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탄생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반 나절 등산할 시간이면된다. 길 역시 매우 평탄하다. 그러므로 경제학이라는 부담을 떨치고 산책하는 기분으로 나서도 된다. 만약 어느 일요일 브런치로 식사를 하고 첫줄을 읽기 시작한다고 쳐보자. 중간에 화장실도 다녀오고, 뉴스검색을 하며 슬그머니 딴짓에 고개를 돌리더라도  연애인들의 농촌체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하기도 전에 책 한 권을 다 읽어 버릴 수 있다.

우석훈은 언제부터인가 진보진영의 스타 경제학자가 되었다. 그의 <88만원세대>는 21세기 초의 한국을 사는 젊은 실업자들을 상징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각 종 칼럼을 비롯해서 블로그등을 통해 그는 대중친화적인 경제학을 선보이고 있다. 우석훈이라는 함수가 지닌 장점은 일단 복잡한 상황들을 최대한 압축하여 먹기 편안한 알약으로 바꾸어서 돌려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환영받는다. 인문학이니 뭐니 난리를 쳐도 결국 대중은 '알약'을 선호한다. 물론 나는 '알약 처방전'을 늘상 환영하는 편은 아니다. 좀 아쉬운 소리를 하자면 '알얄'말고 '가루약'을 먹을 수 있는 여지가 있음에도 늘 '알약'만을 선호하는 태도에는 볼멘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가 '알약 중독증'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 걱정되기도 한다. 우석훈은 몇 몇 대목에서 자신이 '알약'을 제조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간과하는 부문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차포떼고 이야기하니까 알아서 들어라 하는 정도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케인즈와 뉴딜의 성공이 과연 국내적인 유효수효증진책의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전쟁때문이었는지 같은 것 말이다.   박정희의 성공등에 대해서도 이런 논쟁적인 주제들을 대충 한 번씩은 던져준다. 그 논쟁적인 주제를 어찌 다 이야기할 것인가? 물론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이윤율하락의 경향이 자본주의 자동붕괴를 의미했다는 실없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사회주의 경향을 국가 사회주의로만 한정하는 경향도 있는데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사족을 달아 여운을 주지 않는다.  

<괴물의 탄생> 은 저자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계획했던 한국경제 4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책은  경제사와 한국경제의 문제에 대해 압축할 만큼 최대한 압축해서 쓴 책이다. 그것도 이보다 더 쉽게 쓰기가 어려울 정도로 쓴 것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애초에 주려했던 것 보다 별을 하나 더 주었다.) 물론 나는 하도 여기 저기서 '우석훈, 우석훈' 하길래 궁금하기도 하고 또한 그런 추종에 대한 약간의 반감이 들기도 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과히 '장하준과 우석훈'의 대안경제론에 흠뻑 빠져있다. 장하준은 케인즈주의적 방식으로,우석훈은 제3섹터 방식으로 한국경제의 새로운 모델을 이야기한다. 둘의 공통점은 현재 한국에서 숭상받는 신자유주의는 전후무후한 말로 안되는 짓이라는 것이다. 우석훈은 최근의 이명박의 신자유주의는 소망교회식 신학의 변종임을 말한다.

 장하준과 우석훈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사실 둘 사이에도 서로 비판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장하준의 모델은 다분히 케인즈주의적 좌파 모델로 우석훈 식으로 말하자면 스웨덴식 모델이다. 조합주의에 바탕을 둔 분배모델인 셈이다. 우석훈은 장하준보다 한국에 더 착종한 경제학자여서 그런지 이런 조합주의가 실현가능하지 않다는데에 동의하는 듯 하다. 한국경제의 발전사가 갖고 있는 내부적 모순에 '재벌'이 있고, 노무현의 시대를 건너며 이미 한국은 자본이 정치를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우석훈은 케인즈주의적 공공성 창조가 이미 힘들다는데에는 동의한다. 그러니까 우석훈의 말대로 하면 국가를 강화한다는 것은 이미 물건너 간 것이다.(물론 그렇다고 국가의 역할에 대해 손을 놓아야된다는 뜻은 아니다.) 우석훈의 모델은 '스위스모델'이다. 이것은 국가,시장 외에 제 3의 영역을 공공성의 이름으로 강화하여 완충장치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둘 다 미친 시장론자에는 반대하지만 해법은 다르다. 내가 가장 혐오하는 방식은 일단 '시장에 반대하면 다 같다' 는 환원론이다. 이런 방식은 늘 상 '커다란 적'에 대적하면 '우리는 친구'라는 논리와 똑같다. 이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2MB를 지상 최대의 악'으로 규정하는 방식이다.제발 그런 단순 논리는 현장에서 쓰지-나도 현장에서는 쓸 것이다- 아무때나 폭발시키지 말자. 그것은 그런 '폭발의 후폭풍' 아래 다양한 가능성과 의견들을 묻어버리는 후속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내 말이 뭔지는 잘 알 것 같다.(리뷰를 우석훈의 책보다 더 어렵게 써서야 곤란할테니..막말하면서 써야겠다.) 

'2MB주적론' 이 마치 진보의 척도인양 행세를 하다보니 최근에는 '노무현 예찬론'까지 등장했다. 논리는 간단하다. "어찌되었던 노무현은 2MB보다 낫지 않나. 노무현이 만든 종부세도 2MB는 다 철폐하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단시안적이고 이분법적 구도하에 들어가 버리면 '그래 노무현이 낫지'로 생각하고 정답을 써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쯤 다양한 가능성들은 이미 화장실 소용돌이를 따라 내려가고 있다. 그래서 당신들에게 늘 정치는 '객관식'이되고 만다. 우석훈이 <괴물의 탄생>에서 한국 경제를 선순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육제도의 개선을 이야기하는데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당신이 어떤 지위에 있던지, 어떤 자리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던지, 당신이 정치를 말하며 늘상 객관식을 주장한다면 당신은 여전히 '정치적이지 못하다. 우석훈은 한국경제가 이 모양으로 작살 난 중요한 시점을 '노무현 시대'로 본다. 이는 적절하다. 그것은 노무현 때문은 아니지만 노무현의 선택 때문이라고 한다면 결코 틀린말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압력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해서는 안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비전을 보여주었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못햇다. 거기아 더하여 국민경제 2만불 시대를 위해 올인하면서 '삼성' 과 '토목'에 목숨을 걸었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태클 걸어서라고 한다면 도대체 축구장에 나간 이유는 무엇이냐?  태클 없는 축구장을 원했다면 김규항의 말처럼 중소기업 사장으로 노동자들에게 노블리스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았으면 더 좋았을것이다.

우석훈의 <괴물의 탄생>을 이야기하다가 딴데로 갔는데, 사실 이 책에 여러번에 걸쳐 나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완전히 딴세상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박정희에게는 비전이 있었다. 포드주의 시대에 맞는 비전이고 당시 국민들을 동원할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보릿고개를 없애자' 이것보다 강한 아이템이 어디있겠는가? (여기서 그가 놓여 있던 시대의 국제관계,그의 국내 정치적 공과와 경제적 성취를 가능케 했던 방식들은 괄호로 치자.) 우석훈이 보기에 노무현의 시대는 세계적으로 포드주의에서 포스트포드주의로의 이행이 빠른 행보를 행하고 있던 시점이다. 노무현의 문제는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석훈의 대안은 근본적으로 국민경제가 '지식-문화모델' 하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첫번째로 사교육문제를 걸고 넘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와 같은 사교육 경쟁은 국민경제를 피폐화 시킬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제적 패러다임에 맞는 주체를 생산해내는 경쟁력도 갖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교육의 한시적 금지에 대한 헌법 소원이라는 주제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사실 그 소원이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종류의 합의와 사회적 담론의 공유를 위해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마지 못해 사교육에 가담하면서 늘 푸념처럼 하는 말이 그거 아닌가? " 사교육문제만은 전두환이 잘했잖아?" (물론 여기에는 서로 타당한 헌법적 개념들이 충돌하게 될 것 이다.)

우석훈의 스위스 모델은 사실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이다. 이 길은 생태적 경제학의 길과도 유사하다. 우석훈이 대략 은퇴하고 시골 내려가고 싶다고 했다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우석훈은 국민경제에서 20% 가량이  제 3섹터로 채워져서 완충역할을 한다면 사회적 안전망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스위스 모델의 직접 대입은 한국 사회에서 불가능하다. 그것은 우석훈의 <괴물의 탄생>에서 직접 보여준 한국 경제의 비정상적 성장과정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교육구조의 왜곡, 수도권집중형 경제구조, 지역토호들의 확산, 부동산과 건축경기에 지지하는 국민경제 등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우석훈의 모델은 얼핏 보면 가라타니 고진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어소시에이션' 형태의 경제와 같은 것이다. 우석훈이 모스의 '증여론' 같은 것을 언급하는 거 역시 고진의 방식과도 같다. 좀 도식화해서 보자면 '김종철-가라타니 고진-우석훈' 식의 패턴이 나온다. 물론 김종철은 경제학자라기 보다는 인문학자이고 그의 문제제기는 인류학적이다. 고진의 대안 역시 칸트적인 영구평화에 기초한 전세계적인 대안 모델에 촛점을 맞춘다. 우석훈이  한국적인 토양 위에서  이 가능태를 실험해보아야 한다고 -즉그 국민경제의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우석훈도 그의 대안이 현재 상황에서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비관적인 정권과 그를 받치고 있는 체제 내에서 우석훈식 대안이 그나마 의견이라도 한 번 개진해보려면 '사건'적인 충격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망할 때는 혁명적으로 망해야지 무언가 되살릴 수 있는 반동이라도 있는 것인데, 현재의 몰락은 천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우석훈 말대로 보자면 중남미식 8자형 경제가 정식화 될 가능성에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우석훈은 결국 경제적 곤란은 파시즘의 형태로 발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이 지점에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 우석훈의 파시즘이라는 말은 일종의 '연성파시즘' 개념인데, 파시즘이라는 용어의 남발 문제는 좀 생각해 봐야한다. 우석훈은 '심각하에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는 상황을 뜻하고자 용어의 이미지적 환기를 떠올린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본 한 칼럼에서는 '일본의 프리터들, 우리는 전쟁을 원한다.'라는 글을 본적이 있다. 물론 실재로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것 외에 계급고착적 사회에서의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절규에 가까운 소리이다. 전쟁은 급진적 사회변동을 뜻하기때문에 이렇게 장기실업에서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삶보다는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할 수 있는 전쟁이 낫다는 주장이었다. 우석훈 <괴물의 탄생>에서 파시즘을 우려한 것은 일본의 그런 상황이 우리의 미래의 한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석훈은 그의 경제학이 '호러경제학'이라고,너무 비관적이라고 지적받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너무 단순화한 설명은 있지만 한국경제가 가는 방향에 대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지옥'의  입구에 서있다. 아니 이미 몇 걸음 이상 걸어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실 그렇게 보인다.) 지옥의 특징은 그곳에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아직 주체 자기배려 또는 자율성이라는 것이 남아있다고 희망을 가져보자. 그나마 우석훈의 모델이 주는 작은 가능성 역시 미미하지만 구성원들의 자발성에 의존할 수 있는 범위가 있기때문이다.(한살림이나 생협에 가입하시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찐빵 2008-11-20 12:24   좋아요 0 | URL
책을 읽을 때는 정리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혼자 푸념했는데 드팀전님의 글을 읽으니 좀 차분해지네요.
'알약', '축구장' 비유 참 그럴듯합니다.
이것도 글쓰기를 통한 '증여'가 아닐런지요.
고맙습니다.
가끔 이곳에서 노래도 듣고, 그림도 보고 갑니다.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드팀전 2008-11-20 19:22   좋아요 0 | URL
ㅇ..ㅇ..앞에도 이야기했지만너무 빨리 읽고 너무 빨리 써버려서 ..제가 별로 차분해지지 못했어요. 좀 차분하게 하나씩 정리해도 좋았을텐데...
반갑습니다. 찐빵님.
전 찐빵 좋아해요.진짜루...저희아들은 찐빵 속 팥만 좋아해요.

글샘 2008-11-24 02:00   좋아요 0 | URL
쥐박이한테 물어보면... 요즘 미네르바라는 괴물이 출현했다고 지롤거릴걸요... ^^
정글자본주의 운운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살아남으라는 말처럼 두려운 게 없음을 요즘 생각합니다. 살아남으라...

드팀전 2008-11-24 18:21   좋아요 0 | URL
이명박의 정책은 일단 정세파악부터 안되있습니다. 경제학도 아니라는 우석훈의 말은 그런면에서 맞습니다...
일부 계층의 사익에 봉사하는 경제정책인셈이지요.
그 반동으로 생긴 이익은... ^^ 죄송하지만 박근혜가 가지게 됩니다. 담론적으로 보자면 뉴라이트의 퇴조와 전통보수주의의 재입성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우석훈의 파시즘론은 정서적인면에만 어필하고 있습니다.

박근혜는 전통 보수주의-한국을 뜻하는게 아닙니다-가 가지고 있는 '정치세력'과 '경제세력'의 분리와 보수주의의 공공선 개념등과 개인적 처신의 일관성-한국에서 이것은 지도자의 도덕성을 보여주는 징표입니다-등으로 인해 어떤 형태로든 가장 막강한 이명박의 견제세력으로 부상할겁니다.(사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잠시 물밑에 있었던 것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