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죽음의 교향곡 - 브루노 발터가 만난 구스타프 말러
브루노 발터 지음, 김병화 옮김 / 마티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여름은 클래식 듣기 힘든 계절이다.아무래도 날씨도 덥고 습도도 높고 하니 오랜 시간 음악에 집중하기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이런 패턴은 뜨거운 바람에 살짝 냉기가 묻기 시작하면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하지만 올 여름 초입은 말러 덕분에  오랜 습관에 예외가 생겼다.장마기간 내내 말러 음악을 주구장창 들었다.주빈메타의 훌륭한 <부활>연주 덕분이다.교향곡 2번의 그 장대함에 감동먹으며 예전에 들었던 아바도,래틀의 연주도 다시 꺼내 듣게 되었다.또 내친김에 뛰어난 균형감으로 기억되는 클리블랜드와 도흐나니의 1번 <타이탄> 조금 심심하지만 명연으로 알려진 쿠벨릭,불꽃같이 활활 타오르는 텐슈테트의 5,6번 연주에 이어 쨍쨍한 불레즈의 연주까지....물론 번스타인을 빼놓을 수도 없다.

말러는 생전에 '머지 않아 나의 시대가 온다'라는 말로 시대의 몰이해와 자기 예술에 대한 확신성을 표현했다.말러 사후 100년도 지나지 않아서 이말은 사실로 입증되었다.전 세계적으로 콘서트홀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 바흐도 베토벤도 아닌 말러라고 한다.지휘자들 역시 '말러 치클루스'를 한 번 정도 해야 메이저에서 인정받는다.그렇다면 왜 수십년 전 부터 말러 열풍이 불고 있을까?  브루노 발터는 이렇게 말한다.

"...말러의 작품이 가진 최고의 가치는 모험적이고 과감하며 개척자적이거나 기괴한 것이라는 진기함 때문이 아닙니다.그보다는 이 진기함이 아름답고 영감에 가득하고 심오한 음악 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그것이 고도로 창조적인 예술성과 의미 깊은 인간성이라는 영속적인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 말입니다....."(p177)

브루노 발터가 지금으로 부터 50여년전에 썼던 이 책은 천재적이며 문제적 인간 말러와 그의 예술에 대한 가장 함축적인 입문서이다.먼저 좀 생소할 수 있는 저자 브루노 발터부터 이야기 하자.그는 20세기 초반에 활약 했던 세계적인 지휘자-멩겔베르크,토스카니니,푸르트뱅글러,클렘페르 등 과 같은 반열에 있는 훌륭한 연주가이다.그가 연주한 모짜르트,베토벤,말러등은 아직도 명연으로 사랑받고 있다.그의 베토벤 <전원>교향곡과 초연자의 자부심도 있음직한 말러의 <대지의 노래>등은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뛰어넘는 연주가 쉽게 나오지 않고 있다.그의 연주는 그의 알려진 성품처럼 온화하고 인간적인 피가 돈다.과도한 자기표현이나 현학적 자세등은 찾아볼 수 없다.오래된 한옥의 소나무 기둥에서 느낄 수 있는 깊고 편안한 울림,물굽이 마을의 휘도는 강물을 바라볼때 느끼는 유려함.... 초기 스트레오로 녹음된 말년의 발터 연주에서는 이런 느낌이 든다. 브루노 발터가 음악계에 발을 들여 놓았던 청년기에 그는 위대한 말러를 만난다.발터는 이때의 강렬함과 이후 그와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고 한다. 발터가 이 책에서 말러에 대해 서술하는 방식은 그래서 객관적이지 않다. 객관적으로 공과 실을 따지는 책을 그는 쓸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발터는 그가 가까이서 보고 경험한 말러,그리고 그의 삶과 철학이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교향곡들에 대해 지극한 애정을 가지고 이 글을 쓴 것이다.말러의 성격이 그다지 온화하진 못했다고 한다.괴팍함과 독설로 동시대에 많은 적들도 만들었다.발터 역시 그의 비사회적 성격에 대해 어느정도는 인정한다.하지만 여기에도 애정이 묻어있다. 예술가들의 기벽이나 괴팍성은 오히려 긍정적 캐릭터로 그려지기도 한다.베토벤도 그랬고 슈만,리스트,바그너 등등....

이 책은 구성면에서도 아주 읽기 용이하다.첫장에서는 브루노 발터의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둔 말러의 삶을 그리고 있다.말러와의 첫만남부터 함께 일했던 기억들,그리고 서신 교환을 통한 관계등등...발터가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바라본 이야기들이 중간중간 일화등을 통해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가까이서 바라본 말러를  그는 '부글 부글 끓어오르는 나일강 중류'에 비유한다.즉 '변덕스러움'에 대한 발터 나름대로의 비유이다.말러음악을 들으며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는 것은 그의 이러한 변덕스러움이 음악에 반영되기 때문일 것이다.말러의 변덕은 그냥 변덕이 아니다.베토벤의 교향곡적 전통,베를리오즈의 악마적 낭만성,슈베르트,브루크너의 멜로디,민요의 전통,어린시절 유모따라가서 매일 들었다는 오스트리아 행진곡의 영향...이 모든 것이 교향곡 전통의  확대발전의 틀 속에서 변덕을 부린다.

다음으로 지휘자로서의 말러에 대해 이야기한다.말러가 빈에 들어가서 자신의 창작력을 펼치고 싶어했던 욕심,그리고 빈 단원들과의 불화,빈에서의 막강한 카리스마등이 이 장에 나온다.말러가 오페라 개혁에 앞장섰다는 것은 처음 듣는 재미있는 이야기였다.아무래도 지휘자 말러를 본적이 없이 작곡자 말러의 음악만을 들었던 시대적 갭이 아닐까 싶다.그는 오페라 감독으로 박수부대를 없애고 지각하는 관객들의 출입도 막았다고 한다.신인 가수들을 기용하여 기존의 자만심만 높은 가수들을 퇴출시켰다.빈 오페라단의 히딩크였던 셈이다.또 말러가 지휘자로서 연극,드라마의 요소를 강조했다는 것도 새롭게 안 사실이다.요즘이야 일반화된 사실이겠지만 그는 '오페라의 일체성'이란 목적을 위해 빈에서의 10년을 분주하게 보냈다.오페라의 일체성이란 것은 종합예술로써 오페라가 갖는 음악,드라마,무대,조명,의상 등에 대해 총체적 완결성을 높이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말러의 개혁드라이브는 풍요와 낭만의 빈  전통과 갈등을 빚게 된다.결과적으로 빈 필과의 계약은 종결된다.이후 빈필이 상임을 두지 않기로 했다고 하는데 그 전통이 말러와의 결별 이후라는 것 역시 재미있는 일화이다.

발터는 작곡자로서의 말러에 대해 가장 비중있게 다룬다.말러 음악이 가진 다양성의 토양,말러 음악이 가진 시기별 구분,또 그에 따른 작곡가의 인식 변화등을 지휘자이자 말러전문가로써 차분하게 설명한다. 말러학자들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긴 하지만 발터는 1-4번,5-8번,<대지의 노래>와 9번의 세 시기로 나누어 각곡들이 가진 의미와 말러 내부의 인식 변화를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교향곡 1번<타이탄>을 발터는 말러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고 비유한다.말러의 음악에 영향을 준 괴테의 독일정신을 고려한다면 가장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싶다.1번 교향곡의 1악장은 새소리를 연상시키듯 참신하게 시작한다.스케르초 악장은 전혀 뜻밖의 행진곡풍의 음악이 전개된다.장송곡 풍의 행진곡을 통해 시니컬하면서도 모순적인 감정을 표현한다.이 모순은  마지막 악장의 대반전을 준비한다.마지막 악장에서는 이모든 관계들로 부터의 해방을 위학 위협적이라 할 만한 폭발이 기다리고 있다.발터는 2번 교향곡은 삶에 대한 비가,3번은 환희의 지혜 4번은 동화,5,6,7번은 순음악적 변화,8번은 삶에 대한 긍정....<대지의 노래>,9번 교향곡은 눈앞에 있는 죽음에 대한 숭고한 변형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본다.

 말러는 끊임없이  회의하고 부정하는 정신이었다.그는 이상은 그가 온전히 자신을 바친 음악을 통해 세계를 구축하고 인간과 신의 심연에 대해 이해하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빈에서는 말러에 대한 찬반이 팽팽했다고 한다.인기면에서는 오히려 슈트라우스 부자의 왈츠가 훨씬 많은 사랑을 받았을것이다.하지만 그의 시대가 오리라던 말러의 말처럼 '말러의 시대 20세기'에는 당대의 어느 작곡가도 말러에 필적하지 못했다.말러는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몇년전에 죽었다. 만약 그가 살아서 1차 대전의 수많은 죽음과 폭력을 목격했다면 그의 음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상상만으로도 그 음악의 무게감에 소름이 돋는다. .... 말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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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2005-07-06 19:45   좋아요 0 | URL
한 때 말러에 심하게 경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좀 많이 시들해졌지만 말입니다. 드팀전님의 리뷰를 읽고 다시 한번 말러의 cd를 꺼내들게 되네요. 아바도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말러 2번을 꺼내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러 만세입니다. ^^

드팀전 2005-07-07 11:54   좋아요 0 | URL
ㅋㅋ..그 음반은 최근 꺼군요.DVD도 나왔다고 하는.... 실황을 언제 한번 들을 기회가 있어야 진짜 좋은 지 알텐데...기회가 좀처럼 없군요.저두 이 책 보다가 이것 저것 꺼내듣게 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