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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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의 마지막 책을 고를 때는 망설이게 된다.마치 어물전에서 놓인 고등어를 고르며 이것 저것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 처럼.올해 역시 다르지 않았다.쌓여 있는 책들 속에서 머뭇 머뭇 거리는 시간이 길어졌다.책들이 아우성이었다.마지막 구명정에 타려는 것 처럼 제 각각 자기가 승선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어이..시끄러워.' 귀를 막고 소리들을 떨쳐냈다.결국 삼 천년 가까이 묵직하게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있었을 <일리아스>를 마지막 구조자 명단에 올렸다.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득의만만하게 킬킬 거렸다.

 올 연말은 무척이나 방학이 그립다.생각해보니 흔히 고전이라고 알려진 책들을 본 것은 주로 방학 때였다.<삼국지>,<수호지>,<사기>,<플루타크 영웅전>,<그리스 로마 신화>. 내가 처음으로 <일리아드/오딧세이>를 본 것도 겨울 방학 때였다.긴 시간이 지나 천병희 교수의 두꺼운 <일리아스>를 펼쳐드니 아무런 마음의 부담이 없었던 방학 때가 사무치게 그립다.쉬는 시간 학교 휴게실에서 사먹던 야채 호빵에 대한 그리움처럼 말이다.방학이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방학 때도 결코 만만치 않다고 말한다.내게는 엄살로 보인다.'우리 것만 좋은' 게 아니라 방학은 직장인들의 영원한 로망이다.법적으로 주어진 휴가도 눈치보며 써야하는 직장인들에게는 말이다.

 그리스 서사시는 결국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이다.사실 트로이 전쟁은 신들의 전쟁에 가깝다.신들이 두는 체스판의 말들처럼 영웅들이 울다 웃다 한다.그렇다고 인간이 아무런 숭고함이나 자유의지도 없이 목줄 매단 강어지 마냥 종속된 존재들만은 아니다.그들은 때로 신을 위협하기도 하고 운명에 초연하기도 하다.초연함이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생의 모순의 인지부조화를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 아니던가.여기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요즘의 시각으로 보자면 상투적 모습이다.조금 좋게 말하자면 부여된 역할에 대한 완전성이다.물론 이들도 실수를 하고 질투와 미망에 사로잡힌다.그거야 신들도 마찬가지다.그러나 필멸의 인간임에도 영웅들은 끝까지 영웅성이라는 고고함을 잃지 않는다.

주인공 아킬레우스만 보자.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이 인간은 오만방자 천하무적이다.그리스인이든 트로이인이든 그가 최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이 인간은 아가멤논의 모욕에 완전히 삐쳐서 동족들의 죽음은 나몰라 한다.결국 불끈하고 창을 들고 일어서는 것도 파트로클로스라는 친구이자 시종의 부고를 듣고 난 다음이다. 아킬레우스의 사적 분노는 또 오바의 극치를 이루어 신들로 부터도 경계를 받는다.뛰어나지만 막무가내 같은 이 인간은 야수와 인간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철학자 김상봉 교수는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에서 이를 인간이 가진 다양성을 총체적으로 완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아킬레우스의 극단적 성향은 또 하나의 인간에 대한 전범이 되는 것이다.

 아킬레우스를 비롯해서 <일리아스>에 나오는 거의 모든 영웅들은 죽음이라는 필멸의 운명 자체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아폴론에게 속은 감이 있지만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하는 헥토르 역시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이들에게 운명은 거역할 수 없는 어떤 것이기에 그것이 예정에 따라 집행되길 기원할 뿐이다.때로는 운명의 여신은 선택지를 준다.예를 들어 아킬레우스는 운명을 선택할 수 있었다.그러나 그는 편안한 길 보다는 짧고 길이 남을 자신의 운명을 선택한다.결국 그것도 다 예정된 제 팔자일지 모른다.재미있는 것은 영웅들에게 정해져 있는 운명이라는 것이 신들 조차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데 있다.신들의 초월성을 넘는 운명이라는 것이다.그리스 서사시의 영웅들은 그 초월성 앞에서 운명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의연하게 대처한다.김상봉 교수는 정신의 힘으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함으로써 죽음을 초월하는 영원한 가치에 닿는 것이라고 설명한다.사실 대개의 모든 영웅신화들과 최근의 영웅스토리 영화들까지 이와 유사한 정서를 담고 있다. <일리아스>는 모든 그것들의 원형이 되며 수 천년 전 그리스인들이 지향했던 신과 다르지 않은 인간 정신의 고고함을 담아내고 있다.

 <일리아스>의 가장 명장면은 사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대결도 아니고 헥토르와 아이아스의 기사도 정신도 아니다.마지막에 있는 프리아모스 왕이 헥토르의 시신을 찾으러 간 장면이 첫 손에 꼽힐 만하다.

 언젠가 집에 갔을 때 아버지와 케이블 TV에서 하는 영화<트로이>를 보게 되었다.영화를 보시던 아버지가 그 장면에서 "야..저 왕이 진짜 멋있구만.."이라고 짧게 말씀하셨다.아마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영화<트로이>에서는 명배우 피터 오툴이 세상의 가장 큰 비극을 겪은 프리아모스 왕 역 맡았다.이 장면은 영화에서는 그 과정이 짧게 그려진다.그러나 <일리아스>에서는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질질 끌고 다니는 장면에서 거대한 슬픔에 울부짖는 프리아모스의 모습이 묘사된다.그의 울음과 절규가 들리는 듯 하다.책에서는 헤르메스의 도움과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 여신의 조언이 큰 역할을 한다.물론 영화<트로이>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영화 <트로이>와 <일리아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신의 존재'와 '신의 부재'의 차이이다.영화에서의 '신의 부재'를 좋게 봐준다면 -또한 일리아스를 읽는 한 독법으로도 가능한-신의 존재가 인간들에게 내재된 것으로 이야기를 풀었다는 것이다.그리스 서사시의 신은 분명히 인간성의 한 측면으로서 읽힐 수 있기때문에 무리한 해석은 아닐것이다.단지 생태와 북어의 차이 같이 영화<트로이>와 서사시<일리아스>가 차이가 있다.(북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생태의 싱싱함이 늘상 한 수 위다.)어쨋거나 트로이를 두고 양편으로 갈라서서 싸우는 신들의 모습을 만날 수 없으니 영화로서는 포기해야 했던 부분이 너무 많았을 것이다.(그런데 사실 내게 영화 <트로이>의 가장 큰 문제는 시각의 독재성 때문에 생긴 것이다.책을 읽다가 아킬레우스가 나오면 왜 금발의 브레드 피트가 떠오르고 파리스가 나오면 왜 올란도 볼룸이 들판을 뛰어다니냐 말이다.그 허튼 영상이 식탁 위를 찾아다니는 파리때처럼 잦아서 읽는 내내 힘들었다.)

프리아모스의 슬픔은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움직인다.우리는 삶의 여러 부문을 두고 갈등할 수 있으며 또한 폭력과 반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나는 '위선적인 공감' 보다는 '위악적인 갈등'이 훨씬 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자가 무난하게 묻어가는 무임승차를 도모하는 반면 후자는 요즘은 부정되기도 하지만 변증법적인 결과물들을 낳아서 세상을 움직인다.'갈등'을 한센병 환자처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또한 늘상 통합과 화해를 강조할 필요도 없다.세상에는 함께 있을 수는 있으나 섞일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이를 '관용'과 '화해'의 정신으로 억지로 묶어 놓으려는 갸륵한 마음은 때로는 진실을 허위로 덮거나 폭력이 될 수 있다.오히려 더 중요한 것이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의 공감과도 같은 신의 피조물로서의 '측은지심'이다.서로 적이 될 지언정 인간임을 망각하지 않는 야수가 아닌 '인간'의 마음 말이다.실제 있었던 이야기였는지 누가 꾸며낸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전쟁과 관련된 우화가 생각난다.

학도병으로 아들을 보낸 어머니가 있었다.어느 춥고 무서운 밤, 집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어머니가 두려워 하며 문틈으로 보니 거기에는 거지꼴을 하고 꽁꽁 얼어붙어 있는 북한군이 서있었다.그는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낙오한 소년병이었다.어머니는 그를 두려워 하지 않고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했다.그리고 다음 날 그들을 쫓아온 군인들도 돌려보냈다.며칠을 쉰 다음 그 소년병은 본대를 찾아서 북으로 올라갔다.그는 어머니에게 어떻게 자신의 아들의 적일 수도 있는 나를 살려주고 진짜 어머니처럼 잘 대접해 주었느냐고 물었다.어머니는 처음에 무섭기도 하고 내 아들을 해코지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조금 있다 그 마음을 풀게 되었다고 말했다.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이 행여 자네처럼 북쪽 어딘가에서 낙오되어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다면 내가 이렇게 자네에게 해준 것 처럼 자네의 부모나 또 아니면 그 누군가가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네를 돌봤다네...조심해서 올라가게나" 라고 말이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 아닌가? 다음 날 '적을 숨겨준 부역자' 라고 어머니를 끌고가서 고문하는 것은 무엇이될까?  (또 이렇게 이야기하면 '북한' 좋게 말한다고 하실 분이 있으니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밝힌다.) 전쟁이기때문에 반인륜적인 학살도 명령에 의해 수행하는 것이 인간인가 저항권을 주장하며 불복하는것이 인간인가? 개인의 선택과 사회적 선택이 늘 같은 과정과 결과를 낳을 수는 없다.하지만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 수 천 년 동안 수 억 만명의 마음을 움직였을 <일리아스>를 읽으며 먹고 사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도움도 되지 않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추신> 한 해 동안 여러분 감사했습니다.제 날카로움에 베이신 분들께도 사과와 감사를 드리구요.좋은 글로 저를 1센티씩 키워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또한 제가 물렁 물렁 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던 제 주변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사회적,역사적 상황들에게도 감사를 표합니다.강철이 단련되는 것은 모루 위에서라는 말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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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2-25 01:39   좋아요 0 | URL
올 한해 참 우울한 한해였던것 같네요. 특히나 그 피날레가...
하지만 절망은 희망을 위해 반드시 거칠수밖에 없는 통과의례이기도 하죠.
올 한해 정리 잘 하시고 내년에 희망을 가지며 우리 만나요.
(근데 방학이 나름 힘들다고 하는건 엄살 맞아요. ㅎㅎ 제게는 책을 그래도 맘껏 읽을 수 있고 여행도 갈 수 있고 아이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낼수도 있는 황금같은 날인걸요. 이번 겨울에는 책 말고도 공부가 좀 더 필요할 것 같아 연수도 두가지나 신청해놓았는걸요. 우리나라 불화의 이해 하고 미술상담치료법 하고... 만만치는 않지만 이렇게 뭔가 새로운 공부를 할 수 있는것도 방학이니 방학이 있어 행복한거죠. 대한민국이 이런 인간다운 생활과 인간다움의 재충전을 위한 휴가라는 개념이 생기는 날이 오기는 할까요? 대한민국 모든 노동자가 최소 일년에 한달정도의 휴가는 자유롭게 가질 수 있는 그날이 올때까지 열심히 살고 열심히 싸워야죠... )

드팀전 2007-12-25 10:53   좋아요 0 | URL
대선때문에 그렇게 우울해할 필요까지야...오래전 부터 예상했던 거 잖아요.전 최소한 최장집 교수 말처럼 그것도 민주정치 체제하에서는 나올 수 있는 카드라고 생각해요.오히려 그걸 막겟다고 무리하게 달려들다가 더 민주적 가치들을 손상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여당은 야당이 되어서 이제 견제의 정치를 잘 하시고 의석수 유지도 힘들어보이는 민노당은 절차탁마하면서 한국 정치가 돌이킬 수 없는 선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방학 잘 보내세요.

ghwngo 2008-01-30 08:43   좋아요 0 | URL
리뷰보다 추신이 더 멋있군요. 1센티의 성장 부분이요. ^^* 책 따라 처음 들어와본 블로그인데, 정말 읽을거리가 풍성해서 너무 좋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