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레랑스'...  멋진 프랑스어다..한국 사회가 타인와 다른 생각에 대해 불관용적인것은 일정 정도 사실이다.토론의 문화보다는 지시의 문화가 주도적이기 때문이다.우리 역사를 돌려봐도 우리의 '아비투스' 속에 이런 소인은 다분하다.식민주의,한국전쟁,군사정권,광주살해 정권.. 폭력적 사회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런 공론의 장은 '빨갱이'들이 나 하는 짓이다.어르신들의 우스갯 소리 그러나 또 의식을 규정하고 있는 말 중에 이런게 있다. "말 많으면 빨갱이" 결국 사회의 다양한 의견이 정치적 이유로 의해 배제되었다.

시대가 바뀌고 형식적 민주화라도 어느정도 이루어졌다.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무수한 담론과 토론을 양산하는 공간이 되었다.한켠에서는 한국내에 군사쿠데타가 이루어지기 힘든 이유 중에 하나로 전국적인 인터넷 망을 들기도 한다.비록 사이버 공간이지만 정보와 담론의 자유로운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토론이 이루어지다보면 여러가지 주장이 난무한다.토론이 무언가 중도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면 토론은 토론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경우를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 만은 없다.토론의 결과가 서로를 이해하고 일정정도 뜻을 꺽어 중도를 찾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조잡한 수준의 '합리적 토론'에 대한 강박이다.

토론이든 논쟁이든 싸움이든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그런데 '똘레랑스'를 왜곡이해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똘레랑스'를 요구한다.'서로 다르지만 우리는 어차피 한표니까 서로 똑깥이 이해해야된다'는 식이다. 불행하게도 이건 '똘레랑스' 긍정적 의미를 왜곡하는 짓이다.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 이것이 '강자의 똘레랑스'인가 '약자의 똘레랑스'인가 하는 점이다.강자의 똘레랑스는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틀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또는 건드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똘레랑스'를 말한다.거칠게 말하면 '나의 기득권은 기득권이고 너의 빈곤은 너의 빈곤이다.똘레랑스하자...'이런 논리다.'똘레랑스'를 프랑스 강아지 이름으로 바꾸어 놓는 처사다.

'똘레랑스'가 거부하는 유일한 것은 '똘레랑스'를 구현할 수 없게 만드는 폭력적 상황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대충 '관용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는 '똘레랑스'도 '똘레랑스'할 수 없다는 뜻인 듯 하다.결국 '앙똘레랑스'라는 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똘레랑스'는 종이호랑이요 논리적 무지랭이다.

내가 '앙똘레랑스' 하는 것은 한 두개가 아니다.내 인품이 부족해서 모든 것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일게다.그렇지만 '모른척' 을 위한 '자기변명'을  너그럽게 감싸안아주는 자기만족적 인품이라면 그다지 추구하고 싶지는 않다.내가 '앙똘레랑스'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은 '사회진화론'이다.요즘은 우리사회에 메스를 대는 글쟁이들이 이에 대한 문제를 많이 지적해서 어느정도 공감을 얻는 분위기다.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고만고만한 고등학생들에게는 이게 영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그리고 현재 내 주변 동료들도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사회진화론'에 대한 의문의 예는 한일관계 때문이었다. 위안부 관련된 기사가 가끔식 나오고 있던 시절로 기억한다.그런데 그 때 들리던 이야기중에 "아..나쁜 일본새끼들....우리가 힘이 세서 쪽발이 기집애들을 전부 먹어버려야 하는데 "....  나는 갑자기 궁금했졌다.. "만약 그러면 일본이나 한국이나 똑같은 거 아닌가?...우리가 그러는건 괜찮고 일본애들이 그러면 나쁜건가? 한국사람들이 일본을 욕하는 것이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는게 나쁘다는 뜻에서 그런건가 아니면 우리가 식민지가 되어서 즉 우리가 가해자가 되지 못해서 그런건가?...만약 우리가 일본을 점령하고 총독부만들고 그랬으면 일본처럼 하지 않았을까? "(이건 친구들에게 물어봤는데 대게 애들 답은 그랬다. ... 우리는 일본처럼 하진 않았겠지..과연그랬을까?)

나중에 알았다.그게 '사회진화론'이다.

사회진화론은 '강자 독식'시스템이다.어차피 인간은 능력이 제각각 이고 그에 따라 잘난 놈이 잘 먹고 못난놈 부리는 건 당연하다.이걸 사회로 확대한게 '사회진화론'이다. 이 논리를 대입하면 일본의 한국식민지 지배는 윤리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전혀 문제될게 없다.(늘 논리를 앞세우기전에 논리의 지향에 대해 고민해보라는게 그래서다.) 개화기 선각자들은 거의 대게가 사회진화론에 바탕을 둔 '부국강병론'자 였다.또한 제국주의 침력도 '사회진화론'의 내피를 입고 있었다.당시의 시대적 한계가 그랬다고 치자...박노자처럼 그때 그렇지않았으면..하는 것은 이미 때늦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개화기로부터 100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우리 사회는 '사회진화론'의 망령이 주인노릇을 하고 잇다는 것이다.이게 현실 정치의 구동방식과도 유관하고 또 인류의 작동방식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결코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그러나 그게 전부인가? 세상은 힘없는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굴러왔다.그들의 목소리는 늘 들리진 않지만 조금씩 사회를 움직여왔다.내가 지난 주 토요일날 쉬게 된 것도 다 그때문이다.내가 일주일에 60시간씩 일하지 않고 법적으로 40시간 일할 수 있게 된 것도 다 그때문이다.찾아보면 우리 주위에 작은 목소리와 분노가 바꾸어 놓은게 얼마나 많은지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땅 밑에는 새싹이 꿈틀 꿈틀 거리고 있다.눈에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누구나 다 안다.봄이 되면 새싹이 돋아나서 세상을 연둣빛으로 만든다는 것을....

'못난 놈들의 징징거림'이라는 풀 뜯어 먹는 소리를 한다는 것은 온힘을 다해 올라온 새싹들에게도 미안하다.지금 내 주변이나 또는 내가 모르고 있는 어떤 곳에서도 새싹들은 움직인다.나는 그 '징징거림'을 못남과 부덕의 소치로 몰아가지 않겠다.나는 오히려 그 '징징거림'에 확성기를 대주고 싶다.나는 '앙똘레랑스'한다.

당신은 이 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풍요를 보장해주는 불평등한 대우에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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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14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거리를 던져주어 감사합니다. 아직 이렇다 저렇다 말은 못하겠고, 의미깊은 거리를 주셨습니다. 복거일의 논변을 중심으로 살펴봐야겠습니다. 복거일의 사회적 목소리는 사회진화론에 기반을 두고 있는거 같으니까요.

드팀전 2007-02-14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나요// 님께 드리는 말씀은 아니었는데..어쨋거나 님의 고민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정리정도인가 봅니다......