보며 쓰기때문에..빨리 쓰고 아래로 내려야돼요.회사에선 아저씨들 눈치보고 집에선 와이프가 왜 컴퓨터방에서만 있냐고 울고..
여러모로 감사.하나 하나 보고 고치다가 '귀차니즘' 발동해서 그냥 복사해서 다시 붙였습니다.역시 잔머리가 좋아요.그나저나 30분씩이나.. 여간 폐가 아니군요.
걍..개떡처럼 쓰면 찰떡처럼 보세요.ㅋㅋ 앞으로도 개떡은 주욱 이어집니다.
오늘 아침은 와이프가 어딜 좀 일찍 나가서 이른 아침 서재질을 하넹....
즐거운 일요일!!

돌바람 2006-01-09 11:44   좋아요 0 | URL
으하하, 개떡이 이렇게 맛있을줄이야. 저랑 비슷한 상황이시군요. 그럼요, 찰떡같이 보겠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