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제리 이다.원래 본명인지 아니면 직업상 만든 이름인지는 알 수 없다.그를 만난 것은 이번 가을 초입에 다녀온 여름휴가 때이다.그는 신들의 섬 '발리'의 관광가이드이다.닷새동안 제리의 발이었고 또한 입이었다.

제리는 37살이다.원래 불어 가이드였었다.하지만 몇년전에 한 친구가 한국인들이 많이 올거라고 방향을 바꾸라고 말해주었단다.그래서 단기코스로 한국어학원을 다녔다고 한다.그의 한국어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공항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 유창한 한국어에 잠시 놀라기도 했었다.하지만 중간에 더 만났던 몇명의 현지 가이드중에는 억양까지 한국인과 유사한 사람도 있었다.어쨋거나 그의 한국어는 훌륭했고 철학적 이야기만 꺼내지 않는다면 충분히 이야기가 될 수준이었다.

나는 가끔 차 안에서 또는 그와 걷는 기회가 있으면 그에 대해 물어보았다.행여 여행객의 호기심으로 비춰지지 않기 위해 최대한 신경쓰면서  말이다.

제리는 천주교 신자이다.할아버지가 개종을 했다고 한다.제리의 말에 의하면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은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는다고 한다.반면 그가 살고 있는 발리섬은 힌두교가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한다.그런데 제리는 그 둘다 아닌 카톨릭이었다. 마지막 날에 약간 시간이 남았다.그래서 원래 계획에 없었던 곳을 다녀왔다. 시내에 있는 카톨릭 성당이었다.지나가다가 우연히 봤는데 그가 보고 싶냐고 물었다.현재 그가 다니는 성당이라고 했다.

 이건 그 성당안에서 찍은 스테인드 글라스 사진이다.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아기예수 같다.부모가 입고 있는 옷이 인도네시아 스타일이다.카톨릭은 현지 문화와 관습을 부정하기 보다는 수용하는 입장이다 보니 이런 그림이 나왔을 것이다.

제리는 이곳에서 성가대로 활동을 한다고 했다.그가 교황을 설명할 때 '카톨릭 싸장님' 이라고 해서 한참을 웃었다.주교라는 단어는 아직 모르고 있었고 또한 영어로 주교를 어떻게 말하는지도 잘 몰랐던것 같다.제리는 그래서 '카톨릭 싸장님 밑에 있는 다음 매니저가 여기 신부입니다' 라고 말했다.이야기를 종합해본 결과 이성당이 우리말로 하면 '주교좌 성당'이란 것 같았다.그에게 한국말로 알려주었다.그가 삐둘빼둘 한글로 종이에 적었다.

제리와 걸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그는 두 아이의 아빠이다. 그 성당 가까운 카톨릭 고등학교를 나왔고 전문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다.그리고 호텔에서 일하다가 영어,불어,한국어 가이드로 일하고 있었다.그의 집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변두리이다.대개 발리섬 주민이 그렇듯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아침이면 30분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에 아이를 오토바이에 싣고 데려다 준다.제리가 가이드 일 때문에 늦게 들어가는 날에는 부인이 대신 아이를 데려온다.그는 한국관광객이 많이 들어오는 주말부터 약 4일을 일하고 3일정도는 그냥 집에서 쉰다고 한다.그의 벌이 대부분은 여행사의 팩키지에서 나누어 갖는 팁이다. 그곳의 물가수준이 어느정도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그다지 많은 돈은 아닐 것이다.

제리도 한국부모들과 똑같이 아이들 양육에 관심이 많았다.그에게 아이들이 어떻게 컷으면 좋게냐고 물었다.그는 그냥 지들이 원하는데로 하는데 까지 지원해야지 라고 답했다.아직 아이들이 어리니까 구체적인 생각은 안해본 것 같다. 하지만 공부에 재능이 있으면 끝까지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우리 부모들이 하는 생각과 똑같다.

여행다니는 동안 늘 신경쓰였던 것은 식사때였다.제리는 우리를 레스토랑에 내려주고 식사때면 보이질 않았다.식사를 마치고 나올때마다 식사는 했냐고 물어보면 먹었단다.우리를 안내한 식당에서 준것 같기도 하고 뭘 싸온 것 같기도 한데 아직 어떻게 해결했는지 알 수가 없다.

제리에게 나와 같은 한국인 관광객은 어떻게 보일까 생각했다.그냥 자기나라에와서 돈쓰고 가는 외국인 정도였을 것이다.호텔 안의 삶은 외국인들을 위한 것이고 호텔 밖은 현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제리는 그 극단의 공간을 왔다 갔다 한다.호텔의 화려함 뒤에 가려있는 자신과 자기 섬 사람들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제리는 발리섬의 민중이다.나는 발리섬에서 돈 쓰는 외국인일 뿐이다.

가끔 발리섬의 아름다운 해안과 안락한 리조트에 누워 이곳에 내가 아니라 이곳 사람들이 누워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생각했다.물론 그들도 어디선가 휴가를 즐기고 하겠지만 우리같은 외국관광객들이 있는 화려한 리조트나 호텔은 아니었을 것이다.해안 절경마다 외국자본이 만든 휘황찬란한 호텔과 리조트가 자리잡고 있다.조금 누런 사람은 일본인아니면 한국인,조금 하얀사람은 유럽인,그리고 조금 까만 사람은 서빙하는 발리사람들이다.

제리를 비롯한 그곳의 민중들을 동정하진 않는다. 그들이 불행할 거라고 생각치도 않는다.그들도 우리와 같이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것 뿐이다.자본주의 주변부의 떡고물을 챙겨먹고 조금 살만한 한국에 살면서 그곳에서  관광객으로 조금 더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발리는 아름다운 섬이고 또한 식민지로 오랜 제국주의의 지배하에 있었던 곳이다.파란 하늘과 눈을 틔워주는 인도양,형형색색 만발한 꽃,바다에서 불어오는 미풍 그 모든 것이 내겐 단지 눈안에 담긴 영상일 뿐이다.그것도 외국자본이 발리민중들은 분리한채 독점해버린 곳에서 바라본 풍경들이다.하지만 그 모든 것의 진짜 주인은 오토바이에 온가족을 싣고 다니는 발리민중들의 것 아니겠는가....수많은 제리들이 그런 호텔에서 자기것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5-09-24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톰과 제리에서 제리가 연상되는군요.
그나저나 아픈건 다 나으신 것 같구^^

2005-09-26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