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Jimmy Fantasy 2
지미 지음, 백은영 옮김 / 샘터사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글렌 굴드가 연주한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을 들으며 리뷰를 쓰고 있다.바흐의 음악과 왠지 지미의 <지하철>의 그림들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의 계단처럼 오르막 내리막을 왔다갔다 하는 바흐건반 음악의 특징 때문일까?  아니면 이 책의 원제목인지 ( 혹은 부제인지 ?) "sound of colors" 라는 말때문일까? 책장을 넘기다 보니  바흐의 상승음계에 따라 한 여자 아이가 계단 위 상상의 나라로 들어간다.또 그 아이가 바흐의 하강음계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으로 따라 내려간다.   

전주곡과 푸가2번의 제 1 전주곡 -"나는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방향을 잃고 말았다"

  검은 굴 속 같은 지하철 안에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빽빽히 들어차 어디론가 간다.신문보는 아저씨,또 그걸 넘겨 보는 백발의 아저씨,첼로를 든 자매,곰 인형을 들어올린 사람,고민이 많은지 아님 치통을 앓는지 볼 한 쪽에 손을 대고 있는 젊은이.그런데 우리 소녀가 보이지 않는다.어디갔지 ???  아 저기 뒤편에 그녀의 우산이 손잡이에 걸려 있네.사람들 속에 파묻혔구나.^^

전주곡과 푸가3번의 제2 푸가  -"어릴 때 말할 줄 아는 물고기를 키워 함께 바다밑을 잠수하고 낮은 목소리로 비밀을 속삭이는 꿈도 꾸었지"

소녀의 머리털이 한올 한올 떠올랐다.푸른 돌고래와 초록 돌고래가 동심원을 그리며 소녀와 원무를 추고 있다.주변의 눈이 동그란 물고기들로 줄을 맞추어 그들의 원무에 동참한다. 지하철 입구가 목욕탕 타일처럼 푸르다. 고대 등위에 누워서 썬탠을 하는 소녀.백사장 위의 썬탠보다는 고래등 모래사장이 훨씬 낭만적이다.소녀의 눈에 푸른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움직이는 구름은 아직도 신비하게 여겨질까?"

전주곡과 푸가 5번 제1 전주곡- "어쩌면 우리도 작은 새처럼 훨훨 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녀의 손이 6개가 되었나?아니 빨리 휘드르고 있구나.100개도 넘는 창문들을 배경으로 소녀가 날아간다.글렌굴드의 손가락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전주곡과 푸가 8번 제1전주곡- "이 도시 속에서 나는 끝도 없이 길을 잃고 헤맨다"

앙상한 가을 숲이다.계단이 뫼비우스 띠 처럼 이어진다.내려간 길은 결국 올라간 길이돼고 올라간 길은 종착엔 내려온 길이 된다.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소녀는 어디로 가고 있나. 전주곡이 흐느적 거린다.앞선 곡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이 방향을 잃은 음표들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푸가의 대답이 기다려진다.하지만 푸가는 더 무겁고 더 난망하다."계속 차를 잘못 타고 또 잘못 내린다." 빨강 초록 파랑 노랑의 지하철이 회색 승강장의 소녀에게 바람을 일으키며 제 갈길을 간다. "그래서 안개 자욱한 진흙밭에 깊이 빠져 헤어나지 못할 때도 많이 있다."

전주곡과 푸가 9번 제1전주곡 - "나는 비밀의 화원에서 어린 시절 잃어버렸던 꼬마병정을 찾았다."

소녀는 그네를 타고 글렌굴드와 바흐도 함께 건반위에서 가벼운 그네질을 한다. 잘 차려입은 병정인형이 물끄러미 소녀를 바라보고 있다. 내게도 어린 시절 커다란 인형이 있었는데.크기가 과장하면 1미터쯤은 된 소녀봉제인형이었다.외할아버지가 일본에서 가져다 주신 인형.어린시절 그 인형과 함께 찍은 사진이 몇장 있다. 그런데 그 인형은 어디로 갔을까? 이미 세상을 떠난 건가?

전주곡과 푸가 10번 제1전주곡-"혹시 저를 위해 저녁 노을을 볼 수 있는 창가에서 시 한 수 읽어주실 분은 안계신가요?"

책이 사방에 가득 찼다.소녀가 창틀에 기대어 붉은 하늘을 본다.볼수 없다.글렌 굴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조그맣게 뭐라 하더니 소녀의 주문에 답한다. 음음음....알아들을 수 없는 그의 허밍은 자신을 위한 시이다. 그녀를 위해 시 한수 읽어줄 낭독 실력이 못되는 나는 그녀에게 바흐의  음악을 들려준다.붉은 노을을 닮은 전주곡과 푸가 12번. 한 음 한 음 노을 빛과 어우러져 붉은 빛이 짙어진다.종래에는 잦아드는 피아노 소리처럼 푸른 어둠이 내릴 것이다.

전주곡과 푸가 15번 제1전주곡."삶이란 이렇듯 예측하기 힘들어.우리 다같이 맘껏 노래나 부르자!"

모자쓴 코끼리가 춤을 춘다.펭귄은 일렬로 서서 쭉 미끄러져가고 곰돌이들이 탬버린으로 분위기를 맞춘다.돼지는 어느새 피겨스케이팅을 배운걸까.토기의 의상은 요즘 유행하는 줄무늬 스트라이프이다.

전주곡과 푸가 19번 제2 푸가 -" 나는 우울한 도시를 방황하며 열심히 찾아본다."

사람들이 길을 건넌다.비틀즈의 앨범 같은 표정이다. 모두 한 방향으로 걷는다.소녀만 다른 방향이다.저멀리 또 전철이 지나가도 그런 소녀을 바라보는  눈만 내민 소녀는 결국 나비가 찾는 꽃밭을 찾을까? 가끔 꽃집이 없는 도시를 생각해본다.난 퇴근길에 무었을 사 갈 수 있을까? 과일도 봉지에 담아 줄 때는 낭만적이었지만 지금은 검은 비닐이라 맘에 안들고...그나마 계절마다 마음이 동할 때 제철 꽃을 담아 가는 즐거움도 꽃집이 없다면 사라지겠지.꽃집 아저씨 아줌마 고맙습니다.좋은 꽃 좀 떼놓으세요.

전주곡과 푸가 24번 제2푸가-" 이제 나는 어떤 것에도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나는 애써 찾이 않아도 모두 볼 수 있으니까요."

소녀가 멀리 나가나보다.지하철이 도시 외곽형인거 같다.띠 하나 더 둘렀을 뿐인데.소녀가 미소를 띠운다.글렌굴드도 1집은 이제 다쳤다고 이제 밥먹고 또 하자고 마지막 곡에 힘이 들어갔다.열심히 딩동거린다. 하늘은 황금빛이고 길가에 가로수 잎이 깃발처럼 나부낀다.글렌굴드가 하도 힘있게 두드려서 나뭇잎이 다 떨어지겠다.

p.s)

연주는 끝이 났다.내가 원래 좋아하는 류의 책은 아니다.아포리즘에 대한 지겨움정도가 그 이유일게다.이 책에 나오는 글 역시 그런 종류중의 하나여서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다.하지만 그림은 너무 예쁘다.처음 볼때 예쁘다 였는데 다시 한장 한장 넘기며 주변 사물에 까지 시선을 미치니 더욱 맘에 든다. 그림책 보는 재미는 그런 건가 보다.앞으로도 진짜루 좋은 그림책 있으면 추천좀 해주시라.(그림 책 너무 비싸서 함부로 살 건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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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12 10:45   좋아요 0 | URL
너무 잘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고 멋진 그림이 내걸린 듯한
리뷰네요.^^

비로그인 2004-09-12 16:58   좋아요 0 | URL
'지하철'을 사 볼 생각이었는데, 이제 이 음악도 함께 들어야겠어요!

비로그인 2004-09-13 17:12   좋아요 0 | URL
제가 반성하는 사유님 서재에 한번 낙서를 했었군요... 기억력 빵점... 아일랜드의 식상한 부분이 뭔가 있는데, 했는데 벅벅 긁어주셨군요. 그래두 아일랜드만한 드라마가 없어서리... 저는 감지덕지...포기않고 기회닿는대로 보려구요...스타일은 스타일대로 가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인 작가도 홍상수같이 같은 걸 반복해서 지루하게 하는 일만 없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