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프님께 어느분이 다신 댓글을 보다가...마침 ...생각났습니다.하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그는 '허구의 장'이라는 비판도 받습니다.'구성의 문제'를 건드리면 그렇습니다.이건 그 직접적 이야기는 아니고 추론해 보게하지요..근데 몇 살 된거유 ??
자유주의적 합리주의는 자신의 언명조건들을 지워버리고 그 역사적인 기입공간을 부인하는 식의 전형적인 움직임을 보인다.이는 라인하르트 코젤렉이 보여주었던바,이미 계몽적 '위선'의 구성요소였던 것이다.많은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정치적 태도를 전제하고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어떤 공평한 위치에서 말하는 것인 듯 가장하면서 선례를 따른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견해를 '합리성'의 구현으로 제시하며,이를 통해 자신의 대립자들을 '합리적 대화'에서 배제할 수 있다.하지만 배제된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으며,이들의 입장을 '합당하지 않다'고 선언해 버리면,중립성의 문제는 해결 불가능한 채로 남는다.배제된 사람들의 입장에서 합리적 대화의 '중립적'원칙들은 확실히 중립적이 아니다.자유주의자들이 '합리성'으로 선언한 것을 배제된 사람들은 강제로 경험한다.
권력이나 힘을 넘어서는 일련의 규범들을 확립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강력하고 힘 있는 개념적 실천인데,그것은 규범적 보편성이라는 수사에 호소함으로써 그것의 고유한 권력 유희를 승화하고 변장하고 확대한다는 의미에서이다. (주디스 버틀러 재인용)
나는 배제 형식들을 합리성의 베일로 감추는 대신,국가나 정치적 질서가 존재하는 근거인 이 배제 형식들과 그 배제 형식들이 의미하는 폭력성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논증하려는 것이다.하나의 자유민주주의의 질서에 요구되는 배제의 필연적인 '경계들' 및 방식들의 실제적 본성을 '합리성'이라는 가정된 중립적 성격으로 숨기는 것은, 민주주의 정치의 고유한 작업을 방해하는 엄폐 효과를 창출한다.윌리엄 코널리는 "중립성이라는 구실은 공적 담론의 문턱 아래에 있는 기성 타협들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라고 올바르게 지적했다.
....<정치적인 것의 귀환(상탈 무페> 중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