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덕분인지 클래식에 대해 물어오는 이들이 주변에 가끔 있다. 국내 연주자들 중에 나는 백건우와 장한나를 가장 아낀다. 백건우는 절제와 금욕적인 연주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미 정상을 달리고 있다. 장한나는 신동으로부터 시작해서 여전히 잘 크고 있다. 동시대의 훌륭한 연주자가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즐거움이다. 장한나의 뛰어난 점은 그녀가 첼로를 잘 연주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음악을 나눌 줄 안다.' 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가 책읽기를 연주하기 만큼 좋아한다는 것도 그녀의 연주가 여기서 머물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장한나가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지 않고 철학을 전공했을 때 이미 그녀는 더 멀리 나아가는 자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버드 철학과가 우리 대학처럼 대충 공부하고 리포트 낸다고 또는 세계적인 연주가라고 대충 봐주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물론 장한나는 아직 졸업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인터뷰에서 음악 이야기 만큼이나 책 이야기를 많이 한다. 각종 문학작품은 물론이고, 철학 서적들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 음악하는 대학생들은-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어떤가 싶다. 첼로를 전공하는 친구는 리히터가 누군지도 모른다. 성악을 전공하는 친구는 조지 셀이 누군지도 모른다. 오로지 파바로티와 마리아 칼라스만 알뿐. 하물며 ...
미켈란젤리는 제자 아르헤리치에게 그냥 산책하며 사색하는 법만 가르쳤다고 한다.(설마 그것만 했겠냐만..) '음악전문가' 들만이 판치는 시점에 장한나의 행보는 아름답기만 하다.
‘한나의 편지’가 도착했어요!
기사입력 2008-10-28 05:49
[동아일보]
첼리스트 장한나, 진천 문상초교생과 아름다운 인연
“교장선생님, 아이들이 다른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이 생각나서 제가 그 나이 때 즐겨 듣던 하이페츠의 음반 하나 보냅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들으며 행복한 시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미국 뉴욕에서 장한나)
“지난봄 장한나 누나가 왔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누나가 주신 책도 잘 읽었어요. 한나 누나가 선물해 주신 하이페츠의 곡 잘 감상했습니다. 누나를 꼭 한 번 더 보고 싶습니다.”(문상초등학교 4학년 정민우)
올해 봄 충북 진천군 문상초등학교 마을도서관에서 학생들에게 책을 기증하고 연주를 함께했던 첼리스트 장한나(26) 씨. 세계적인 연주자인 장 씨와 전교생이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 시골 초등학교 학생들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장 씨가 런던 체임버 오케스트라와의 내한공연(11월 3∼9일)을 앞두고 27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진천의 문상초등학교 마을도서관에서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고 연주했을 때 너무도 기뻤다”며 “아이들을 위해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매일 들었던 야샤 하이페츠의 음반을 편지와 함께 보냈다”고 소개했다.
장 씨는 4월 7일 문상초등학교의 학교마을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해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 전교생 99명과 함께 연주했으며, 카프카의 ‘변신’, 톨스토이 단편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 책 180권을 기증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장 씨가 기증해준 책을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전부 돌려봤으며, 장 씨가 선물로 보내준 CD도 점심시간과 자습시간, 음악시간에 감상해왔다. 4월 이후 장한나의 홈페이지(han-nachang.co.kr) 게시판에는 최근까지도 문상초등학교 학생들의 감사 편지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언니가 보내준 톨스토이 단편선 1편과 2편 잘 봤어요. 책 고마웠어요. 언니처럼 똑똑해지고 싶어요.”(최향숙)
“장한나 언니가 주신 책은 정말 재밌어요. 언니! 그중에서 돈키호테가 산초에게 섬을 준다고 하고 데리고 다닌 걸 보면 돈키호테는 참 재밌는 것 같아요.”(김혜련)
“20일에 학교 운동장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었어요. 누나랑 했던 ‘주먹 쥐고∼’도 당연히 연주했고요. 누나가 오셨으면 정말 좋았을 거예요.”(정민우)
장 씨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
음악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음악이 내 인생의 전부가 되는 것은 싫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가는 연주를 통해 내면의 소리를 전달하는 것이므로, 우선 내면을 채우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하버드대 철학과에 재학 중인 장 씨는 최근 D H 로런스의 ‘아들과 연인’ ‘사랑하는 연인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말했다. 장 씨는 “톨스토이와 달리 로런스는 사랑에 대해 직설적인 화법으로 이야기한다”며 “마치 돌과 돌이 부딪쳐서 동그래지는 것처럼, 사랑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인상적”이라고 설명했다. 장 씨는 “음악이나 미술이나 인류의 무의식적인 흐름이 담긴 것”이라며 “음악가로서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악기 연습 외에 문학작품도 더 많이 읽고 싶고, 역사와 철학책도 많이 읽고 싶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