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 한 젊은 역사가의 사색 노트
이영남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어렸을 때는 모두 가루약을 먹는다.칼칼한 분말을 입 안에 털어넣가 쉽지 않다.때로는 씁쓸한 가루 한 줌이 입 천장에 붙어서 목구멍을 화공약품 처리장 처럼 만든다.어른이 되니 달라진 점이 약 봉투에서 가루약이 사라졌다는 것이다.언제부터인가 알약을 꼴깍 꼴깍 잘도 넘기게 되었다.약 먹는게 그나마 쉬워졌다.

역사학자 이영남이 쓴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는 당의정을 씌운 푸코 개론서이다.이 책은 '푸코'에 대해 언제나 알고 싶었지만 차마 '푸코'에 대해 물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이라면 환영할 만한 책이다.저자는 개인적 공부와 집단 학습을 통해서 자체적으로 소화한 푸코를 비교적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다.먼저 번역투의 문장을 앞뒤 읽어가면서 맞추어 보지 않아서 좋다.전문적인 푸코 연구자들처럼 철학적 용어들의 남발 속에서 퍼즐 맞추듯 읽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좋다.그런 의미에서 '푸코'의 '푸'자에 대해 관심만 있었던 사람에게는 엔돌핀을 돋게 할 책인 것 만은 사실이다.

책 제목을 잘 살펴보자.책 표지의 디자인에 제법 이중적이다.보시다시피 책 제목은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이다.색깔로 구분해서 보면 앞과 뒤는 흰 글자이고 <...역사의 문법을..>은 검은 글자이다.따로 따로 떼어 보면 제목이 두 개 처럼 보인다.흰 글자 부붐만 보면 <푸코에게 배우다>.주어와 서술어만 갖는 제목이다.책 제목의 디자인에서 사실 이 책의 기회과 구성이 들어있다.재미있게 그러면서도 효과적으로 잘 뽑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제목처럼 <푸코에게... 배우다>와 <...역사의 문법을...>이라는 2막으로 구성되어 있다.(실제로 책이 그렇게 1,2부로 나누어져 있다는 말은 아니다.) 저자는 푸코의 삶의 궤적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일종의 평전 하이라이트라고 보면 된다.디디에 에리봉의 저작 <미셀 푸코>가 중심적인 롤을 맡고 있다.또한 푸코의 콜레드 주 프랑스 강의와 미국에서의 인터뷰 내용들이 푸코라는 인물에 대한 조감도를 그리게 해준다.디디에 에리봉의 <미셀 푸코>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1분 30초짜리 극장판 예고를 보는 느낌을 줄 것이다.저자는 푸코의 삶을 따라가면서 개인적 삶의 역사가 어떻게 그의 작품과 관련이 있는지를 쫓는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푸코는 '소수자들의 아더왕'이었다.푸코 자신이 총명함에도 불구하고 모난 성격으로 어렸을 때부터 광인 취급을 받아왔다.또한 청년기부터 그는 은밀하게 욕망할 수 밖에 없는 동성연애자였다.사회에서 이런 개인적 포지션이 <광기의 역사>라든가 <감시와 처벌>,<성의 역사>같은 저작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당연히 저자가 강조하고 감탄하는 것은 개인의 특수성을 내면 속의 분노나 분출로 끝내지 않고 사회적 보편성으로 확장해낸 푸코의 역량이다.저자는 푸코의 삶에 영향을 준 사건으로 앞의 두가지 외에도 정신병원에서의 근무,스웨덴 웁살라와 튀니스로의 외유,68혁명 등을 언급하고 있다.

저자가 푸코의 평전 압축에 할당된 종이를 모두 소진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푸코를 이해하기 위해,또는 푸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호구조사' 부터 시작해준 것쯤으로 이해하면 된다.저자는 '침묵하는 역사'를 부활 시켜 '현재를 낯설게 보게 반든' , '현재의 역사가' 푸코에게 시선을 모은다.그래서 주로 언급되는 책이-푸코 저작 중 가장 많이 읽히고 또 쉽게 읽히는 -<광기의 역사>,<감시와 처벌>이다.역사-철학자로서 푸코를 상정하기에 이 두 책만큼 용이한 것도 없을 법하다.푸코가 이 두 책에서 말하고자 한 바를 따로 정리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푸코는 '계몽주의'와 '근대성' 이란 것에 시비를 좀 걸었다.그는 근대의 합리적 세계가 어떻게 배제를 통해 구축되었는지를 설명한다.푸코가 관심을 갖게 된것은 '권력-지식-담론' 이란 것들이 어떻게 신체에 작동하여 규율을 만들어내는지에 있었다.결과적으로 말하면 '권력은 모든 곳에 내재한다'는 것이었다.또한 마르크스식의 거대담론으로서의 권력이 아니라 세계의 곳곳에 나름의 정부를 세운 미시권력들이 다층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상정했다.그래서 푸코의 저항은 그런 미시적 지점에서 가능성을 본 것이다.그의 감옥정보모음GIP에서 활약과 실천적 지성인으로서의 모습은 이런 도상에서 이해되고 있다.

저자는 역사학자답게 2막으로 넘어가면서 역사가로서의 푸코를 이야기한다.<...역사의 문법을..>의 차원이다.저자는 푸코가 추구한 연구의 엄밀성과 열정을 상찬하고 실증주의적 접근에 큰 박수를 보낸다.또한 정치적 사유를 통해 임상 역사가로서 전문 역사가들에게 거대한 자극이 된 푸코의 업적을 칭찬하다.푸코의 사유를 동원하여 한국의 역사를 빗대어 보는 장도 따로 마련한다.저자는 박정희 정권의 근대적 '효율 우선주의' 프로젝트가 사회적으로 민주주의적 가치를-정치적 민주화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부정하고 진화해 나갔다고 지적한다.우리 사회에 그동안 저류에 깔려있다가 이제 표면에 극적으로 등장할 '기업사회'가 대표적인 예가 될 터이다.이제는 더이상 숨어서 말할 필요가 없고,머뭇 거리거나,두려워 할 필요없이,극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효율성'과 '경쟁력'의 시대 말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 가서 우리의 역사학과 역사 인식이 참고해야할 방향으로 미시사를 예로 들고 있다.저자가 부정하고 있지만 얼필 보면 푸코의 역사철학을 미시사로 끌고 오기 위해 앞에서 길게 푸코를 인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법도 하다.(저자는 분명히 푸코가 미시사가는 아니라고 말했다.) 미시사를 통해 거대담론 속에 사라진 개인들을 복원하는 것.그리고 이를 통해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을 네트워킹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문역사가 뿐망이 아니라 누구나 해봄직한 이런 미시사류의 임상 역사가가 되기 위해 인문학적 자기 수양을 강조하고 있다.(저자는 미시사와 인문학적 소양의 강조를 위해 지금 서재 왼쪽 상단에 있는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을 예로 들고 있다.마침 이 책을 작년에 감명깊게 읽었으니 이런 재수가...)

물론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운다>에도 기획의 특성상 약점이 없을 수는 없다.역사학자가 감동한 푸코가 되다 보니 푸코를 역사학으로 소급시켜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저자는 푸코의 책들이 도서관에서 사회과학코너에 어떤 것은 철학 코너에 어떤 것은 역사 코너에 있다고 말했다.그만큼 푸코는 멀티 플레이어다.물론 역사가의 입장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긴 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FA 시장에 나온 푸코라는 선수를 '그는우리 쪽 사람이야'라고 외치는 섭외 에이전트의 인상이 든다.(물론 개인적 편견임을 밝힌다.내 거의 모든 글이 다 그렇듯이) 이정우 교수가 푸코가 사회과학자로 환원된 것에 대해 비판했듯이 또한 이 글 역시 역사학자로 환원되는 푸코라는 지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가 다루고 있는 푸코의 저작이란 것이 <광기의 역사>,<감시와 처벌>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도 지적할 만하다.물론 간간히 <지식의 고고학>,<성의 역사2,3>,<말과 사물> 등이 등장한다.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앞의 저작에 비해 확실히 빈약하다.푸코의 중기 사상에 해당한다는 권력과 지식의 문제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푸코 용비어천가'에서 '푸코 비판'을 요구하기란 사실 어려울 수 있다.하지만 독자들을 위해 푸코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짧게 나마 언급하면서 넘어갔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욕심 아닌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예를 들어 헤이든 화이트나 폴 베느 그리고 저자가 역사학자로서 그렇게 칭찬한 푸코의 역사적 사료 분석에 대해 엉터리라고 반대하는 학자들도 많았다.<임상의학의 역사>에 대해서는 정신분학학자들이 푸코의 지엽적인 자료 채택에 대해 비판 했다.그외에도<광기의 역사><감시와 처벌>등에서 푸코의 역사적 증거가 지나치게 선별적이고 왜곡적이고 또한 포괄적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았다.<푸코>의 저자 메르키오르는 상당히 삐딱한 시선으로 '푸코 역사의 객관성은 역사의 여신 클리오에게 일급의 칭찬을 퍼부었던 세기에 이루어졌던 일급의 역사 연구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라고 악담을 퍼붓는다.또한 저자가 푸코 사상의 특징으로 말하는 '불연속성' 즉 에페스테메의 단절에 대해서도 그 만큼의 비판이 존재한다.심지어 푸코 자신도 후기에 오면서 '불연속성'에 대해 어떤 보완적 태도를 취했다고 알고 있다.장 피아제는 푸코의 사상을 '근대성에 대한 객관적이고 타당한 혐오라기 보다는 그저 근대성에 대한 막연한 혐오'라고 평가했다. 이와 연계하여 유명한 푸코와 하버마스의 논쟁 처럼 푸코의 '반계몽주의','반이성주의'와 그것이 갖는 철학적 문제의식 등에 대해서도 저자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그저 '역사적 실증에 바탕을 둔 근대성의 반성'으로서만 푸코를 말하고 만다.

한 가지 기획에서 푸코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한다.존중해줘야 할것은기획 의도다..이러 저런 이유로 사실 나는 이 책에 별 셋을 주고 싶었다.그렇지만 푸코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이 책을 볼 필요도 볼 일도 없다는데 생각이 머물렀다.대신 있어 보이는 레스토랑 앞에서 머뭇거린 경험이 있는 -나를 비롯한-사람들을 떠올렸다.

 '푸코' 식당이 있다.정통 프랑스식 레스토랑이라고 한다.인테리어도 그럴싸하고 값도 비싸보인다.레스토랑의 협력업체 또는 경쟁업체로는 '바슐라르', '캉길렘','레비 스트로스','데리다','들뢰즈','하머마스' 등 그럴싸 해보이는 식당들이 있다고 한다.메뉴도 대충 어딘가에서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다.그렇지만 또 낯선 요리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식당에 들어가보고 환상적인 맛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또 어떤 사람들은 먹기 너무 힘들다고,입맛에 안든다고 다신 안가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는 지나가면서 '푸코' 간판만 보고 '언제 한번 맛이나 볼까 '하는 사람에게 좋은 책이다.별로 비싸지도 않다.주방장이 대충 한국 입맛에 맞게 만들었다.가격은?.. 실제 프랑스 요리값이야 비싸겠지만 책으로 만나는 푸코야 '그래 봤자'  종이 값이다.이제 이 리뷰도 끝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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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1-21 15:32   좋아요 0 | URL
근사한 제목에 걸맞는 근사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