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
노동은 외 / 민글 / 1993년 11월
평점 :
품절
90년대 초반쯤으로 기억된다.학교 앞 서점에 흑백표지의 그럴싸한 잡지하나가 걸려있었다.지금 기억에 영화배우 '이경영'이었던 것 같은데...가물가물.표지 디자인이 당시로서는 신선했다.검은 흑백사진에 콘트라스트를 쎄게넣은 멋진 사진이었다.전체 1/4상단에 노란색 밑판을 깔고 '예감'이라고 큼직하게 써있었다.문화예술 잡지 제목으로 최고 아닌가....."예감" .뭔가 있을것 같은 예감에 책을 집어 들었다.
문화잡지란게 요즘과 달린 영화 뒷이야기나 음악팬들을 위한 잡지가 대부분이던 시대 군계일학하는 잡지였다.잡지의 전체 색깔은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민족예술계열을 반영했다.그런데 싯뻘건 색갈과 구호가 난무하는 잡지는 아니였다.그렇다고 후에 나온 "문화과학"처럼 어느정도 학술적 저변이 있어야 볼수 있는 잡지도 아니였다.세련된 편집과 진보적 의식을 담되 대중과 유리되지 않는 것이 이 잡지의 장점이었다. 당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던 압구정을 문화적 시각에서 접근하고 베스트셀러들의 헛점을 짚었다.한국락음악의 저항성과 상징성을 읽어내었다.또 미군 기지 주변의 삶을 다룬 포토에세이를 통해 반미문제를 표현했다.오윤의 판화를 소개하고 케테 콜비츠의 그림을 알려주었다. 아....그런데 미인박명이란게 잡지에도 적용되는가.3개월인가 4개월 나오더니 없어졌다.허망......아마 수익성이 맞지않았겠지.
이 책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에 나오는 글은 그 잡지 "예감"에서 접했던 것들이 몇 편있었다.그래서 책 이야기에 앞서 금새 사라진 추억속의 잡지를 먼저 떠올렸던 것이다.내가 그 잡지에서 보았던 글중 여기에 수록되어있는 것은 <케테 콜비츠><오윤><빅토르하라> 등이었다.그 외에도 이 책에는 20세기를 살았던 저항적인 예술인들의 생애와 작품들에 대한 소개가 들어있다.책 제목이 되기도한 러시아 시인 미야코프스키,영화<우편배달부>를 통해 친근해진 파블로 네루다,한참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밀란 쿤데라 등등.
우리나라의 예술인들도 수록되어 있다.박수근,윤이상,오윤,김순남 등이다.이들은 대부분 독자적인 어법으로 우리 예술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한 사람들이다.그리고 역사발전의 동력인 민중들의 목소리를 그들 작품속에 용해시킨 사람들이다.물론 20페이지정도로 그들의 예술과 삶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하지만 20세기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옳바른 정치의식을 가지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함게 돌린 사람들의 흔적을 만나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인해 어떤 사람들은 이들의 작품을 폄하하는 사람들도 생길 수 있다.과도한 정치성,또는 프로파간다적 예술속성등등.그런데 시대를 읽고 표현하는 법은 누구나 다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책 말미에는 문화이론의 장이 마련되어 있다.다른 편들에 비해 조금 더 길게 수록되어있는 편이다.알튀세르와 그람시.그리고 르페브르의 문화이론을 요약설명한다.내가 이 책을 읽던 당시에는 르베브르의 이론이 눈에 들어왔다.거대 담론에 익숙해져 있는 분위기속에서 일상성과 모더니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만만한게 '구조주의'"해체'이던 (사실 그게 뭔지도 잘 몰랐다.) 접근법에서 일상성의 문제와 거대담론이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들에 대한 의문과 분석은 신선했다.아마 20세기 문화이론을 좀 압축해서 보고자 한다면 책 말미의 소론을 읽어보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마 ....이 책은 서점 테이블에는 없을 것이다.서점 테이블 밑이나 아니면 헌 책방이거나.. 교과서에 나오거나 미술,음악사 개론에만 나오는 예술가 말고 다른 사람들이 궁금하다면 한번 읽어봄직하다.시대가 달라졌으니 큰 공감을 기대하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