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설국열차>에 대한 스포일있습니다. 리뷰는 아닙니다. 아내랑 나눈 대화를 거의 가감없이 정리한 형식. 영화적 사실 관계가 다를 수 도 있지만, 남의 부부 대화 엿듣는 느낌으로 보시면 됩니다. ㅋㅋㅋ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805/pimg_777882183882998.jpg)
영화<설국열차>를 휴가 마지막 날 밤 9시 넘어 봤다. 늦은 밤이었으나 극장은 만석이었다. 천만 관객 돌파는 최소 3주 이상이 걸리는 일이어서 초반 흥행 성곡이 천만 벽을 단언해 주진 않는다. 물론 천만이 무슨 염라대왕의 살생부는 아니지만 말이다. 올 상반기 최대 히트작이었던 <아이언맨3>과 비교해 본다면 초반 스타트는 <아이언맨3> 그 이상이 아닐까 싶다. 향후 방향은 좀 다를 수 있는데, <아이언맨>은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인데 반해, <설국열차>는 조금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관객 평들이 이후 영화 흥행 성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 <설국열차> 입장에서 다행이라는 것은, 최소한 <아이언맨3>은 두번 볼 마음이 없는 나같은 관객이 <설국열차>는 두 번 볼 계획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영화 흥행에는 도움이 되질 않겠나. 그래봐야 손바닥으로 바닷물 퍼담는 것정도 겠지만.
<설국열차>를 먼저 보고 온 것은 아내였다. 휴가 기간 중 둘째가 아파서 함께 여행을 가지 못했다. 그래서 여행 돌아온 후로는 개인적으로 룰루랄라 거릴 수 있는 시간은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 둘은 내 몫이었다.
오늘 낮에 아내가 회사 근처에 왔다. 요즘 시험 준비하는게 있어서 공부하다가 햄버거 하나 사가지고 위로방문하라기에 들렀다. 아내가 영화<설국열차>에 대해 물었다.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영화 보는 동안 스쳤던 생각 몇 개를 이야기했다.(긴 리뷰는 쓰지 않을 것 같다. 영화 <설국열차>는 내게 약간의 분석적 작업을 요하는 텍스트가 될 것이라서)
아내)영화 어땟어?
나) 음..나쁘지 않았어. 한국 SF영화의 정치적 아이디어를 일정 수준 높인 것 같아.
아내) 마지막에 북극곰, 이상하지 않았어.
나) 그렇지. 그런데 왜 봉준호가 북극곰을 롱샷으로 제시하지 않고 돌아보는 미디움 샷을 넣었는지 생각해봐야해. 내가 보기에 그건 봉준호가 웃기려는 거야. 그냥 이제 힘 빼라고 넣어주는 농담같은 것. 사실 생존이 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으로서의 상징이라면 산기슭을 올라가는 곰샷이면 충분했다구. 근데 굳이 미디움 샷을 넣었단 말이지. 내가 보기에...그런거 있잖아...우리가 뭐 한참 진지하게 말하다가...이야기 끝낼 쯤 되면....그러니까 말이 그렇단 거지요 뭐! ㅎㅎ 아니면 말구요..하는 식으로 어깨를 가볍게 하는 화법을 쓰잖아. 그런거야. 곰이 왜 나왔는지, 곰이 식인곰인지 아닌지 뭐 이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구. 중요한 과정은 그 전에 모두 끝났잖아.
아내)그런가? 하긴 언젠가 TV에서 신성우가 왜 뮤지컬 배우들이 공연 끝나고 나면 커튼콜 할 때 우스꽝스런 포즈를 취하는지 이야기 한 적이 있었거든. 그게 관객들에게 '이제 연극은 끝났어요. 각자 자기의 현실로 돌아가세요.'라고 빠져 나오는 시간을 주는 거라데.
나) 음. 좋은 비유같네. 봉준호도 그랬을 수도 있겠지. 하여간 곰이 북극곰인지, 시베리아 곰인지 그거 별로 중요한거 아닌거고, 그게 현실적이네 아니네도 전혀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거지. 웃기려고 한거야 봉준호가...ㅎㅎㅎ
아내)자긴 어떤 점이 좋았는데?
나) 일단 몇 가지 패러디들이 귀여웠어. 예를 들자면 <올드보이>의 장도리씬 있지. 봉준호가 기차에서 하데. 물론 귀여운 오마주인데, 생각해보면 장도리씬의 공간과 기차의 공간이 비슷한 부분이 있어. 앞으로 가아가야 하는 절박함. 뒤는 죽음이지.ㅎㅎ 그 기차의 현자있잖아. 그 사람이 팔을 내주었더니, 나중에 다른 기차 안 사람들도 팔을 내었다는 대사 같은 거 있지. 그거 기독교의 산상수훈에서 '오병이어'에 대한 공동체적 해석과 유사해. 어떻게 그 작은 음식으로 모든 사람을 먹였겠어. 예수가 솔선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내놓은거야. 그러니까 저마다 하나 씩 나중에 먹으려고 숨겨놓았던 것을 내놓게 되었고 결국 무리 전체가 떡과 물고기로 먹을 수 있었지. 성경은 그걸 상징적으로 '오병이어'로 먹었다고 말하는건데, 틀린 말도 아니잖아.
그리고 커티스 반란팀의 첫번째 위기. 진짜 조마조마 하던데, 적외선 살육씬 있잖아. 거기서 성냥으로 횃불로 대응하잖아.
아내)그래.아이가 성냥을 켜지
나) 그래, 그리고 어른들에게로 이어져. 그 장면 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랑 거의 유사해. 그리고 마지막에 아이들만 남지. 영화적으로는 그 촛불을 건넨 아이와 마지막에 살아남은 아이가 같은 아이라구..
아내) 영화적으로는 그렇겠네. 영화 <괴물>의 끝보다는 낙관적이긴 하지.
나) 그게 봉준호가 가진 현재의 정치적 포지셔닝인 것 같아. 기본적으로 봉준호는 현세대를 믿지 않아. 즉 우리와 봉준호를 포함하는 모든 기성세대 말이지. 거기에는 별 희망이 없다고 보는 것 같아. 사실 나도 좀 그래서, 봉준호를 끌어들이려는 것 같기도 한데.ㅋㅋㅋ 하지만 아이들은 좀 다르지. 최소한 그 아이들은 두 개의 카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론 그아이들도 늘 희망이 될 수는 없어. 단지 아직 카드를 펴지 않았으니, 우리보다 낫잖아.
아내) 그래, 우리 아이들 잘키워야겠어
나) 어제 예찬이에게 화를 세번 내었는데, 마지막에는 예찬이가 나를 바라 보던 표정이 ...하 뭐라고 해야할까. 좀 서글퍼보이기도 하고 하여간 맘에 남아.
아내) 그래, 자기는 바깥에 나가서 남들에게 뭔 피해주는 일 하면 너무 곧바로 화를 내더라.
나) 좀 그래.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건..좀. 하여간 그래도 예찬이에게 잘해야 하는데...
어쨋거나, 봉준호가 보기에 새로운 세상에 어른들은 들어갈 수 없어. 아니 들어가서도 안돼. 그만큼 기성의 것에 부정적이지. 물론 기성세대들도 할 일은 있어. 그 아이들을 폭발로 부터 지키는 것. 거기까지가 끝이야. 이거 구약 성경에 나오는 모세와 여호수와 관계 같은 거 잖아. 모세가 이집트로부터 유대인을 이끌고 고생 고생하며 도망쳐 나오긴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을 밟을 영광을 주지 않지. 모세의 역할은 가나안이 보이는 그곳까지야. 그리고 여호수아가 결국 입성해.
영화에서도 봐바... 마지막에 살아 남은 아이들...그 아이들은 흙을 밟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라구. 걔네들 모두 기차에서 태어났잖아. 고아성이 영화 마지막에 밟는 눈길은 ...마치 우주비행사 암스트롱이 달에 내려서 작은 발걸음이나 인류를 위한 거대한 발자취다...뭐 이랬던 거랑 비슷하다구. 즉 그 아이들에게 그 땅은 완전히 새로운 가치이고 새로운 땅이야. 그들이 거기서 다시 시작한다구. 그런 의미에서 어른들은 모두 사라져야해. 봉준호는 그런 디스토피아-유토피아의 공식을 따르고 있어. 나는 영화가 절망으로 끝난 것은 아니라고 봐. 즉 아까 말했던 것을 연결시키면 횃불을 이어 받은 새로운 희망이구 인류니까.
아내)그런데 결국 커티스는 다 속은 건가?
나) 글쎄. 거기는 여러 해석이 가능할 것 같아. 봉준호는 앞뒤 인과관계를 잘 맞추려는 노력을 많이 하거든. 봉준호의 디테일이란게 결국은 거기서 나오는 거겠지. 길리엄이 그러잖아. 앞칸에 가면 윌포드의 이야기에 속지마라. 혀를 뽑으라 그러나...하여간... 그 말을 받아들인다면, 윌포드의 말을 100% 수용할 수는 없어질지도 모르지. 하지만 커티스는 윌포드가 말한 상황을 이해한 것 같아. 사실 대단히 설득력있거든. 아마 그랬을 거야...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발생하는데...성냥 달라는 고아성을 첨에는 뿌리치는데 커티스가 다시 재정신 돌아오는 계기가 대단히 휴머니즘적인 사건에 의해서야. 뭐랄까...혁명에서의 이론과 신념같은 것 중요하겠지만 어떤 결정적 사건을 만드는 힘은 그게 아닌 것일 수도 있지. 봉준호는 최소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아내) 자기는 어떤 장면이 좋았어.
나) 글쎄.윌포드와의 대화도 좋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정치적 색깔을 드리운건, 송강호와 커티스가 문앞에서 나눈 대화야. 커티스가 문을 열라고 하지. 그런데 송강호가 그래 나도 열구 싶다구...그 문 말고...기차 바깥문 말이야라고 하지
아내) 그래, 그 장면 좋더라.
나) 사실 좌파 정치에서 아직까지 논쟁하고 재논쟁하는 그런 주제이기도 해. 커티스의 반응이 흥미롭지. 커티스 역시 '바깥에 나가면 죽어'를 반복한다구. 커티스는 보면, 일종의 레닌처럼 비쳐지거든. 거기서 그가 레닌의 제스처를 끝까지 취하진 못하는구나 싶기도 하고...하여간 반란군의 리더 역시 학교의 학생들에게 주입된 것같은 담론을 의심없이 받아 들이고 있다구. 아랫칸에서도 그런 담론의 유포는 계속되지. 아랫칸 사람들 역시 현재의 물질적 상황과 인정투쟁 욕구는 강했지만 그 체제 외부를 생각하지는 않는다구. 즉 바깥의 사유를 염두해 두지 못하는 거야. 니체나 들뢰즈등에 영향을 받은거겠지만... 소수자운동 등등 뭐 한방에 무슨 전복을 꿈꾸는 그런거 말고, 체제의 움직임에 자체에 제동을 거는 다양한 운동들이 그런 사유에 기대어있어. 그렇게 바깥의 사유를 염두해 두지 못하면 결국 윌포드의 제안, 내 대신 이 자리를 대신해서 기차를 유지해주게 라는 요청에 허걱하게 된다는거지...혁명이라는게 그렇게 권좌만 바꾸는 건가? 물론 그런 의미도 크겠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쉽게 말해 못가진 자들의 질투, 욕심 정도로, 너희가 돼도 다 똑같다라는 정도로 머물 수 밖에 없는거거든. 다행히 커티스에겐 아직 윤리적 선택의 길이 있었지만. 근데 실제로 우리 노조나 그외 기타 정치조직이나 보면 실제 여기서 대입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
아내) 자기 이야기들으니까...뭐 그런 것 같기도 하네.
나) 몰라 나도. 그냥 영화 보면서 그 정도 생각했구. 다시 한 번 봐야돼. 이거 원래 만화가 있었잖아. 2008년에 봤거든. 집에 가면 책 있어. 어제 영화 보고 와서 잠시 화장실에서 넘겨봤거든 만화에서는 기차가 순환하고, 앞 칸 뒤 칸 구분이 있고, 뭐 그 정도 설정만 빌려왔어. 뒤에 이야기나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구. 봉준호보다 훨씬 디스토피아적이지. 만화 속에서는 실제 열차가 1001량이나 돼. 그리고 2부인가 하여간 그 설국 열차가 또 있어서 충돌이 예상된다는 상황도 나오고...스윽 봐서 정확히 기억은 안나. 영화는 아무래도 캐릭터나 스토리를 좀 더 단순화하고 집중화 시켰야했겠지. 하여간 만화랑은 완전 달라.
아내) 그렇구나. 자기 이제 들어가봐야지.
나) 어...공부 열심히 하고. ㅎㅎ 공부하는거 보니 귀엽네.ㅋㅋㅋ 저녁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