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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현상으로서 폭력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점은 폭력이 복수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폭력에는 그 정도가 다른 다양한 행위들이 존재하며,이는 폭력도 저마다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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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의 지배적인 이념들은 폭력에 대한 이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데,이는 '폭력-물리적 힘(악하고 후진적인)과 '비폭력-도덕적인 힘(선하고 진보의 후예인)을 너무나 비현실적인 이분법으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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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화된 거대한 힘의 행사에서 폭력이 계속되고 있을 때, 그에 맞서는 사적인 폭력은 그다지 맣은 것을 성취하지 못하며 또한 그럴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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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폭력은 원칙적으로 나쁘다고 믿는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유형의 폭력을 체계적으로 구분하지 않으며,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과 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모두에게 미치는 결과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은 이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적 관점에세건 혁명적 관점에서건 모든 폭력은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양산하게 될 뿐이다. 말하자면 폭력의 효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폭력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심리적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들 말이다.
우리는 원론적인 차원에서 모든 폭력이 비폭력보다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은 통제를 벗어난 폭력이다.
..... 에릭 홉스봄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 중에서
..인용한 것은 다섯 문단이다. "폭력론 옹호하자는 건가? 아님 비폭력을 옹호하자는건가?" 홉스봄은 그렇게 묻는 당신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거다.
현재 정세, 촛불의 진행 과정과 정황을 -비참하지만 냉정하게 볼 때 -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전환 방식은 이 시점에서 단기적,전술적으로 적절하다. 모든 폭력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충분한 충전과 단기간에 가장 효과적이고 최대의 효율을 끌어올린 상황에서 분출되어야만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특히 1)상대가 운동의 힘에 대해 상황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거나 적절히 대처할 수 없을 때 2) 최대의 응집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일단 필요충분 조건에 해당하는 시기를 한 차례 흘려 보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 보인다.
'비폭력'은 이명박을 곤혹스럽게 하겠지만 적극 대응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무관심의 방식 즉,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시민'과 '기타 '를 분절 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비폭력' 간판을 단 소란스러운 이웃이 내 집 사과 열매를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남은 기간 동거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