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과 천황
카리야 테츠 지음, 슈가 사토 그림, 김원식 옮김 / 길찾기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왜 일본인들을 만나서 '천황제'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한번도 일본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왜 그랬을까? 서로의 언어에 서툴다는 것이 한가지 변명이 될 듯 하다.일본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또 영어를 하더라도 생활영어 수준이니 거창한 담론에 대해 물어보기 저어했을 것이다.또한 사교의 성격상 그런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도 조금 가렸을 듯 하다.그렇지만 위의 이유는 결과론적 해답찾기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진짜 이유는 우리 의식 속에는 '왕의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왕은 우리에게 현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의식 속 어디에도 왕을 위한 공간은 없다.한국에서 왕은 TV 드라마속에서 신하들이니 내전의 비들과 아옹다옹하고 있는 것이지 실제 있는 존재는 아니다.그렇다보니 일본의 정체 속에 '천황'이라는 존재가 있음에도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우리는 뉴스를 보면서 일본 내각의 우경화 움직임에 분노를 한다.어제는 총리가 오늘은 관방장관이 내일은 참의원이... 결국 생각은 자민당 우파와 일본 우익들에 대한 적개심 정도에서 멈추곤 한다.

만화책인 <일본인과 천황>은 두가지 면에서 생각의 꼬리를 조금 더 길게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첫번째는 일본 우경화의 중심에 '천황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교과서적이지만 대개는 간과했던 생각이다.두번째는 만화에 등장하는 도토대학 축구부의 분열 속에 보여지는 천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군사주의와 국가주의의 결합이다.축구부의 모습은 불행히도 한국 사회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일상적 조직의 모습이기도 하다.그런 의미에서 '천황'은 일본인의 무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뱀처럼 살아있는 동시에 식민지적 근대를 경험한 한국인의 의식에도 숨어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저자인 가리야 데쓰는 일본인들 다수가 믿고 있고 일본 우익이 지키고자 하는 일본 천황제가 '만들어진 신화' 일뿐이라고  비판한다.일본 천황을 신성화 한다거나 일본이 신의 나라라거나 하는 것은 순수하게 신화일뿐이다.그럼에도 일본인들은 천황을 살아 있는 신으로 국체와 동일시 해왔다.저자는 이것이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로 생각한다.일본의 근대화라함은 메이지 유신을 뜻하는데 실제 일본 천황의 지위가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 모두 그 덕분이다.그리고 이 정점이 바로 쇼와 천황의 대동아 전쟁이었다.일본에서 천황은 애초부터 신적인 존재는 아니었다.역사적으로 천황이 집권을 한 시기도 있었으나 이는 상당히 짧은 시기였다.천황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일본 역사의 중심이 된 것은 지배 엘리트들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저자는 과거 일본 사회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천황-신하-백성'이라는 도식을 이용한다.일본의 봉건제에서 실제 헤게모니는 신하라고 하는 막부나 번주들이 가지고 있었다.이들에게 천황은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즉 자신들은 천황의 신하라는 위치에 두고 실권을 유지하면서 천황을 대신하여 나라를 통치한다는 논리로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이다.저자는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실제로 일본을 지배한 것은 재계와 군부였다고 말한다.물론 이것이 천황의 전쟁 책임론에 대한 탈출 도구로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저자는 이런 우려에 대해 천황이 직접적으로 전쟁책임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천황의 전쟁책임론이 희석된 것은 모두들 잘 알고 있다시피 전후 일본복구를 맡았던 맥아더 사령부에 있다.맥아더는 천황을 탈권력화하면서 인간화하는 작업을 추진했다.법적으로는 일본 헌법 1조에 해당하는 '상징천황제'의 규정을 만들기도 한다.저자는 '상징천황제'가 미군정에 의해 1주일 사이에 만들어진 졸속적인것이라고 말한다.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과거 천황제의 악습을 그대로 세대 전승하여 일본을 활력없게 만드는 규정이라고 보고 폐기를 주장한다.저자는 '히노마루-기미가요'가 실제 일본을 상징하지도 천황을 상징하지도 않는다고 역사를 통해 지적한다.정작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징을 통해 근대 천황제 복귀를 꿈꾸는 세력들의 불온함이다.그들은 과거에 메이지 유신과 이후 군국주의 일본이 그러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일본 천황제의 강조를 통해 사회 지배력을 강화하려하고 있는 것 뿐이다.

<일본인과 천황>에서 주인공인 도토대학 축구부의 주장 스미카와는 히노마루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면서 축구부에서 쫓겨나게 된다.도토대학의 선배들은 기강의 해이를 내세우며 폭력으로 군기를 잡고 스미카와는 이에 맞선다.선배들의 의식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상명하복이며 절대복종이다.또한 축구부의 천황이라고 할만한 기타카미 선배에 대한 숭배와 그의 충복으로서의 정체성이다.저자는 도토대학 내부 문제를 보여주면서 일본사회 조직문화에 '천황의 군대 내의 권위주의'가 내재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한다.이는 한국 조직문화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특히 한국은 일본과 달리 국민의무병제도가 있다.이미 많은 학자들이 '한국은 군대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한국 사회와 군사문화는 이미 찰떡처럼 융화되어 있다.군대에서 어느 정도 규율과 제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군대들이 한국 군대처럼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지는 않다.군대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가치에 그다지 저항하지 않고 저항하기도 힘든 10대후반-20대초반의 아이들에게 교육기관으로서 작용한다.군대에서 배우고 몸에 익혔던 상명하복의 정신은 그대로 사회에서도 적용된다.합리화가 이루어진 조직이라고 할지라도 사석이나 비공식적 자리에서는 분명 군사주의적 문화가 존재할 것이다.이 문화에서는 위로 올라갈 수 록 무한 자유가 보장된다.그러다 보니 '억울하면 성공하거나, 억울하면 군대 빨리와야'되는 것이다.이 말은 현재의 권위주의적 상태는 자연적인 것이므로 잘못된 것이거나 인위적인 것은 없다는 투이다.그래서 나오는 말이 '고참이 까라면 까는 것이다' 여기에서 '까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다수를 위하는 것인가,양심에 바른 것인가를 묻는 다면 돌아오는 답은 군대였으면 '이 빠진 새끼가 어디서 말대답이야'이고 회사에서 라면 "아주 잘난척을 하는군" 이다.그 정도 차이가 있다.때리지 않으니 다행이라고....그러나 사실 살펴보면 직장 내의 폭력이 생각보다 많다.이는 언어적 폭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리적 폭력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천황'이 없다.그러나 일본의 천황제가 근대국가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에 주의한다면 우리에게도 천황은 아니지만 이와 유사하게 작용한 장치들이 있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한국은 식민지적 근대화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우리가 원하지 않았지만 일본 군국주의는 우리의식의 저류에 자신들이 씨앗을 뿌려놓았다.해방 이후 우리 역사는 불행히도 일본과의 절연과정을 거치지 못했다.친일파들은 친미파로 변신하여 다시 권력의 상층부를 차지했다.또 미워하면서 배운다고 그들이 심어놓은 근대성의 밝은 면을 일본의 우월함으로 치환시키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우리에게는 '천황'은 없었지만 '반공'이나 '친미'라는  실제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소리 없는 '천황'이 있었다.근대국가의 형성을 위해 소환된 '국민'은 막강한 이름으로 '개인'을 부정했다.애국심의 이름으로 일치단결이 요구되었고 다수의 발전을 위해 권위주의와 폭력은 조직내부에서 잊혀졌다.식민지적 근대화와 반공,그리고 적자생존의 시장법칙은 한국을 정글로 만들어 놓은 보이지 않는 '천황'이 되어 있다.실제 우리 사회가 많이 깨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아직도 보이지 않는 '천황'의 깃발 아래 사람들을 세우고자 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준동한다.또한 이들에 부하뇌동하거나 부분적으로 또는 비판적 수용이라는 이름으로 보이지 않는 '천황'의 세력 구도 속에서 자족하려는 사람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다.(유감스럽게도 내 책상 중심으로 4분의 3이 그렇다.) 설마 그렇게 많으려고 물을 수 있다.이런 질문을 주변에 던져보자.

 "제국주의가 나쁜 거야 ? 아니면 우리가 제국주의가 되서 혜택받는 나라가 되지 못한게 나쁜거야?".....질문을 할때 '제국주의'란 말은 알지도 못하면서 양심상 거부해야한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기때문에 '강한 나라' 뭐 이런 단어로 물어보면 훨씬 적확한 대답을 얻을 수 있다.여러 대답이 나오겠지만 가장 어리석고 무식하고 상종하기 싫은 자들이 하는 답변이 이런 거다.'우리가 강대국이 되면 다른 나라처럼 그렇게 하지는 않지...우리는 백의민족이고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적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니까"

<일본인과 천황>의 책제목 처럼 '천황'문제가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겠냐 싶어 관심 목록에서 빠질 수도 있는 책이다.그렇지만 이 만화는 우리를 성찰할 수 있게 하며 또한 우리와도 밀접하게 관련있는 이웃나라 사람들의 의식 세계의 한 단면을 읽을 수도 있는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을 소개해준 사람은 '바람구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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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1-26 23:42   좋아요 0 | URL
3분의 1쯤 보다가 당장 내일로 닥친 그놈의 연구수업 때문에 잠시 밀쳐둔 책이군요. 예전에 일본사 공부하다가 일본의 천황제와 천황에 대한 의식이 도저히 이해가 안가서 헤맷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 책이 있었으면 좀 쉽게 이해할 수있었을걸 싶더라구요. ㅎㅎ
근데 앞부분 읽으면서 생각되는건 결국 근대 자본주의의 제국주의화나 팽창에서는 굳이 천황제가 아니더라도 이런 기제는 어디든 만들어냈던 거고 그게 일본에서는 천황제라는 기제를 선택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던데요. 만약 천황제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 비슷한 다른 수단과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겠죠? 요즘 우리나라가 강한나라 신드롬에 빠져있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일거고.... 천황제의 역사적 맥락을 찾아내고 비판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우경화의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것은 아닐테고, 옆나라나 이나라나 갑갑한 시대입니다.

드팀전 2007-11-27 09:17   좋아요 0 | URL
그런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요....모든 근대는 근대국가를 상정한다.자본주의가 제국주의화되는 것은 필연이라고 말한 것은 레닌이었을겁니다.자본주의의 가장 궁극적 형태라고 하는데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시대가 외형을 바꾼 상황에서는 제국주의가 근대 자본주의의 시초라고 보는 문제의식이 더 많은 생각거리를 줄 듯 합니다.특히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나라이거나 또는 근대화가 외세에 의해 이루어진 나라에서는 '근대국가'의 특징으로 표현되는 '부국강병'에 더 목숨을 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그래서 대개 후발국들이 민족주의를 성장론과 결합시키는 방식을 택하게 되더군요.이 둘의 결합 속에서 처벌받아야하는 반민족행태마저 묻혀가기도 하고...성장지상주의에 매몰되기도 합니다.우리 역사에서 그런 예는 많이 찾아집니다.
저자 역시 천황제가 우경화의 가장 근원적 문제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천황제가 우경화 세력들의 디딤돌로 적재적소에서 이용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글샘 2007-11-27 15:17   좋아요 0 | URL
축구!란 욕을 아세요?
운동 종목 이름으로 '야, 이 바보 축구 온달아!'하고 부르는 종목은 이 운동밖에 없을 듯 싶네요.
그만큼 축구가 '개인을 잃게 하는 구속'이며 '맹목'이어설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월드컵 할 때요. 2002년에... 13일날 두 소녀가 죽었는데... 다들 축구가 된 그 때...
한국에서 '천황'보다 더욱 '단결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은 '눈치'아닐까요?
사람들을 다 태음인처럼 만들어버리는,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눈치보는 사람들...
최근까지 노예와도 같은 양반 상놈 의식이 있었고, 아직도 '신분'이 욕설이 되는 거니까요. 거기다가 남녀 차별이 더 심해서, 상년은 더 큰 욕 같은...
어쩌다 보니,.. 욕설의 사회학이 되었습니다 그려...

드팀전 2007-11-27 22:55   좋아요 0 | URL
저도 축구보기를 좋아하지만 지나치게 열광하는 모습에는 심사가 뒤틀립니다.^^ 그런데 더 근본적으로 묻기 시작하고 직접 대비시키기 시작하면 아무도 빠져 나갈 수 없습니다...무사안일한 저의 오늘이었는데 제가 모르는 곳에서는 가난때문에 목숨을 끊고자한 소년 노동자가 있을 수도 있지요.마음이 불편하지요.그 때마다 철퇴를 내리칠 수도 없고...축구에 대한 열광의 반만큼만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합니다만 '합니다만'하는 바람만으로는 언제나 허공에 빈 주먹 휘두르기인 셈입니다.그래도 알면서 가끔 휘두르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