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를 기르다
윤대녕 지음 / 창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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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윤대녕'이 아프다.

윤대녕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가슴 한 켠에 통증이 느껴진다.통증은 바늘처럼 날카롭기도 하고 무거운 망치처럼 묵직하기도 하다.간헐적인 통증에 자꾸 가슴에 손이 간다.긴 한숨과 더불어...나의 눈은 자꾸 방 한 구석을 바라보거나 창 문 밖을 멍하니 내다보게 된다.

아픈 곳에는 더 자주 손이 간다.윤대녕의 소설<제비를 기르다>는 다시 아픈 곳을 건드린다.이제 나의 것이 아니라고 믿었넌 그 '상처'들이다.

어린 시절 들었던 '바늘' 이야기가 떠오른다.바닥에 바늘이 떨어졌다.아버지는 어두컴컴한 방을 헤집으며 바늘을 찾고 계셨다.엉거주춤 기어다니며 바늘을 찾는 아버지를 나는 멀뚱 멀뚱 바라보고 있었다.손으로 바닥을 몇 번 쓴 끝에 한 줌의 먼지와 함께 바늘이 모습을 드러냈다.아버지는 바다 밑에 가라앉았던 침몰선에서 보물을 건져낸 듯 뿌듯해 하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렇게 작은 바늘은 말이지.아주 위험해.그냥 있다가 밟고 넘어가면 몸으로 들어가서 혈관을 타고 따라 돈다고..'

바늘이 혈관을 따라 타고 돈 다는 것이 사실은 아닐것 같다.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붉은 혈관을 따라돌아다니는 은빛 작은 바늘을 생각하고 몸서리를 쳤다.

'윤대녕'은 사라진게 아니었다.나는 스스로 날개를 꺽고 내려앉았다고 믿고 있지만 '그'는 은빛 바늘이 되어 내 혈관을 돌고 있다.잊고 지낼 때가 많은 것은 그 바늘이 자연선택하여 혈관의 길을 알아내고 벽에 부딪히지 않고 잘 돌았기 때문이다.혈관 벽 역시 바늘이 주는 통증에 어느정도 익숙해 져 있기도 하다.하지만 몸에 들어간 바늘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나는 '윤대녕'이 아프기 때문에 그 말 이외에 사실 덧붙일 말이 없다.아픈 사람에게 그 통증의 입체적 느낌을 설명하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계란같은 통증 하나가 몸에 들어가 있는 느낌.나와 똑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만이 그 미세한 통증 아닌 통증을 느낄 수 있다.11월의 바람같은 그 느낌말이다.

윤대녕의 이야기는 비슷 비슷하다.소설집 <제비를 기르다>에도 윤대녕스러운 정서는 이어진다.윤대녕이 여기까지 왔다...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내게 윤대녕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책 후기에 그 스스로도 어떤 벽에 부딪혔음을 말한다.그 벽을 넘었는지 아니면 우회했는지 모르겠다만 그 결과물이 이 책인 것만은 사실이다.이 책으로 윤대녕이 더 성숙했느니 다른 길을 보았느니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내게는 그가 '윤대녕'답게 그에게 주어진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길 너머를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사람들은 윤대녕의 인물들에서 어떤 '신비성'을 읽는다.하지만 아픈 나는 윤대녕에서 '사실성'이 느껴진다.통상적인 개념의 '리얼리즘'을 말하지는 않는다.) 내가 알던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 속에 있다.

4-5년전 좋아하던 형님과 대학로에서 술을 마셨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형님은 이미 길 너머를 갔다 온 아니면 이미 길 너머와 길이 하나가 되어버린 사람이었다.)

형님이 내게 그랬다.'넌 참 힘들겠다 싶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널 보면 늘 줄타기 하고 있는 사람이 생각난다.왜 있잖아.서커스 같은데서 균형잡고 줄위에 서 있는....보통 사람들은 8할 정도는 땅에 발 붙이고 있고  나머지로 허공을 그리워 하지..그게 정상적인 거고 그런 사람들이 세상의 다수를 차지하지.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에 부유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부유 자체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지.그런데 널 보면...진짜 위태 위태하면서도 줄타기를 잘하고 있어...이렇게 말하면 그렇지만 딱 50 대 50이야. 그래서 널 보면 참 힘들겠다 싶다.차라리 어느 한 쪽이 무거우면 편안해지는 법인데 말이지.그런데 아마 넌...내가 아는 사람들 처럼 영원히 부유하지는 않을거야...대신 말이지. 네가 내려앉았다고 떠다니는 사람들,그리고 아직 내려앉지 않은 사람들을 못났다거나 이상하다거나 정신 못차렸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으면해. 그런 사람을 봐 왔거든.자기가 내려앉더니 지나온 자기의 과거를 부정해버리더라고...쓸모없는 시간낭비나 주체못하는 낭만성정도로 취급해버리더라고'

나는 느낀다.이제 '윤대녕'이 나의 것이 아님을.그렇지만 알고 있다.여전히 '윤대녕'스러운 것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럼 나머지 제비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일부는 생을 다해 죽고 나머지 제비들은 또다른 곳으로 가겠지' .... <제비를 기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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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05 12:46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 감동적인 리뷰에요^^
3월, 힘차게 시작하시기를...

2007-03-05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