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 - 2000년 제31회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문구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6월
평점 :
품절


가끔은 너무 유명해서 선 뜻 손이 안가는 책이 있다.내게 <내몸은 너무 오래..> 가 그런 책 중에  하나였다.특히  00문학상 ,xx 문학상 수상작 처럼은 특정시기에 관심이 증폭되는 작품들은 더욱 그렇다. 이런 책들은 읽는 시기에 따라 몇가지 외부요인에 의한 감정들이 발생한다.우선 책이 작품상이 수상되기 전에 읽는 경우이다.먼저 자신의 책고르는 심미안에 대한 뿌듯함을 느낀다.그리고 무슨 상 수상작 같은 표나 상업적인 멘트가 없는 책을 가지고 있는데 대한 가당찮은 프라이드를 느낀다.다음으로 수상작이 선정된 후 읽을 때이다.우선 서점에서 수상작 벨트를 메고 있거나 빨간 딱지를 두르고 있을 때 한두번 넘겨본다.그리고 당대의 취향에  함께 승차하기 위해 얼른 집어든다.나름대로 책을 들고 지하철 타기에도 쑥스럽지 않다.또다른 감정은 가끔 삐닥선을 타고 싶은 마음에 발생한다.남들이 다 "이상문학상이래 동인문학상이래..." 이러면 괜시리 거기에 편승하고 싶어지지 않는다.이렇게 될 경우 이 책을 만나게 되는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거기에 몇년의 시간이 흐르면 정말 다시 보기 힘들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2004년 00 문학상의 수상작이 나왔는데 1999년 수상작을 들고 읽기란 그다지 쉽지 않다.

이문구의 <내 몸은....>은 2000년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이 체질개선을 하고 처음으로 선정한 작품이다. 나는 이 책을 수상작 선정되기 전에 사서 당시 애인-지금 부인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후 잊고 있었는데 결혼 이후 책들도 주인따라 섞이다 보니 책장에 이 책이 꽂혀있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의 첫장을 넘긴건 외국으로 나가는 비행기 안에서이다.지루한 비행시간 동안 이 책은 나를 충청도의 작은 마을로 데려갔다.몇장넘기지 않아 나는 어거지같은 나의 비딱선을 자책했다.  

어제는 마침 <인물현대사>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문구편이 나왔다.책도 다 읽은 마당에 관심이 가서 끝까지 보고 말았다. 이문구의 고향은 충남 보령이다.이문구의 소설에 나오는 쫀뜩한 사투리는 대개 충남 지역의 말이다.소설읽는 동안 나는 처가 식구들을 떠올렸다. 지역은 약간 다르지만 어쨋거나 자랑스런 충청인들로 구성된 처가식구들의 왁자지껄함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특히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연배가 비슷할 장인모님들을 소설 주인공에 대비시켜 그 언어를 연상하면 말의 맛이 그대로 살아났다. 동네 어귀에서  또는 상가집에서 교묘하게 말꼬리 이어가며 싸우는 이들의 모습은 글자로 만든 사람들의 형상이었다. 진짜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소설 속 인물들이 나누는 대사를 따라가면 그 장면들과 그 분위기들을 그대로 그려볼 수 있다. 문단의 거목이라는 칭호가 아까지 않은 이문구 선생의 내공덕이 아닐까 한다.

소설가 김영현이 이문구를 평하며 민중의 해학성으로 인해 어려운 시기에도 비관주의로 떨어지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 소설에서도 문장 문장 사이에 넘쳐나는 해학성은 마치 마당극을 펼쳐놓은 듯 하다. 오피스텔촌 작가들의 건조한 웃음이나 재즈카페의 고독을 논하는 젊은 작가들의 뚝뚝 떨어지는 퍼질러진 낭만성과도 크나 큰 거리를 둔다. 이문구의 글은 바로 옆에서 막걸리 마시고 손으로 김치 뜯어먹으며 나눈 이야기들이 바로 문자로 변해버린 살아있는 글이다. 파닥이는 것이 생선만이 아니라면 이문구가 구사하는 사투리도 파닥이는 채소요 펄떡이는 과일이다. 언젠가 신문지상에서 이윤기와 어떤 평론가가 문학에 나타난 사투리를 두고 논쟁을 펼친적이 있다.평론가의 말은 우리 문학작품에 근거를 알수 없는 사투리나 비속어들이 지나치게 난무한다는 지적이었다.이윤기는 반대편에서 논박하였는데...경상도 사람인 이윤기가 한 말. "속닥하다"를 표준어로 고치면 진짜 그 맛이 안난다는 것이었다.나 역시 이윤기의 의견에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공문서나 방송등에서야 그렇다 쳐도 문학작품에서 까지 그런것 신경쓰면 뭐로 글쓰란 말인지...

이 책에서 이문구는 민중의 해학성을 바탕으로 세태풍자의 변을 늘어놓는다.정계를 비판하고 농업정책에 대해 꾸짖고 천박한 자본주의에 대해 욕지거리를 해댄다. 조금 작위적인 모습도 없는 것은 아니다.장광설을 늘어놓는 주인공들을 보자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꾸 작가의 모습이 비친다. 꼭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의도가 과한건 아닌가 하는 정도의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문구가 글을 쓰게 된 것은 집안내력으로 부터 오는 감시로 인해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작가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불행한 가족사는 우리 역사의  안타까운 부분의 축소판이다.하지만 독자의 이기적인 입장에서는 그 불행이 거대한 밑거름이 되어 문학작품으로 세상에 큰 감동을 주었으니 전화위복이라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이문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다고 한다.그가 이념적으로 양분된 문학계에서 양측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의 이러한 신념 덕이었을 것이다.

이미 고인이된 이문구 선생. 그의 새로운 작품을 이젠 만날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시간과 함께 고전이 되어 아무 시간에 아무에게나 읽힐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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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1-29 12:28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어제 TV<현대 인물사>끝부분 밝에 못 봤습니다. 아쉽더군요. <관촌수필> 아주 오래 전에 읽어었는데...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 책 한번 읽고 싶군요.^^

로드무비 2005-01-29 15:32   좋아요 0 | URL
술자리가 있으면 쟁반을 들고 안주를 나르는 사람,
마지막 탁자 행주질까지 하고서야 자리를 뜨는 사람 이문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