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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 - 라틴아메리카 문화기행
우석균 지음 / 해나무 / 2005년 9월
평점 :
'이방인 되기' 는 즐거운 경험이다.낯선 외국땅에 떨여져 있을 때 더욱 그렇다.알아 들을 수 없는 외국어가 나를 제외한 모든 공간을 채우고 있을 때 내 안에서는 불안감과 호기심이 동시에 솟아 오른다.그리고 곧이어 나의 감정은 사라져버린 자의 해방감을 경험하게된다. 나의 형체만 오려내고 나머지는 그대로인 단체 졸업 사진속의 공간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드디어 길을 잃은 것이다.특히 대도시에서 길을 잃는 다는 것은 달콤한 쾌락이다.나는 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자가 된다.눈에 보이는 모든 것,귀에 들리는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니다.내가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내 머리속을 울리고 있는 내 목소리일 뿐이다.
도쿄의 마지막 밤에는 비가 내렸다.많은 비는 아니었으나 욕망과 쾌락으로 가득찬 도시를 잠시 위무할 정도의 양은 되었다.도쿄 젊은이들이 최근 즐겨 찾는다는 록본기에 갔다.거리를 돌아다니다 저녁 무렵 록본기 힐스라는 빌딩에 발이 닿았다.그 건물 52층에는 전망대와 모리미술관이 있었다.주로 현대 일본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데 그날은 사진전이 있었다.또한 특별전으로 다빈치 과학노트전시회가 있었다.큰 감흥은 없었다.나의 시큰둥한 감상은 나의 보폭을 넗혔다. 결국 나는 일행들을 잃었다.너무 빨리 전시장을 나와 버린 것이다.도쿄 52층 상공에서 나는 다시 이방인이 되었다.일행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혼자 전망대로 향했다.비에 젖은 도쿄는 아름다왔다.연인들이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밀어를 나누고 있었다.그들의 데이트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한쪽 구석에 자리를 차지했다.그리고 검은색 가방에서 CD플레이어를 꺼냈다.한때는 첨단을 달렸던 포터블 CD플레이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촌스럽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어디가면 가방속에 숨겨놓는다.도쿄의 야경을 앞에 두고 수업시간 도시락꺼내 먹듯 조심스럽게 CD를 얹었다.
아타왈타 유팡키의 83년 아르헨티나 공연실황 ..."안녕하세요 부에노스 동포여러분"...... 유팡키의 기타는 도쿄에 내리는 비처럼 조용했다.그의 목소리에는 안데스를 휘돌아 도쿄까지 날아온 바람의 온기가 묻어있었다.나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었다.내가 세상의 어디에 가있든 또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사람이 만들었던 음악이 나의 동반자가 되어 주고 있었다.내 귀에 몇가지 들리던 일본어는 나를 소외시켰지만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유팡키의 스페인어는 나를 안아주었다.시끄럽지 않게 그리고 나의 고즈넉함을 방해하지 않으며 그렇게 유팡키는 나를 포옹했다.
<바람의 노래,혁명의 노래>는 남미음악 여행기이다.여행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시작된다.세계 3대미항으로 알려진 그곳에는 탱고가 있다.탱고 음악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있다.아마 영화<여인의 향기>에서 알파치노의 탱고씬 이후 라디오방송을 많이 타서 일 것이다.내게 탱고 춤 자체는 좀 부담스럽다.뭔가 은밀한 욕망이 이글거리고 있는 느낌이어서 낯뜨겁기 까지 하다.저자를 인용하면 '수직적욕망의 수평적 표현'이라고 한단다.하지만 탱고음악은 좋아한다.전영이 불렀던 <서울야곡>(원곡은 현인선생곡이지만)이 아마 제일처음 좋아했던 탱고음악일 듯 하다.하지만 본격적으로 탱고가 귀에 들린 건 영화<춘광사설-해피투게더>를 본 이후이다.그 영화에서 왕가위는 처음부터 끝까지 피아졸라의 탱고로 도배를 했다.물론 방송을 많이 탄 것은 터틀스의 <해피투게더>였지만 나는 '밀롱가트리스테'나'오블리비온' 이 듣기 좋앗다.그 곡을 들으면 영화 후반부 장국영이 세상의 끝으로 가는 장면이 떠오른다.탱고가 가진 흐느적거리면서도 절도를 잃지 않는 비장미는 매력적이다.늦가을 퇴근길 어두워지는 도시를 바라보며 듣는 탱고란...
저자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벗어나서 안데스쪽으로 방향을 잡는다.안데스의 음악하면 결국 유팡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저자는 팡키가 정치적 망명을 한 이후 가끔 고국에 들를 때마다 칩거하던 세로콜로라도를 찾는다.그는 안데스의 가우초들의 음악을 현대화시켜낸 장본인이다.유팡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안데스의 자연과 사람들의 정신이었을 것이다. 우루과이의 목소리가 예쁜 젊은 가수들에게 대한 유팡키의 비판은 화장기없는 자연과 삶에 대해 그들이 외면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유팡키는 그들에게 바람의 친구가 되지 못한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유팡키에게 안데스의 바람은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그것은 고지대를 여행하는 가우초들의 친구였으며 자유로운 영혼이었을 것이다.또한 몰락한 역사와 쇠락한 현실 사이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유일한 존재였을 것이다.
책은 남미의 누에바깐시온 가수들에 촛점을 맞추어 계속된다.그나마 우리나라에 좀 알려져있는 메르세데스 소사-최근에 새로운 음반이 나왔다-,그리고 빅토르 하라.비올레타 파라등이 등장한다.빅토르 하라는 그의 음악보다도 그의 비극적 죽음으로 인해 세인의 관심을 더 끌었던 듯 하다.이사벨 아엔데의 소설<영혼의 집>을 보면 빅토르 하라를 모델로 한 등장인물이 나온다.페드로 였던 것 같다.소작농의 아들로 주인의 딸을 사랑하게 된다.결국 고향을 떠나 사회주의에 헌신하며 노래로 민중들의 마음을 끌어낸다.그리고 아엔데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소설속 페드로는 빅토르 하라처럼 스타디움에서 죽임을 당하지는 않는다.이사벨아엔데의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빅토르 하라의 음반 자켓중에서 가장 멋진 것은 이 책 표지에도 있는 마추피추를 배경으로 망토와 기타를 들고 있는 하라의 모습이다.마치 빅토르 하라가 Manifiesto를 부르고 있을 것만 같다.
"내가 노래하는 건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나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지. 기타도 감정과 이성을 갖고 있기에 나는 노래 부르네. 내 기타는 대지의 심장과 비둘기의 날개를 갖고 있지. 마치 성수와 같이 기쁨과 슬픔을 축복하지. 여기서 내 노래는 고귀해지네. 비올레따가 말할 것처럼. 봄의 향기를 품고 열심히 노동하는 기타" (선언 중에서)
책은 민중가수들로 시작해서 파블로 네루다로 끝을 맺는다.영화<우편배달부>로 친숙해진 그는 남미 문화와 정치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나는 그의 민중시들 보다도 그의 사랑시들이 더 맘에 든다.하지만 낭만적 혁명주의자였던 네루다에게 어느 한쪽만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그에게 낭만성과 혁명성은 자웅동체의 한 운명이었을 것이다.
"행복한 두 연인은 이미 하나의 빵이고 풀잎 속에서 달이 비친 한 방울의 이슬이다."
"난 내 조국이 나뉘어지는 걸 원치 않네.피묻은 일곱개의 칼로도 나눌수 없지"
<바람의 노래,혁명의 노래>가 남미 음악과 그들의 이야기를 전부 전해줄 수 없다.음악이야기에 대한 내용은 그다지 치밀하지 못하고 구체적 역사를 이야기하기에도 지면이 부족하다.하지만 문화기행 책의 가장 큰 목적은 사람들에게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특히 전문가들을 상대로 한 책이 아니라면 말이다.어떤 분들은 이 책을 보고 남미음악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남미의 질곡많은 역사에 대해 조금 눈여겨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아니 역사나 민중의 한에 대해서 잘 몰라도 된다.음악은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할 것이니까...그렇다면 이 책의 소임은 다 한 것 아닐까?
p.s) 이 책에서 주로 거론한 음악가들은 남미의 누에바깐시온 가수들이다.우리로 친다면 민중가수들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조금더 거슬러 올라서면 한대수 같은 의식있는 포크 가수들까지 선이 닿는다.이 책에 소개된 음악들은 사실 동시대의 남미음악은 아니다.월드뮤직에 대한 개념정의까지 풀어야되는 부분이라서 다 이야기하지는 않겠다.어쨋거나 이 책에 소개된 음악 듣고 칠레젊은이를 만나서 "어..나...빅토르하라 잘 아는데.." 해봐야 그쪽에서 잘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은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다. 요즘 20대초반 젊은 친구한테 가서 "야...한대수 알어?"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