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2007년 1~2월 - 통권 92호
녹색평론 편집부 엮음 / 녹색평론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녹색평론> 을 보다가 아는  이름을 발견했다.지난해 말 부산에 있는 '공간초록'에서  ' 생명의 대안은 없다'  제 3차 전국토론회가 있었다.국제신문의 환경전문기자인 이해창 기자가 그날 모임을 정리한 글을 썻다.('자연의 법 인간의 법') 내용 중에 토론자로 참가한 선배의 이름을 보고 오랜만에 전화를 돌렸다.여차 저차 해서 그래서 생각나서 전화를 했다고 하니 무척 반가와했다.일상적인 안부 전화였음에도 전화를 하게된 루트가 <녹색평론>때문이었음이 그에게도 신선했던 듯 하다. 각자 사는 공간에서 지킬 건 지키며 살자는 덕담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번호에서 나의 무심한 뒷통수를 한대 내리친 것은 김곰치의 "나는 아프다" 라는 글이다.르포타주 형식의 글이었다.작가는 부산에 있는 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에 발을 들여놓으며 겪은 일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원폭피해자 노인은 자신의 이름이 어느 지면에도 등장하면 안된다고 여러번 당부했다고 한다.현재 일본 정부가 그에 대한 보상여부를 조사하고 있는데 괜히 여기저기 이름올려서 그들에게 않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면 안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피해자가 오히려 소심한 상황이 논리적으로 보면 어불성설이다.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모습은 너무나 현실정합적이다.작가가 원폭피해자 협회를 찾은 것은 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2005년 5월 세상을 떠난  원폭피해 2세 김형율이 바로 그 사람이다.김형율의 아버지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 1세대이다.김형율은 태어나면서 부터 온갖 병치레에 시달렸다.처음에는 그것이 그저 몸이 약해서 그런 것이겠거나 생각했다.그러다 몇 년전부터 자신의 병치레가 원폭피해와 관련이 있다는 것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원폭2세 피해자들을 수소문하고 원폭 피해를 알리기 위해 한국과 일본을 오고 가면서 일했다.그러다가 2005년 갑자기 세상을 뜨고 만다.김곰치는 그의 죽음을 따라가면서 원폭 피해자 1세와 원폭 피해자 2세 사이의 내부적 갈등이 있음을 공개한다.현재 일본에서도 원폭 피해 2세대의 유전적 질환문제는 공식적으로 인정된바가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물론 정황증거와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는 있지만 말이다.원폭 1세대와 그의 자녀들은 김형율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듯 하다.현재 1세대들도 제대로 치료받고 보상해주니 마니 하고 실강이를 하고 있는 마당에 확실치도 않은 2세대 문제를 가지고 너무 나댄다는 입장이었다.정상적 생활을 하는 원폭 1세대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원폭 1세대와 원폭 2세대의 갈등,그리고  아프지 않은 원폭 2세대들이 피폭자 가정임을 숨기는 현실....

김형율의 주장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에 대한,생명에 대한,전쟁과 평화에 대한 인식의 차,무엇보다 절박감의 차이.중요한 것은 '원폭1세,2세'가 아니라 '1세 환우,2세 환우'여야 한다고 김형율 씨는 언제나 고집했었다."

김형율의 갑작스런 죽음에는 현재 원폭문제를 둘러싼 한국내의 갈등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짐작된다.왜 그렇게 된 것일까? 일본정부의 보상을 놓고 왜 모든 피해자들이 서로 서로 견제하고 눈치주고 입을 틀어막게 된 것일까?

대한적십자사의 백옥숙씨는 말한다.

"한국 정부가 우리 돈으로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는 원폭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해야 가장 바르고 이상적임은 틀림없다......그게 되지 않으니까 피폭자들이 일본정부에 요구하는 거고,피폭자 보인 스스로가 그러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고 서글픈 현실이에요."...작가가 덧붙인다...서글픈 구걸이라고 한다면 ,가른 누구도 아닌 한국정부가 구걸할 수밖에 없도록 그들을 방치하고 있었다.

2005년 부산에 나는 살고 있었고 '나는 아프다'라고 외로운 외침을 부르짖던 김형율은 평생 아프기만 하다가 죽었다.그는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나는 그의 죽음을 이제서야 알았고 그의 목소리를 이제서야 들었다.나는 또 부채감을 느낀다.

이외에도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과 관련된 영남대 이승렬교수의 <근대문학의 종언,그후 또는 그 이전에 대하여>,인천 도시생태한경연구소장 박병삼의 <내일을 살처분하는 획일주의> ,변혜진의 <한미 FTA 의약품 협상,이윤이냐 생명이냐>등을 즐겁게 읽었다.

우석훈은 <부동산 파동과 노무현레짐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에서는  개발주의-지역토호-건설업체의 삼두체제가 지역과 농업을 말살하고 '국토생태계'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그리고 있다.

책 첫머리에 있는 박승옥의 <왜 자립경제인가-박현채를 다시 읽으며>는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난제들이 숨어져있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저자는 서구 자본주의 산업문명을 기본적인 악으로 규정하고 그의 대척점으로 원시농업공동체의 가치를 제시한다.이런 극명한 선/악 구도와 강한 어법은 생태주의를 종교적 도그마에 빠뜨릴 듯 하다.가라타니 고진 식으로 말하자면 '생태주의의 파시즘' 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절박하게 자립경제를 추구해야 한다.우리 자신과 자식들을 굶겨죽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농업사회,자립과 자치의 농업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모든 사람이 농민이 되자는 말은 물론 아니다.지금은 농민이 '멸종 직전'이기에 먼저 깨어있는 사람들부터 농민으로 전환하는 일이야말로 자립경제와 자치공동체 복원의 지름길인 것이다."

저자는 결론에서 메트릭스 영화의 대사를 인용한다. "인간과 바이러스만이 다른 모든 자원을 고갈시키고 생존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또 한가지 덧붙여 생각해보게 된다.워쇼스키형제가 만든 영화<매트릭스>의 내러티브의 틀이 성경과 신화의 담론을 기본 축으로 한다는 것...그리고 질문한다.

생태주의가 '복음 전파'가 되지 않으려면 어떤 고민이 이어져야 할 것인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2-26 22:46   좋아요 0 | URL
지금의 여수참사도 그러하고, 유해물질을 다루는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에 돌아간 뒤 발병을 하거나, 그 2세들이 또다른 고통을 겪을 것이 예상될 때, 지금 한국정부는 뭘 준비하고 있는 걸까. 한국사람들은 늘상 일본사람들이 전후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자기 나라 경제발전 얘기하면서 그 경제발전과정에서 착취당하고 피해를 본 이들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안 해요.. 돈 벌고 갔으니, 돈 벌 기회를 가졌으니 더 잘 된 거 아니냐고 하는게, 꼭 위안부 할머니나 징용당한 이들에게 일본 극우파들이 하는 말과 무엇 다른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드팀전 2007-02-27 09:53   좋아요 0 | URL
궁극적으로 '야만적인 자본주의'에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기때문이겠지요.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는 시절인 듯 합니다.사람은 단지 투입되는 노동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기계의 한 부품처럼 취급되는 듯 합니다.자본가들이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자본가도 아니고 그냥 저냥 붙어먹고 사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에 익숙해져있다는게 가끔 벽처럼 느껴집니다...자기들이 생각을 멈춰버리는 순간 세상은 최악으로 향해간다는 것에 대한 아무런 자성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