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
바스코 포파 지음, 오민석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늑대가 심장을 한 웅큼 물어 뜯었다.황금빛 누런 이빨 사이로 너덜 너덜해진 심장의 살점이 보인다.더러운 입 주변으로 선홍빛 붉은 피가 그대로다.

후텁지근한 야생동물의 콧김. 100년 동안 닫혀있던 창고의 쾌쾌함을 일시에 쫓는다...번뜩인다.그 야생 동물의 회색 빛 털이...번뜩인다... 화살촉보다 날카로운 눈빛.

우아하다....모욕당한 절름발이 늑대는....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 앞에 잠시 움찔하며 한 두걸음 뒷걸음질 친다.

1.모욕당한 절름발이 늑대여/그대의 굴로 돌어가라/가서 잠들라 /짖는 소리가 얼음으로 변하고/저주의 말이 녹슬고/횃불들이 흔한 사냥 때문에 죽을 때까지/모두가 빈손으로/자신 속으로 떨어져/절망 속에 자기 혀를 깨물 때까지.............(중략).....나는 네발로 기어 그대 앞으로 간다/그리고 그대의 은총 속에서 울부짖는다/마치 그대의 위대한 초록 시대 속으로 들어가듯이/

그리고 나는 내 오래된 절름발이 신,그대에게 기도한다/그대의 굴로 돌아가라고

번역된 시를 본다는 것은 낯선 이국 땅에서 처음 보는 문자로 된 도로 표지명을 보는 기분을 준다.시가 바닥을 구르며 울부짖는 소리가 외국시를 볼 때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시들은 그렇게 외친다. "네가 알고 있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고...그런 정서가 아니라구.." 모든 번역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시의 번역은 정말로.

요즘 같은 겨울에 어울리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의 마지막 구절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어떻게 '내리고'가 아닌 '나리고'의 미묘함을 번역할 것인가..'어디서'가 아닌 '어데서'의 그 소박함을 잡아낼 것인가...어떻게 눈 덮인 오늘 밤을 '엉엉'이 아니라 '응앙응앙' 울릴 것인가..

절대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불가능하다.바스코 포파의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을 읽고 감탄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을 쿡쿡 찌르는 것을 찾을 수 있다면 그런 연유에서이다.이 책은 영역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그것이 영어로 씌여졌던 세르비아어로 씌여졌던 둘 다 모르는 내게는 마찬가지 감정을 준다.

바스코 포파.그의 시는 친절하지 않다.초현실적인 상상력과 상징주의적 표현들이 늑대 부러진 이빨처럼 불편하다.첫번째 연작 시로 등장하는 <작은상자>다.

작은 상자는 젖니를 갖고 있다/그리고 짧은 길이와/좁은 넓이와 작은 공허/그 밖의 모든 것을 갖고 있다/작은 상자는 계속 자란다/한때 상자가 들어있던 벽장이/이제 상자 안에 들어와 있다...(중략)....이제 그 작은 상자 안에/축소된 전 세계가 있다/당신은 그것을 쉽게 주머니 안에 넣을 수도 있고/쉽게 훔칠 수도 쉽게 읽어버릴 수도 있다/

작은 상자를 조심하라...

이어지는 <작은상자의 죄수들>들 중 한 구절이다.

작은 상자를 열어라/우리는 상자의 바닥과 뚜껑과/열쇠 구멍과 열쇠에 키스한다/온 세상이 그대 안에 짓밣힌 채 누워 있다/세상은 자기 자신을 제외한/모든 것을 닮아 있다/그대의 맑은-하늘 어머니조차/이 사실을 더는 모르리.....

도대체 '작은 상자'란 무엇인가?  몇 가지 단어들이 차창 밖 사람들처럼 휙 스치고 지나간다.추천의 글에서 정현종 시인은 영국 시인 테드 휴즈의 <시란 무엇인가?>를 인용한다.그 책 앞머리에 <작은상자>를 '시'에 대한 메타포로 인용하고 있다고 한다.그렇다면 휴즈나 정현종 시인처럼 '작은 상자'는 정말 '시'의 비유이기만 할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시인들처럼 '작은 상자' 대신 '시'라는 말을 넣고 보면 그럴 듯 하게 들리는 것은 사실이다만...그런데 그것만이 아닐게다...

바스코 포파의 시선집에는 7편의 연작시가 실려있다.그 중에서 <흰조약돌>은 강한 시각적 인상을 남긴다.

그것은 머리도 팔다리도 없이/나타난다./호시탐탐 미친 맥박으로/시간의 뻔뻔스러 발걸음과 더불어/움직인다./정열적으로 모든 것을 껴안아/움켜쥔다.

달의 눈썹으로 미소 짓고 있는 하얗게 반들거리는 처녀시체.

이어지는 <조약돌의 심장>이라는 시다.앞의 시가 마지막 연에서 충격적인 수축의 강렬함을 남겼다면 이 시는 초현실주의적 영화기법을 이용한 이완과도 같다.수축과 이완이라는 다른 리듬을 갖고 있지만 서로 다른 색깔의 강렬함은 같다.이 두 시는 앞 뒷장 사이에 바로 붙어 있다.

그들은 돌의 심장을 열어보았다/심장 속에 뱀이 한마리/꿈도 없이 실타래처럼 잠들어 있었다/....(중략).....그들은 멀리서 쳐다보았다.뱀은 지평선을 돌아 제 몸을 감더니 계란처럼 지평선을 먹어버렸다.....(중략).....그들은 서로 쳐다보며 씩 웃었다/그들은 서로에게 윙크를 했다.

바스코 포파의 시선집은 낯선 경험과 낯선 시각으로 생각을 이끈다.이것은 일종의 환기다.환상을 통해 환상 너머와 대면하게 하는 방식이다.우리의 현존재 너머에 있는 그 무엇,또는 우리가 두고 온 오래된 기억 너머의 무엇이다.그것들을 환기 시키기 위해 자기증식을 넘어 자기를 포괄해버리는 작은 상자가 나온다.영원을 들여다 보는 조약돌이 등장한다.더러운 이빨을 드러내는 회색빛 늑대의 야생성도 그런 차원에서 경의의 대상이 된다.

포파의 시는 쉽지 않다.하지만 1월의 어느날 아침, 창문을 열었을 때 얼굴을 때리는 차가운 바람처럼 영혼의 통점들을 자극한다.자코메티의 조각품들과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떠올리게 하는 시들 몇 줄 적으며 끝낸다.

이제 우리 무엇을 하리/좋았어 .이제 우리는 저녁으로 골수를 먹으리/우린 점심으로 골수를 먹었지/텅 빈 느낌이 나의 내장을 괴롭히네/그러니 음악을 만들자고/우리는 음악을 좋아하잖아/개들이 오면 우린 무엇을 해야하지/개들은 뼈다귀를 좋아하잖아/우리는 개들의 목구멍에 걸려 음악을 사랑하리. ..... <태초 이후>

무슨 일인가/살이 눈 같은 살이/나에게 달라 붙는 것 같았어/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마치 골수가 내 속을 흘러 지나가는 것 같았어/뼛 속까지 시린 어떤 골수가/ 나도 모르겠어/모든 것이 다시 출발하는 것 같았어/어떤 무서운 시작과 함께

당신은 무엇인지 알까/당신이 짖을 수 있을까 ......   <달빛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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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1-18 23:38   좋아요 0 | URL
궁금증....
보통때처럼 알라딘 리뷰쓰기를 했는데...
첫 화면에는 분명 작성당시의 작은 글자로 보입니다.그런데 잠시 로딩이 끝나고 나서 완료화면 뜨면 한글문서 작업한 것처럼 12포인트 정도의 큰 글자로 보입니다.왜일까요? 예전에 한글로 작업하고 붙여넣기를 하면 그렇게 큰 포인트로 나오던데...
오늘은 그렇게 한 것도 아니거든요.
또한 해결방법은?

프레이야 2008-01-19 09:39   좋아요 0 | URL
'암스테르담'에 이어 이 책도 보관함으로 실어갑니다. 꾸벅^^
이 글자 크기가 읽기엔 좋으네요.

드팀전 2008-01-19 12:32   좋아요 0 | URL
^^...
오늘은 괜찮은데요..이상한것이 컴퓨터 세상이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