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 나는 결코 괴짜가 아니다 예술 거장 시리즈 1
브뤼노 몽생종 지음, 임동현 엮음 / 모노폴리(monopoly)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지난해 글렌 굴드의 새 음반이 출시되었다. 죽은이의 개인 창고에서 발견된 새로운 음원이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재탕'이었다. 새 음반은 55년 글렌 굴드의 첫 레코딩 <골드베르크 변주곡>를 리메이크 한 것이다. 통상적인 구분을 위해서 '젠프 음반' 이라고 한다.  '젠프'는 리메이크에 사용된 컴퓨터 시스템의이름이다. 이 음반은 55년 모노로 녹음된 음원을 컴퓨터로 데이팅화한 것이다. 굴드의 타건, 패달링, 음량 정도를 그대로 수치화하여 '야마하' 피아노로 다시 녹음한 것이다. (55년 녹음은 애칭이 '치클링'이었던 스테인웨이 피아노 아니었나 싶은데...'치클링'은 굴드 생전에 사망 신고가 내려졌고, 이후 굴드가 찾은 것이 '야마하' 피아노로 알고 있다. 정확히 잘 모르겠다) '음악 재현의 수량화'라는 측면에서는 거의 혁신적 방식이다. 이 작업은 모노를 스트레오로 듣는다는 꿈을 이룬 것 이외에 다양한 미학적 질문을 던진다.

"과연 그것은 글렌 굴드의 음악인가?" 에는 전문가들과 음악팬들 사이에 이견이 많다. 미학관 전체를 반영해서 답해야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 "글렌 굴드 라면 자신의 과거 녹음이 이렇게 복제되어 재생산되는 것에 동의했을 것인가?" 에는 비교적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결코 괴짜가 아니다>에 나오는 굴드의 인터뷰를 보자.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만 있다면, 2백군데를 연결해서 하나의 곡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부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계적인 수단으로 만들어진 연주를 속임수라고 이야기하는 사고방식에는 짜증이 납니다. 환상이나 조작을 최대한 이용해서 이상적인 연주를 만들어냈다면, 그 일을 멋지게 해낸 사람에게 경의를 표해야 할 것입니다."

실황 공연을 싫어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기벽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음악 미학과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고 부차적인 부분에서는 언론들의 입방아가 만든 스캔들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책 초반부에는 굴드가 그의 괴이한 행동들에 대한 오해를 해명하는 글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한 여름에도 코트를 입고 다닌다.' '썩어빠진 의자를 신주단지처럼 모신다.' 등등..이런 가십들을 제외하고도 글렌 굴드가 좀 특별한 사람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는 어린 시절 부터 30대에 라이브 무대에서 은퇴하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32살에 공연장 밖으로 몸을 빼냈다. 사실 비범한 30대피아니스트라면 국제적 인지도를 높여 나가며 세계를 무대를 누비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런데 그런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이것은 '무대 공포증' 때문이 아니다. 여기에는 음악 예술에 대한 글렌 굴드의 '미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대개 클래식 연주가들은 '실황 연주'를 '레코딩'보다 '진정성' 있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음악이라는 시간적 예술이 갖는 '1회적 재현'에 대해 아우라를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음악가들은 '실황/스튜디오'를 병행하면서 부와 명성을 쌓는다. 간혹 나타나는 극단적인 '레코팅 혐오가'-예를 들어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같은-역시 '레코드형 인간' 글렌 굴드 만큼이나 희귀하다.

굴드가 음악을 대하는 방식은 다분히 북구의 수도승 같다. 그는 음악팬들을 위해서도, 무대 앞의 관객을 위해서도 음악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 음악은  그를 통해 져핸되어야 하는 신의 형상과도 같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고요'가 필요하다. 청중의 피드백이라던가, 흥분과 광기 같은 것은 '음악의 음악' 을 만들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음악과 만나는 것이지, 사람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청중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나는 실제로는 나 자신을 위해서 연주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기술의 발전(예를 들자면 '매체 저장기술'이나 '매스 미디어'의 도입같은) 불러온 예술사회학적 변화에 대한 그의 신념을 말한다.

" 음악이란 개인적 형태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음악이 집단요법으로서, 또 그것과는 다른 어떤 공동체험으로 이용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그리고 연주자까지도- 명상 상태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주위에 앉은 2999명의 사람과 함께 이런 상샅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글렌 굴드는 결코 피아니스트로만 머물 수 없는 인간이었다. 대개의 위대한 연주자들은 '악기의 사제'가 된다. 면벽수도하는 심성이 있지 않으면 거장이 되기 힘들다고도 한다.(물론 간혹 날라리 천재들도 나온다.) 글렌 굴드 역시 이런 수도회 소속이다. 하지만 그는 매일 매일 예배하고 묵상하는 전형적인 수도승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그는 레코딩 전에 48시간 동안 피아노를 손에 대지도 않는다고 한다. 또 피아노에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더 좋은 음악을 하게 된다고까지 말한다. 그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주인공 윌리엄처럼 이것 저것 들쑤시고 다녀야하는 수도승이다. 글렌 굴드가 라디오 다큐멘터리나 글쓰기,작곡등에 더 깊은 관심을 갖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그렇지만 그가 가장 잘한 것은 '피아니스트'였다.)  글렌 굴드 역시 피아노에 자기를 가두어 놓기에는 몸이 근질 근질 거렸을 게다. 간혹 TV에 나와서 웃음을 주시는 임동창 선생처럼 말이다. 임동창은 자신이 뭐하는 사람인가 물으면 "그냥 임동창이오"라고 답한다고 한다. (요즘은 빡빡머리 그보다 그의 아내가 더 유명해진 듯 하다)

글렌 굴드는 피아니스트이면서 피아노적인 음악을 싫어했다. 여기서 피아니노적인 음악이란 것은 -그는 낭만주의 음악을 주로 말하는데-'화성적'인 음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굴드 스스로 이에 대칭적인 의미로 '대위법적 음악가'라고 칭했으니 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그가  피아노를 위한 작곡가다로 할만한 '쇼팽, 슈만, 리스트" 를 싫어했던 것은 논리적 귀결상 당연해 보인다. 그는 이들 음악에 별다른 매력을 못느끼고 설령 녹음을 하더라도 통념을 벗어나는 해석을 보여주었다.(그의 쇼팽은 들어 본 적도 없다.) 물론 후기 낭만주의시대에 브루크너나 말러 같은 이들이 폴리포니에 대한 가능성을 확장한다. 하지만 그 시대는 '오케스트라의 시대'였다. 그 위대한 작곡가들은 피아노를 위한 곡에 그다지 애정을 쏟지 않았다. 결국 글렌 굴드에게 피아노라는 악기는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면서도 자신이 넘어서야 하는 도구였다.  그는 평생에 걸쳐서 피아노와의 '거리 두기'를 통해서 음악을 성취해 나아갔다. '피아노 음악' 을 포기하는 댓가로 '음악'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그도 좋아하는 작곡가들이 있다. '바흐-베토벤-리하르트 슈트라우스-쇤베르크' 등이다. 그에게 쇤베르크는 현대판 바흐였을 따름이고 20세기의 베토벤같은 경계인이었다. 현대음악에 대한 그의 견해는 읽어 둘 만하다.( 단 내가 쇤베르크나 베베른에서 머뭇거리고 있기 때문에 책 후반부에 나오는 글렌 굴드의 현대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제대로 이해했나 의심은 간다.)

글렌 굴드는 '경계선'에 서 있는 인간이었으며 그런 사람들을 좋아했다.

"나는 항상 '세기말적'인 사람에게, 한 시대의 마지막에 있으면서 그 작품 속에서 언뜻 대립된 두가지 경향을 화해시키는데 성공한 사람에게 생생한 애정을 품어 왔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테크닉적으로 가장 큰 애정을 품는 사람은 바흐지만 정신적으로는 올랜드 기번스' 라고 말한다. (글렌 굴드의 기번스/버드 음반은 아주 좋다.) 이는 자신의 '자아 이상'을 말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역시 세기말 속에 살았던 음악가였다. 또한 하나의 이름에 머물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시대와의 소통'을 위해 '시대와의 단절' 을 자청하는 형용모순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그는 '지성'과 '순수'라는 양발 엔진을 부착하고 차가운 겨울 하늘 나는 조종사와도 같았다. 아무도 선뜻 가보지 않았던 그 코발트 빛 고독 속에서 그는 신의 얼굴을 보고 있었을까?  

글렌 굴드, 그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다.

그는 살아서 음악가였으며 이제는 전설이 되어간다. 

첨언)) <나는 결코 괴짜가 아니다>는 2부로 구성된 인터뷰집이다. 앞의 인터뷰는 실제 인터뷰 모음이고 2부는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편집된 실제 인터뷰이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들은 글렌 굴드의 전기나 그를 다루는 글에서 몇 번 언급된 것들이다. 전기작가들도 결국 그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를 구성한 셈이었을테니까. 번역자는 음악전공자이다. 그러므로 글렌 굴드가 말하는 음악 이야기와 미학적인 부분에 대한 선이해는 어느 정도 믿어도 좋을 것 같다. 문제는 그의 국어이다. 좋은 번역은 기본적으로 외국어에 대한 이해와 충분한 국어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만 갖추면 TRAS..라는 단어의 양방향적인 어원이 무색해지지 않는가? 원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고, 인터뷰 특성상 회화체로 중언부언 했을 가능성도 있다. 말이란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잠깐씩 첨삭도 하고 다른 단어들을 끼워넣기도 하고... 하지만 번역하지 않은 단어들도 있고( 예를 들어 굴드의 '퍼스펙티브'..한 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퍼스펙티브'라면 최대근사치의 단어를 찾아야 한다.) 또 국문법에 어색한 문장들도 간혹 읽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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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11-14 14:21   좋아요 0 | URL
굴드에 관한 오스왈트(Ostwald)의 평전을 읽으며 그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간 너무 명성이 부풀려진 연주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요. 지금은 처음의 선입견을 많이 없애고 많은 피아니스트 가운데 독특한 존재로 그를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와 그의 연주를 좀 더 균형 있게 바라보기 위해 이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군요.(여전히 그가 남긴 말들 가운데 몇몇은 전혀 수긍할 수 없지만요.)

드팀전 2008-11-14 18:00   좋아요 0 | URL
그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이 않을겝니다.굴드리언들을 빼놓고는요. 말씀 하신 대로 '독특한'피아니스트였지요. 그 독특함이 튀기위함이 아닌 음악과 사회와의 관계 내지는 미학에 대한 깊은 자기 사유에서 나왔고 또한 보편성을 얻을 수 있었다는데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굴드적인 미학관이 여전히 소수적인 가치로 평가받는 것은 여전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