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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 한 알 -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
최성현 지음 / 도솔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91년 봄으로 기억된다.당시 시국은 '분신정국'이란 이름으로 대변되듯 87년 6월 이후 최대의 급변기를 겪고 있었다.명지대 강경대 학우가 전경의 뭇매에 죽었다.그 후 학생과 노동자들이 이틀이 멀다하고 자신의 몸을 던졌다.당시 정부는 '전세를 뒤집기 위한 운동권들의 발악'이라고 분신정국을 규정했다.서강대 총장이던 박홍은 죽음을 유도하는 검은세력이 있다고 하며 이후 계속될 주사파 발언의 포화를 열었다.거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바로 김지하의 '죽음의 굿판을 때려치워라'라는 칼럼이었다. 충격이었다.그리고 김지하의 명성 만큼이나 크게 분노했다. 70년대 유신독재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써 김지하의 무게감.그 만큼의 실망과 분노가 함께 했던건 오히려 당연했다.진보적 인사들의 칼럼과 학교 대자보에는 김지하의 발언에 대한 비난이 가득찼다. 그러한 비난 속에서도 김지하에 대해 오래도록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의 발언이 '김지하 답다'고 했다.즉 그가 오래도록 심중에 품고 있던 생각을 밝혔다는 것이다.그렇다면 당시 김지하가 말하고자 했던 사상은 무었일까? 본인은 "생명사상'이라고 했다.
장일순을 알게 된건 그의 동지이자 제자인 김지하의 이름 덕택이다.제자가 유명해져서 스승도 유명해진 건가? 이미 알던 사람들에게야 장일순의 이름이 절대 낯설지 않았겠지만 일반인들은 김지하를 통해 장일순을 알게 된 경우가 많을 것이다.나 역시 그랬다. 그럼 여기서 약간의 상상을 더해본다.만약 '분신정국'의 상황에서 장일순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면 어땟을까? ..... 잘은 모르겠으나 이 책을 보고 난 후 내 나름대로 유추해본다면 그 역시 김지하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길 했을 것 같다. 당시 김지하의 발언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그리고 그건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그와 장일순이 말하는 '생명의 보편성'으로 바라본다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다만 시기적으로 그럴 필요가 있었느냐는 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장일순과 김지하 식의 저항은 흔히들 말하는 민주화세력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같지만 그 심연은 사뭇 차이가 있다.그 차이를 우리의 저항세력은 전장의 처절함에 동참하는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으로 구분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장일순을 70년대 암울한 시대 민주화 세력의 거점이던 원주캠프의 청지기로만 그를 기억하는 것은 지독히 편협한 시각이다.
언젠가 k방송사의 <인물 현대사>라는 프로그램에서 장일순을 다룬 적이 있다.아무래로 역사성을 걷어내고 형상화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겠지만 '민주화의 숨은 일꾼' 으로서의 장일순이 상대적으로 많이 부각된 것이 아쉬웠다. 반면 이 책 <좁쌀 한 알>은 선생과 주변 사람들 사이의 일화를 중심으로 장일순의 의식 저변에 깔려 있는 드넓은 우주적 사고의 일면을 보여준다. 장일순은 일체의 모든 것 속에 하느님이 들어있다는 세칭 범신론적인 태도를 취한다. '풀은 부처의 어머니'이며 '밥 하나에 우주가 들어있다'는 것이다.그의 시각으로 보면 세상에 갸륵하고 섬기지 않아야 할 것이 없다. 식당을 찾아오는 손님을 하느님처럼 모시고 나의 친구를 하느님처럼 모시고....창녀를 하느님처럼 모신다. 진리는 결국 하나의 것으로 귀결되니 종교의 편가름 같은 것은 그에겐 무의미한 짓일 뿐이다. 카톨릭 신자였지만 부처와 노자,장자 그리고 혜월을 가리지 않고 섭렵하고 받아들인다. 교회다니기때문에 법당의 향내 조차 맡기 싫다는 칭찬받을 (?) 신심의 주님의 종들이 도처에 깔린 이 사회에서 그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혼자 잡념에 빠져본다.
장일순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그의 무소유와 겸손함이다.그리고 그의 앎이 실천으로 배여 평생을 함께 했다는 점이다. 하나의 책이라도 하나의 CD라도 더 쟁여 넣으려 나. 조금 아는 지식으로 남들에게 뭔가 알려주려고 하는 나. 그리고 조금 아는 것도 이 핑계 저 핑계...현실적 문제 등등 운위하며 빠져나가는데 익숙해져 있는 나.그리고 그런 변명조차 인간적인 한계라고 선 긋고 맘편안하게 자려고 하는 나.... 이런 나는 얼마나 초라해지는 것인지....
그의 가르침은 '낮아 지고 낮아 지라는 것'이다. 내가 낮아 지지 못하면 아무도 변화시킬 수 없고 세상도 변화 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장일순은 그의 멋진 글씨가 '고구마 장사의 글씨'만 못하다 했다. 또 유치원생의 글씨만 못하다 했다. '산길에 소리없이 아름답게 피었다 가는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라고 말한다. 그의 집 가훈은 '하늘과 사람을 대해서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 였다.
나는 얼마나 사람과 하늘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사는지 반성해본다.잘난 맛에 사는게 인생이라며 얼마나 떵떵거리고 다니는지..... 얼마나 닦으면 표지에 나오는 장일순 선생같은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P.S) 이 책의 단 한가지 아쉬움이다. 지나치게 좋은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그렇다보니 장선생의 고뇌와 번민들은 빈약하게 다루어진다.그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장일순 판 '용비어천가'로 읽힐 수 있다.오히려 그를 우리곁에 있었던 살아있는 누가 아니라 신격화된 누구로 보이게 하여 반감을 사지나 않을까 걱정해본다.기우라면 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