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일기 - 남극의 비극적 영웅, 로버트 팔콘 스콧
로버트 팔콘 스콧 지음, 박미경 편역 / 세상을여는창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한때 국내 S그룹에서 1등주의를 내세운 캠페인을 한 적이 있다. 물론 한편에서는 그 광고의 부당성을 말했다.요즘처럼 인터넷 패러디가 유행했다면 당연히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땐 지금처럼 인터넷이 보편화 되지 않았나 보다.스콧의 일대기는 국내 굴지의 그 잘난 그룹의 1등주의에 딴지를 거는 가장 좋은 예가 되었을 것이다.그때 광고가 뭐 그랫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스콧은 <남극일기>를 통해 최초의 남극점 정복자 아문센보다 유명세를 탔다.

스콧과 아문센에 대한  평가는 세상을 보는 두가지 가치의 압축판이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그 두 가치는 다른 이름의 옷을 입을 수 있다.그래도 가장 보편적인 시각은 '결과중심주의'와 '과정중심주의'라는 것이다.본인이 원한바는 아니지만 아문센은 결과중심자로 전락하고 말았다.저자가 간략한 브리핑을 통해 밝혔 듯이 <남극일기>가 발견된 후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는 아문센보다는 스콧에게 œP아졌다.극한 상황에서 보여준 인간정신의 강인함은 남극점에 깃발 하나 꽂고 돌아온것 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아문센 입장에서는 진짜 억울한 일이다.스콧에게 무슨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정당한 방법으로 남극점 최초의 정복자가 되었음에도 폄하되었으니 말이다. 스콧이 일단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그와 그의 팀이 보여준 초인적인 인간의 모습때문이다.동료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릴 줄 아는 대의정신,죽음앞에서도 책임을 잊지 않던 의연함,그리고 공동체 안에서의 활발한 활동들...

20세기 초반,인간의 이성에 대한 강한 믿음의 시대,단순한 자연의 정복을 넘어서는 강인한 이성의 대표적 아이콘이 스콧이었을 것이다.거기에 정치적인 힘이 작용되었음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제국주의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영국이 한낫 바이킹의 후예에 밀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콧 대원들의 장렬한 최후는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는데 최고의 명약이 된 셈이다.

아문센과 스콧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콧 일행이 보여준 드라마는 인간정신의 구현이란 점에서는 최고의 드라마상을 받을 만하다. 내가 특히 관심이 갖던 것은 스콧 팀의 공동체 구현이다. 스콧은 자율성을 인정하는 열린 리더로 비춰진다.그는 각 대원들의 특징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그들의 능력을 공동체 안에서 공유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각 대원들은 자신의 해외경험이나 전공분야에 대해 동료들에게 강의를 한다.이 강의와 토론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며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아나키즘에서 말하는 자발적 공동체의 전형이 되는 것이다.아문센의 기록은 아직 살펴보지 못해서 무어라 말할 수 없으나 스콧처럼 인간적인 공동체를 구현해 내지는 못했을 듯 싶다.

이만큼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통나무집 하나에 모든나라와 모든 지방의 경험이 다 들어있다. 잡다한 지식의 집합소가 따로 없을 정도다.

겨울의 정점을 자축하던 밤 내가 선물로 받은 것은 체리그래드의 <남극타임즈 1호>였다.그것은 데이가 제본한 조그만 책자였는데 표지가 매력적이었다.

스콧의 일대기를 무시하려는 처사는 아니다.그의 이야기는 일단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책 <남극일기>에서 이를 찾으려는 사람은 한번쯤 고민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스콧이 직접쓴 보고서 형식의 일기이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며 쓴 생생한 경험의 글이라는 측면에서는 감동적이다.하지만 드라마적 구성은 결코 기대해서는 안된다. 이 책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내용이라고 할 만한 오츠의 죽음 역시 간략하게 그려질 뿐이다.그렇다면 책의 대부분 내용은 무었일까? '하루 몇킬로를 갔다. 식량이 얼마나 남았다.'가 주를 이룬다. 스콧이  이 글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쓴게 아니니 당연하다. 하루 하루의 일과를 간략한게 보고하다 보니 좀 무미건조해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번역은 진짜 맘에 안든다.주술관계가 안맞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이 여러게 발견된다.안그래도 이 책에 등장하는 남극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데 한 술 더 떠주는 셈이다.

결과는 원래의 쟁점을 정당화 시켰지만 나는 판단의 착오가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경우 충분한 증거없이 추정되는 안전감에 의존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불신감이 남극의 종잡을 수 없는 기후가 제법 오래 떨어져 있던 동료들에게 여러가지 형태의 재난으로 타격을 입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스콧의 이야기에 지나치게 기대해서였을까. 그가 사선에서  쓴 <남극일기>는 기대에 미치치 못했다.좀더 신중한 번역이 필요했다.또 남극의 상황과 용어들에 낯선 일반독자들을 위해 좀 더 자세한 자료가 제공되었어야한다. 그래야만 스콧이 처했던 상황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감동이 커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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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3-15 12:46   좋아요 0 | URL
아문센과 스콧, 다른 책에서 둘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성공해서 그런 생각이 들겠지만 아문센이 준비 면에서 더 완벽했다고 들었는데, 남극일기 발견 후 역전이 되었다더군요.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남극일기도 남극일기지만 대영제국의 힘과 매스컴 플레이가 더 주효한 게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