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 화.한겨레 문화면

계간지 <창작과비평>과 <황해문화>가 나란히 한국 진보개혁진영의 발본적 각성과 전환을 촉구했다. 두 계간지는 <진보평론> <문화과학> 등과 함께 한국 진보세력의 한 축을 대표하는 잡지다. “더이상 민주주의를 말하지 말자” 등 도발적 선언과 성찰을 담았다. 이런 상황 자체가 2005년 겨울, 한국 진보세력의 주소를 웅변한다.

<황해문화> 겨울호는 ‘민주화시대에 민주주의가 없다’를 제목으로 뽑아 관련 논문 6편을 특집으로 다뤘다. 현재에 대한 시선은 한결같이 비감에 젖어 있다. “과거 독재세력이 민주주의를 파편화시키고 과거 민주화세력이 민주주의를 해체하는 참담한 ‘과거주의’ 사회”(박승옥 시민발전 대표)라는 진단이 대표적이다.

그 한복판에 민주주의 문제가 있다. 20여년 이상, 진보개혁진영을 대표했던 ‘민주주의 담론’은 총체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정영태 인하대 교수는 “한국 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 사회 민주주의 가운데 어느 것도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그런데도 “‘민주주의는 실현됐다’는 사고방식이 문민정부 이후 급속히 확산됐다.” 정태석 전북대 교수는 이를 “사회적 적대의 성격이 ‘다원적 적대들이 응축된 민주주의 적대’에서 ’다원적 적대들의 활성화’로 변화했다”고 표현했다. 단순히 민주주의 문제만으로는 한국 사회의 복잡한 갈등과 적대를 다 담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성찰의 목소리도 높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87년 민주화의 환상으로부터 확실히 벗어나, 이제 민주화라는 말은 그만하자”며 “빛바랜 민주화 담론,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잠시 뒤로 밀쳐놓고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야 할 시점에 왔다”고 짚었다.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이제 진보의 이름으로 환원했던 낡은 습관과 구호를 버릴 때가 왔다”고 밝혔다. 고세훈 고려대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는 1987년의 흥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일갈했다.

논의는 결국 민주주의 담론의 근본적 재구성으로 모였다. 기본방향은 분배·평등·생태 등 사회적 정의의 실현으로 모인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이제 새로운 자립·자치·생태적 전환 및 성찰의 민주주의 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박승옥) “형평·공생·정의·지속가능성·연대 등의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주체를 형성해야 한다”(김동춘) “6월 항쟁에서 분출된 민주주의적 에너지를 불평등과 차별에 저항하는 평등주의적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정태석)

<창작과비평>도 겨울호 머리말에서 쓴 소리를 쏟아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진보적 개혁세력은 이상은 원대하나 책임감이 결여된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한 발본적 반성과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진보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 깊은 자성 속에 지혜를 모으고 운동성을 회복할 국민적 통로를 개척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구두 2005-11-2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대비평의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계간지 겨울호 섹션...

드팀전 2005-11-22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해문화가 있잖아요.힘내세요..근데 우리동네 서점에는 잘 없더만요.

2005-11-23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