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더 힘들다.

토요일 오전에는 아이와 함께 '아파트 놀이터 투어 프로젝트 3탄'을 시행했다. 와이프 맛사지 보내주고 예찬이와 3-4시간 놀아야 되는데 '놀이터'만큼 좋은 곳이 없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마다 놀이터 모양이 조금 다르다. 그래서 아이는 새로운 놀이터에 가면 정말 정신없이 신나게 논다. 그래서 시작된게 '놀이터 투어 프로젝트'. 이번 주에는 강 건너 있는 주공아파트 놀이터에 갔다. 우리동네 놀이터에 비해 더 어린 아이들을 위해 설계되어 있어서 예찬이 한테 딱이었다. 아파트 단지에 크고 작은 6군데의 놀이터를 다 돌아 다녔다.

토요일 오후에는 '예찬이의 촛불집회 3번째' 참가가 있었다. 나는 평일에도 틈틈히 나갔지만 와이프와 예찬이는 주말 집회만 참가한다. 물론 내가 혼자 가든 가족과 함께 가든 아주 늦은 시간까지 있을 수는 없다. 집회 가서 유모차 대기 좋은 곳을 찾다보니 전교조와 공공노조 언저리에 앉았다. 예찬이가 징징 거려서 안고 다니다가 몇 몇 아는 분들을 만났다. 지역 시민단체에 계신 분들과 눈인사를 했고..또 모유수유와 자연분만 모임의 시샵분도 만났다. 최근에 몇 달 전에 아이를 낳았는데 큰 애는 엄마가, 간난 아이는 아빠가 안고 왔다.

예찬이와 집회를 갈때 내 가방은 소풍가방이 된다. 각종 먹을 거리를 다 담아간다. 예찬이는 집회 중에 유모차에 앉아서 저녁 만찬을 했다. 전교조 쪽 분지 함께 나온 가족들인지 한 분이 떡을 주어서 또 예찬이의 저녁상이 풍족해졌다.

행진의 방향이 범내골 쪽이어서 함께 걷다가 중간에 빠져나왔다. 차를 그 쪽 어느 골목에 대놓아서 좀 더 걷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집회의 참가자는 아무리 '좋은 의지'로 무장해서 뻥을 쳐도 지난 6월 10일의 3분의 2수준이었다. 앞으로도 촛불은 계속 모일 것 같고...당장 쇠고기가 끝나도 5년 내내 이럴 것 같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100만이 아니라 200만도 모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모이면 뭐할 것인가? 구호 외치고 노래 부르고...걷고...해산하고...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니다. 문화정치적으로 분명히 의미있는 일이다. 이렇게 사람들의 생각은 빠뀌어가고 함께 하는 의미를 깨우칠 것이다. 그런데...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말'이던가.

가끔 '직접 참여'가.. '말'의 영역인지 '행동'의 영역 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대부분 열성적인 진보적 다수는 '참여'가 거리에 나아가는 시간을 내고, 목소리를 높이고, 액션을 하기 때문에 '행동'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또 조금 달리 생각해보면 이것은 혹시 '말'의 영역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좀 유식하게 말하자면 '정치,사회적' 인것이 아니라 '문화적' 인 것 아닌가 하는 말이다. 물론 애초부터 '촛불은 문화정치다' 라고 생각했다면 별로 이상할게 없이 그 수순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시민들의 참여와 거대한 물결이 '정치,사회의 제도적' 변화를 이루어 내야만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고 -다수의 진보인사들과 생각이 다른- 무모한 생각을 했다. 우습게도 말이다.

지젝이 왜 촘스키나 하워드 진의 활동들을 긍정하면서도 그들을 비판했는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알라딘에서는 촘스키와 진을 비판한다는 것은 아마 '반진보적' 인사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좀 알아야 할 듯 하다. 지젝이 말하는 '유사 능동성' 만을 진보라고 '착각하는' 다수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절대적 진리를 상정하지는 않고 싶다. 대신 내가 하는 것들이 '유사 능동성' 의 영역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게 그렇게 해가 될까?  

100만,200만 또 모일 수 도 있다. 그런데 질문은 100년에 가까와가는 질문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일요일은 더 힘들었다.

아침 일찍 부터 금정산 산성 마을에 있는 '빅뱅 어린이 체험도서관'에 갔다 왔다. 뭐 그렇게 대단한 곳은 아니었지만 사람도 별로 없었고 그 모든 놀이 기구를 예찬이가 독점해서 가지고 노니 아이 보는 입장에서는 편안했다. 산성 마을에서 비빔밥을 먹고....예찬이의 의젓한 숟가락질은 또 주변 어른들에게 또 한번 칭찬의 대상이었다. 아이와 함께 풀밭에 누워서 잤다. 가져간 큰 수건을 이불 삼아 덮어주고 나는 하늘을 배경삼아 누워서 책을 좀 봤다.

아이가 깨어 나서는 사직동에 갔다. 이미 야구가 시작되어서 시끌시끌했다. 아내는 자전거를 빌리고 나는 전기자동차를 빌려서 아이를 앞에 앉히고 탔다. 바람을 맞아 일렁이는 아이의 머리결이 보기 좋았다. 예찬이는 신나서 '와..신난다.' '와...좋아..이쪽 ..이쪽 ' 을 연신 외쳤다. 아이의 웃음소리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고 아내도 즐거워 했다.

하루 종일 정말 빡빡하게 놀고 집에 와서 샤워를 했다. 그리고 수고한 나를 위해 내가 준비한 '삿포로'생맥주 한 캔을 마셨다. ㄱ

..그리고...예찬이보다 먼저 자버렸다.

"예찬아...엄마랑 책읽어. 아빠는 오늘 안방에서 먼저 잘래'

쿨쿨...zzz

새벽에 수영가기 전까지-수영 배우기 시작한지 4개월째다-단 한번도 깨지 않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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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ournelle 2008-07-08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안녕하세요. 드팀전님 블로그엔 처음으로 글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드팀전님은 맑스주의 진영내에서 자신의 성향이 다중적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래도 맑스-레닌주의 혹은 트로츠키주의?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친구분이신 바람구두님 블로그에 남긴 아래의 글은 아무래도 <자율주의>에 오해가 조금 있으신 것 같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자율주의는 결코 자유주의자들이 아닙니다. 전 가두시만 열 다섯 번 이상 참가했습니다.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들의 주장에 많은 부분 동조 못하고요. 아무래도 아래의 <다중론자>는 저를 두고 하신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어떤 자율주의자가 되었더라도 드팀전님께 그런 힐난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교수가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사회론자 입니다. 그렇지만 전 이번 촛불 문화제를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에 묶어두는 주장들을 혐오합니다. 단적으로 전 촛불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을 <시민>이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도 혐오합니다. 이런 맥락들을 좀 알아주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님께서 비판하시는 노동운동 혐오자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실제 집회에서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님께서 비판하시는 사람이 자율주의자들이나 저는 아니겠지요? 물론 알라딘에서 전 피토하면서 이명박을 욕했지만 노동운동의 맥락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바라보시는 분들에 대해서 그런 힐난을 한 적이 없고요. 물론 맑스주의자들 중 이번 사건에 참여한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율주의나 대중 혹은 다중의 자발적 역량은 이번 사건을 이만큼이나 끌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조직화 혹은 관리하는 방식,대표하는 방식들로 나아갔을 때 발생하는 한계도 분명히 있습니다. 문제는 맑스주의자들 이론적 입장에서 누가 옳다, 그르다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걸 주장하는 맑스주의자들 중에서 단지 사태를 해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태의 실천적 주체로 참여하려 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전 이 부분에 대해선 해석자가 아니라 실천적 주체로 참여하려 했던 사람 중 한 명 입니다. 물론 전 자유주의자도 아니고, 시민사회론자도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볼 때 드팀전님과 제 사이엔 맑스주의의 이론적 스펙트럼(전 그런면에서 볼 때 지젝의 입장이나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입장에 어느정도 귀를 기울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어느정도 입니다)의 차이뿐만 아니라, 세대차이도 분명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촛불이 다 끝나기 전에 이에 대해서 논의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다만 아래 글의 표현은 지나친 오해가 있는 듯 싶어 몇자 적어봤습니다. 그 오해의 당사자가 제가 아니었음 하는 바람이고요. 혹시 촛불 문화제나 가두시위에 나가게 되시면 경찰의 폭력에 몸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계속되는 가두시위 참여에 "나도 죽을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저도 "과격한 폭력 시위꾼이 될 수 있구나."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문제는 '자유주의적 시민운동' 이외에 다른 대안으로 운동하는 것들에 대해 비판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참가자들 내부에서 등장했던 말들이 '좌빨'이니 '프락치'니 하는 것이겠지. 나는 '다함께'에 개입되어있지도 무슨 편향이 있지도 않지만 그들은 오랫동안 '노동운동'과 '진보적 문제'에 그들의 사상을 가지고 행동해왔어. 그런데 그들이 거리에서 왜 '순수한 시민'들이나 '다중론자'들에게 '좌빨'로 몰려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더라. "물론 실제로 '프락치'가 있었겠지만 그런 단어들이 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운동방식과 한계 이외에는 도통 관심없는 '무연대성'의 대표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해.

내 경험으로 보자면, 집회에 민주노총 대오가 합류햇을때 박수를 보내면서도 '제 들은 또 뭐야'라는 식의 반응, 노동계는 순수한 시민들의 대오에 숟가락 하나 얹어 이득을 챙기려하는 구나하는 반응을 많이 봤어. 그리고 알라딘에 피토하며 이명박을 씹는 분들 내에서도 말이지.

드팀전 2008-07-18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화과나무님께 비밀댓글로 답을 올렸던 글인데...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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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댓글 잘받았습니다.

제가 트로츠키주의자라는 말은 저도 처음 들었습니다. 물론 대학 들어가서 저를 감짝놀라게 했던 '맑스'를 근본적 토대에 두고 있긴 합니다만 말입니다.요즘 맑스아닌게 어디있나 싶지요^^ 희안하게도 제가 대학 들어가서 학부에서 배운 맑스는 트로츠키나 레닌이 아니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 앞과 뒤였습니다.그람시도 전 프랑크프루트의 일환으로 배웠던 것이지요.또 제겐 상당히 문화정치적 요소가 강합니다. 제가 공부를 계속했다면-한때 유학갈 생각에 외국대학 사이트도 알아본적 있지만-전 예술사회학이나 문화연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모두 좌절..ㅜㅜ

문제는 제 스스로 그런 문화주의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해서도 고민했다는 겁니다. 만약 제가 트로츠키주의자나 맑스-레닌주의자로 비췄다면 그 스펙트럼안에서 상호 보완적인 요소들 또는 각각이 갖고 있는 한계들에 대한 문제의식때문이었다고 봅니다... 제가 학교다니며 가장 답답스럽게 생각한 '유아적 운동권' 선배들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너 팝송들어..야 미제국주의의 음악인데'..제가 이런 논의에 질색했다는 것을 말씀드리지요.

전 개인적으로 인간 트로츠키의 험난한 개인사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트로츠키주의자는 아닙니다. 다른 말로 하면 트로츠키주의자들에게 저는 그들의 완고한 경제주의와 노동자 중심성에 대해 비판할 수 있습니다. 물론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맑스의 원전을 이야기하며서 그건 왜곡이라고 말하겠지만 말이지요. 부연하면 전 노동자 중심성에 대해 인정하지 않습니다.그렇다면 이건 완전히 트로츠키주의에서는 이 지점이 결절점 아닐까요..

그런데 왜 제가 노조 문제를 이야기하고 노동운동가처럼 비춰지느냐? 그건 첫번째, 노동자들이 고립되어 노동자/시민이 다른 존재라고 여기지는 것이 하나가 있겠지요. 노동자하면 붉은띠 두르고 검게 탄 피부를 자랑하는 마초들이고 시민들은 그렇지 않은 존재.그런데 전 사무직 노동자로서 그렇게 피부가 타지도 않았고 마초도 아닙니다. 전 노동자/시민이 왔다갔다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명태의 이름이 여럿이듯 말이지요.제가 회사에 나오면 전 노동자지만 주말에 놀이동산에 가면 전 시민이 됩니다. 이것을 노동자 대 시민 구조로 나누어 이해하는 방식-학계에서도 이런 방식이 일상적입니다-은 제 개인적 가치로는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두번째는 알라딘에서 만날 수 있는 가정주부나 독립사업자들과 달리 저는 저희 작업장은 산별노조에 속해있습니다. 무화과나무님은 아무런 소속이 없는 지식 노동자이기에 훨씬 더 알라딘의 대부분의 입장과 같을 수 있습니다. 전 알라딘에서 신문광고하는데 돈을 내지 않는데 제가 보기에 그 액수는 자신의 이름을 얹고 자기의 의지를 알리는 것 외에 별다른 짓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아프락사스나 승주나무님의 활동에 박수를 보냈는데..그것은 단순히 소속없는 알라디너들에게 비빌수 있는 언덕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지요.그렇지만 전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비빌 수 있는 언덕이 여러개가 있어왔습니다. 노조도 그 중 하나겠지요.그외에 다른 시민단체들 역시 말입니다. 그러니까 집회에 나가면 전 혼자갈 수도 있고 시민연합과 함께 갈 수도 있고,민주노총 깃발 아래일 수도 있고, 생태주의자들이 많은 한살림 깃발 아래일 수도 있습니다. 또 진보신당의 깃발 아래일 수도 있습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제가 이 모든 조직들에 조직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회비를 내고 있기때문입니다.

제가 '다중'을 비판한 것은 -전 '제국'과 그 논쟁을 조금 읽어본 처지지만- '다중'의 구성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 유럽처럼 비물질노동자가 얼마나 될까도 궁금하지만-그거야 일종의 경향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비물질노동/물질노동을 구분하면서 생기는 '노동자'라는 개념의 약화문제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다중'의 성격이 아니라 그 성격이 가지고 있는 예측되는 결과의 한계라는 문제입니다. 결국 '문화적으로 추수'할 수 밖에 없는 혁명을 과연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모든 사회운동은 결코 독자적으로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자립적이지만 서로 연대하는 정치세력이 필요하지요. 또한 사회운동의 동력을 끌어가기 위해서 조직은 필요합니다. 왜냐하며 사회운동은 안팎에서 와해와 붕괴공작을 받기때문입니다.그리고 사회운동은 태동,성장,와해의 과정을 거치고 그 끝에서 그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조직이나 정당의 형태로 제도화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양날의 칼입니다. 조직을 이끌고 동원을 하고 제도를 바꿀수 있지만 또 그 조직으로 인해 운동이 붕괴되고 반동을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양날의 칼중 어느 하나만 집어서 '무중심'과 '탈조직'을 주장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도 또한 현재적이지도 못하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현실정치적 요소들을 탈각시키면 '이상적인 운동 과정'이 눈 앞에 목도된다는 즐거움은 큽니다. 자신들의 이론과 예견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 만큼 큰 쾌감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런 모든 것이 현실의 구차한 정치 영역속에서 어떻게 해소되고 어떻게 치고 나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되는 것이 제 위치입니다.

무화과나무님을 지적해서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무화과나무님 역시 '다중'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알고 계실텐데요. 전 그것을 대입시켜보는 것이고 무화과나무님은 그냥 사소한 문제점으로 받아들이시는 것의 차이입니다.

물론 세대적 차이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희 둘의 사회환경이 좌우하는 의식의 흐름부분도 있을겝니다. 무화과나무님은 이론을 생산하는 영역에 계시고 전 이론과 대중사이의 궤를 매꾸는 영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나무님이 상아탑에만 있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열심히 현장에 나가셨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그것은 상아탑이 그만큼 고립되어 있다는 저간의 시각에 반증이지요.또한 무화과나무님은 그에 대한 공명이었을테구요...이론과 실천을 결합하는 개인적 차원과 함께.

네그리의 '제국'을 저는 아주 즐겁게 보았습니다. 답답하던 때에 맥을 뚫어주는 시원함이 있었지요. 그리고 무화과나무님이 이미 올리셨던 '다중'도 제 책장에 있습니다. 곧 보겠지요.
그런데 전 어떤 사상에도 조금씩은 비판적이고 자가수용적입니다.
그게 저같은 메노키오들이 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절 규정하면 '범좌파' 라는 말과 '통합파'라는 말 밖에 마땅한게 없습니다.
결국 전 진보신당으로 갔지만 분열단계에서는 그래도 분열시키니 말자는 '통합파'였다는..심상정을 좋아하지만 그 때 심상정의 판단은 여전히 회의적이라는...

전 혁명의 유토피아를 믿지 않지만 이 말들은 기억합니다.
'민중이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혁명적인 이론이 아니다.혁명을 하고도 여전히 민중이 가난하고 불행하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 학자이신 무화과나무님이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잠수탓는데..글을 더 많이쓰는 이런 모순된..아 그리고 전 왠만해선 시위대 전위로 안나갑니다. 애아빠가 다치면 애는 누가보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